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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Oct 25. 2024

소울메이트

#3. 아픔의 선율

세 달 전이었다. 평생 아프다는 말 한번, 눈물 한번 보이신 적 없던 엄마가 마지막 투석을 마치고 코마 상태에 빠지셨다. 나의 강인한 엄마, 그토록 씩씩하던 분이 눈앞에서 점점 작아져갔다. 의사는 간암 말기라고 했다. 수술을 해도 3개월, 하지 않아도 3개월이라는 냉정한 말이 떨어졌다. 


수술은 기적처럼 성공적이었다. 의사의 예상을 뒤엎고, 엄마는 그 후 7년을 더 사셨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축복과 고통이 함께하는 나날이었다. 엄마는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끝없이 오갔고, 나는 간병인이자 딸로서 그 곁을 지켰다. 엄마의 손을 잡으면 따뜻했지만, 그 온기 속에 고통이 스며있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며 간병을 했고, 수업이 끝나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일상은 끊임없이 나를 밀어붙였다. 빈 시간이라고 해봐야 잠깐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들마저 칠판 지우는 아르바이트에 할애했다. 손끝에 하얗게 묻는 분필 가루가 나의 성대에 해를 끼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해내야 했고,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기관지 치료비로 날아갔다. 학교와 병원,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나날 속에서 나의 목소리는 조금씩 쇠약해져 갔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학업을 이어가야 했고, 장학금도 유지해야 했다. 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면 몸이 망가지는 것쯤은 감수해야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학우들은 언제나 의아해했다. “너는 대체 어떻게 다 해내니?” 그 물음 속에는 가벼운 존경과 무거운 동정이 섞여있었다. 그러다 몇몇은 나에게 개인 보컬 레슨을 요청했다. 그중 한 명이 S였다. S는 열정적인 친구였다. 노래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싶어 했다. 나는 그의 열정이 부러웠다.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다. 학교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선후배들과 선생님들 사이로 S가 눈에 띄었다. 학번이 달라 수업에서 마주친 적은 없지만, 연습실에서 자주 스쳐 지나던 얼굴이었다. 그가 장례식에 와 준 것만으로도 나는 고마웠다. 바쁘게 움직이던 장례식장,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와줄게, " S였다. 그는 말없이 움직이며 이곳저곳에서 손을 보탰다. 식사 준비를 도울 사람들에게 다가가 음식을 나르고,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어른들께 차를 가져다 드리며 묵묵히 나를 도왔다. 그의 도움은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과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작은 배려들이 하나하나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엄마의 장례가 끝난 후,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상에 부딪혔다.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들은 마치 내 삶을 지탱하는 기둥과 같았고, 그 기둥이 무너져버린 지금, 나의 중심은 구멍이 난 듯 허전했다. 병원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있던 마지막 순간, 그녀의 고통스러운 눈빛 속에서 나는 "엄마, 이제 고통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평안히 쉬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라고 속삭였다. 그 순간, 엄마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호흡의 큰 울림을 남기고, 일주일 전 내가 꾸었던 꿈처럼 엄마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아이와 같았다. 몇 주 전, 엄마에게 내가 엄마가 죽는 꿈을 꿨다고 말했더니, 꿈은 현실에서 반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시며 "내가 더 오래 살려나 보다"라며 웃었던 그 미소처럼, 이제 엄마는 모든 고통이 사라진 듯, 무거운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세상의 모든 걱정과 고통에서 벗어나, 그곳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떠난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엄마가 마치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처럼 평화롭게 사라지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진정 원하는 곳에서 안식을 찾기를 바라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의 사랑이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엄마가 정말로 고통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다. 사랑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 순간, 나는 엄마의 사랑이 여전히 내 곁에 존재한다고 느꼈다. 엄마의 눈물은 슬픔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항상 나를 위해 강해지려 했고, 이제는 내가 그 강인함을 물려받아야 할 시간이었다. 


매일같이 병실을 찾아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들은, 그 고단함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 주었다. 간병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엄마와의 시간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 시간이 사라진 지금,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실의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방황하는 발걸음은 어느새 자연스레 학교 연습실로 향해 있었다. 연습실은 엄마가 병실에 있을 때도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던 곳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그곳에서 노래하고 음악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하루를 견뎌낼 힘을 얻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익숙했던 연습실도 나에게 낯설고 허전하게 느껴졌다. 텅 빈 공간처럼 느껴지는 그곳에서, 나는 음악이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엄마의 빈자리는 어떤 소리로도, 어떤 멜로디로도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해가 떠 있는 시간, 지하의 보컬 연습실에 들어가면 그곳은 외부의 소음과 분주함에서 벗어난 나만의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 벽을 치고 얼굴에 닿는 소리의 떨림까지도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은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공간이었고, 혼자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였다. 하지만 캄캄한 밤, 연습실에서 나올 때면 어두운 공간이 내게서 모든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듯 지하의 모든 습기를 흡수한 듯 온몸은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다. 


어느 날, 연습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뒤에서 들려온 한 음성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엄마 장례는 잘 치렀어요?” 돌아보니 S가 서 있었다. “장례식에 와 주셔서 감사했어요,” 나는 고개를 숙이며 진심을 전했다. “엄마 병간호를 7년 동안 했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힘들었죠?” 그의 질문은 나의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을 건드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수고했다’는 말을, S에게서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난 7년, 엄마와 함께한 시간들은 힘들었지만 소중했던 기억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도 나는 항상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 고단함 속에서 그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견뎌왔던 나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울컥 솟구친 감정에 나는 쭈뼛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감정이 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면서도, 나는 S의 따뜻한 시선이 나를 감싸는 걸 느꼈다. 그가 내게 건넨 말 한마디, 그리고 나를 향한 그 진심 어린 관심이 마치 나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힘들었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온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S는 조용히 내 곁에 서 있었고, 그의 존재는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렇죠, 수고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S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정한 공감은 내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나는 그의 이해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에, 그동안 나 혼자서만 감내해 왔던 슬픔이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사실은...” 나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화제를 돌리지 않으면 감정에 휩싸여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아 말을 바꿨다.

“요즘 카피하고 있는 곡이 ‘앤’에 아프고 아픈 이름이죠?”

“어떻게 알았어요?” S가 놀란 듯 물었다.

“나도 지난달부터 그 곡 카피하고 있거든요.”

“와, 신기하다.” S의 눈빛이 반짝였다. 우리는 십 대 소녀들처럼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요즘 듣고 있는 곡이 무엇인지, 왜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R&B에 빠지게 되었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더라고요,” S가 말했다.

“맞아요. ‘앤’의 목소리엔 감정이 깊이 스민 소울이 느껴져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점점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S는 그동안 털어놓지 않았던 아픈 기억을 꺼냈다. “사실, 부모님이 싸우시는 걸 자주 봤어요. 어느 날은 정말 심하게 다투셨는데, 아빠가 칼을 휘둘렀어요. 그때 엄마가 다쳐서...” S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웠어요. 엄마가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나는 엄마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갔어요. 그 순간, 내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 힘들었겠어요,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 목소리도 흔들렸다.

“그 사건 이후로 내가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어요.” S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나는 S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우리는 음악과 상처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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