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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2시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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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Dec 03. 2024

메아리

알래스카, 눈보라가 문틈을 파고들던 밤

난방 멈춘 방 안에서 노래를 불렀다

숨결에 실린 소리가 얼어붙은 창문을 넘고

바람에 밀려 눈 덮인 숲을 지나

끝없는 설원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노래는 흩어지며 흔적을 남겼고

발길 닿지 않은 얼음 위에

얼어붙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끝내 바다를 마주하는 얼어붙은 강물 위에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노래는 바다를 건넜다


푸른 파도와 검은 용암 바위가 서로를 부딪치던 섬, 제주

햇살이 올레길 위를 감싸며 아침 안개를 밀어내던 날

바람 속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한라산의 너른 품이 그 소리를 품어 내려주고

올레길 구불구불 이어진 길목마다 노래가 스며 있었다


길을 걷다 멈춰 섰다

바람 속에서 흘러온 멜로디가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알래스카에서 올려진 나의 노래

제주의 길을 걷는 땅 위로 내려앉았다

알래스카의 눈 위에 새겨졌던 소리가

제주의 올레길 돌담에 스며들었다


얼어붙은 땅에서 시작된 목소리가

한라산의 아지랑이 속에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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