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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Dec 11. 2024

#2

연습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습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다음 시간 예약자인 듯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저 3시 예약자인데요" 그의 목소리에는 시간을 넘기지 않으려는 날카로운 의지가 들렸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실 안에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는 기타를 손에 든 채 멈칫했고, 이내 시간을 확인하듯 벽에 걸린 시계를 한번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금방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는 급하고 부산스럽게 말하고 기타를 정리했다. 나도 급히 내 기타를 챙겼다.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끈적하게 느껴졌다. 4월의 봄이라고 하기엔 이상하리만큼 공기는 더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기타를 든 팔이 묵직했고 그 무게는 조금씩 땀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제가 오늘 늦어서 그런데요" 그는 기타를 어깨에 둘러매며 말을 꺼냈다. "혹시 점심 전이라면 제가 점심을 사고 싶은데요" 그는 그가 늦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보상이라도 해야 할 듯 한 눈빛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어딘가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제안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가 제안한 점심을 거절하는

건 어색할 것 같았다. 그의 지각과는 상관없이 나는 오랜만에 기타를 다시 만져본 기분이 좋았다. 그가 레슨이 끝나는 시간이 돼서야 도착했지만 기분이

나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떡볶이 어때요?" 내 말이 끝나자,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잠깐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았고 그 어색한 분위기가 한층 풀어진 듯했다. 그는 기타를

차에 싣고, 나는 기타를 들고 나란히 떡볶이 집을 향해 걸었다. 길을 걷는 동안,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어젯밤과 오늘 아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늦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들으며, 어쩌면 이런 대화가 그에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가 잠들지 못한 이유, 아침에 일어난 작은 일이 그를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찌 됐든 그의 발걸음을 늦추게 했다는 것. 그는 말하면서도

마치 그 속에 쌓인 무언가를 풀어내고 싶은 듯했다.  


방신시장의 밀떡볶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작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콤한 고추장 향과 함께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가게 안은 작은 테이블 몇 개와 간이 의자들이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고, 오래된 형광등이 따뜻한 빛을 내며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가게 안의 분위기는 정리되지 않은 물건으로 복잡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겨운 느낌을 주었다. 가게의 주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익숙한 손길로 떡볶이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찰떡처럼 쫄깃한 떡과 매운 고추, 가끔씩 튀김이 함께 튀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몇 분 후, 떡볶이가 그릇에 담겨 나왔다. 붉은 양념이 고운 떡을 감싸며 자글자글한 기포가 올라오고, 매운 향이 입안을 자극했다. 한 입 먹자마자, 고소하면서도 매콤한 양념이 입 안에서 폭발하듯 퍼지며, 떡의 쫄깃한 식감이 씹을 때마다 느껴졌다.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곧 매운맛과 어우러져 입 안에서 무르익었다. 그 떡은 촉촉하면서도 탱탱해서 씹을 때마다 부드럽게 풀어졌다. 달콤한 고추장 양념이 떡에 스며들어, 그 맛은 시간이 지나도 뒷맛이 길게 남았다.


그러나 그는 떡볶이를 먹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처음 만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듣게 된 건, 코로나 때 소개팅 이후 처음인 듯했다. 그때의 남자와의 대화가 떠오르면서, 그의 이야기가 조금씩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와

그 눈빛이 그때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말이, 너무 빠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소개팅 남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았고, 나는 그때도 이런 분위기가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났다.


그의 말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흥미롭게 들리던 이야기들도 점차 겹쳐갔다. 나는 떡볶이를 천천히 먹으면서,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려고 애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목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가 왜 늦었는지, 지난밤의 일, 아침의 불편함, 모든 것이 그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점점 나는 그 말들의 무게에 눌리는 듯했다. 마치 나도 모르게 그의 삶에 침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이 사람을 만나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 어쩌면 중요한 일이 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렇지만 그의 TMI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피곤함이 밀려왔다.


"제가 오늘 기타 레슨을 받으러 만났는데 상담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드네요, "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잠시 멈칫한 후, 미안한 듯 손을 툭툭 털며 대답했다. "아, 그렇죠. 오늘은 뭐 거의 자기소개 시간 같았네요."


그는 손가락으로 옆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앞에 닭발이나 족발도 더 드시겠어요?"

그의 표정은 진지했지만, 그 말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의 진지한 제안에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 순간.


"지각을 보상하시려는 거 에요?" 내가 덧붙였다. 그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피식 웃었다.

"그냥 떡볶이만 먹었으니까, 저도 좀 더 먹어야 할 듯해서요. 족발도 하나 먹을까, 닭발은 뭔가 매운 걸로 기분 풀어야 할 것 같고…" 그가 말하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다음 주에는 늦지 마시고요, "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당황한 듯 말했다. "그러면 커피나 뭐 다른 걸로 마무리하면 어떨까요?" 그의 제안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 커피 맛 좋은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실래요?"

내 말에 그는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근처에 좋은 곳이 있다니 기대되네요."

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우리는 함께 길을 나섰다.


카페 안은 아늑하고 조용했으며 구석에는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었다. 커피 머신에서 나는 향긋한 커피 내음이 공기 속에 퍼져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주문을 마친 뒤, 그도 자리에 앉았다. 커피잔이 테이블에 놓이자 나는 천천히 그 잔을 들어 입술에 대였다.


"여기 정말 좋네요."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시끄럽지 않아서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그가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가끔 이렇게 혼자 오기도 하세요?" 나는 잠시 그 질문에 답할까 고민했지만, 말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음, 그보다는... 다음 주 레슨 시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말하며 커피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혹시 낮 시간이 어려우시면 저녁 시간으로 변동해도 좋겠는데, 어떤 게 괜찮으세요?"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오늘은 제가 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담주부터는 늦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조금 더 편안해 보이길 바랐다. 그의 말속에 여전히 미안함이 묻어나서 나는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괜찮아요, "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담주부터는 더 여유 있게 할 수 있겠네요."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다가, 커피잔을 다시 한번 들어 올렸다. "네, 오늘만 좀 예외적으로 늦었던 거니까, 그 부분만 이해해 주세요."

"네" 나는 부드럽게 응답하며, 그가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맞췄다. "어차피 중요한 건 다음부터 잘 맞춰가는 거니까요." 그는 고마운 듯한 눈빛을 보였다. 그 눈빛에는 미안함과 함께 나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는 듯한 무언의 요청도 썩여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떤 이유로든 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더 이상 말없이 그를 믿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같은 시간 그는 1시간 30분이 넘도록 연습실에 나타나질 않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오늘은 늦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이번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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