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최유리-동그라미
"반장, 쟤 좀 봐봐."
반 친구 한 명이 다가와 교실 앞쪽을 가리킨다. 골머리를 썩고 있던 수학 문제에서 눈을 떼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책상 위로 엎드려있는 친구가 보인다. 이름이 뭐더라.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조용한 아이. 같이 다니던 무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왜인지 혼자인 거 빼곤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무슨 일 있어?"
"자해하는 것 같아. 병뚜껑으로."
"뭐?"
"원래 다니던 무리에서 떨궈졌나 봐. 몇 일째 점심도 안 먹고 혼자던데."
그런 건 내가 아니라 선생님께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평소에 따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어서 갑자기 말 걸면 놀랄 텐데.. 그래도 일단 관심을 돌려 자해부터 멈추는 게 우선이겠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저기, 너 밥 안 먹어?"
"어...?"
고개를 들어 슬쩍 내리던 춘추복 셔츠 팔목 사이로 보이던 선명한 빨간 자국.
"나랑 밥 좀 같이 먹어주면 안 돼?"
"어... 내가 배가 안 고파서..."
"점심시간에도 공부한다고 친구들이 나랑 밥을 안 먹어줘서 그래."
"..."
"너랑 별로 얘기를 안 해봐서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나랑 같이 밥만 먹어주라~"
터져 나온 꼬르륵 소리가 대답을 대신했을 때, 우리의 어색한 식사는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명 '밥만 먹는 사이'.
우린 정말 밥만 먹었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점심 식사만 같이 한 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내 친구들과의 시끌벅적한 일상으로, 너는 너만의 조용하고 어두운 책상으로. 친한 친구들에겐 공부를 위해서라고 에둘러 말해두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다른 친구들은 우리 사이를 의아해했다. 너는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저 먹는 속도가 느린 내게 맞춰 기다리다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걸어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그날도 침묵 속에서 어색하게 수저를 드는데 네가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너 나랑 밥 왜 먹는 거야? 넌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도 많고. 굳이 나랑 이렇게 불편하게 먹을 필요 없잖아."
"말했잖아~ 점심시간에 공부해야 해서 애들하곤 시간이 안 맞아. 너도 밥 늦게 먹는 것 같길래."
"내가 왕따 당하는 거 알고 그러는 거 아냐? 선생님이 시켰어?"
"선생님은 몰라."
네가 남긴 반찬을 익숙하게 내 식판으로 덜면서, 조금은 구시렁거리는 투로 대답했다. 그동안 궁금했을 텐데 참 빨리도 물어보네. 이제야 말 좀 하면서 사람답게 밥 먹는 건가.
"근데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
"네가 말하고 싶으면 말하겠거니 해서."
"말하면 너 같은 애가 날 이해할 순 있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 엄마는 하루 몇 천 원 벌려고 새벽까지 나가서 일해. 엄청 가난하거든 우리 집. 그리고 나 여자 좋아해. 걔랑 싸운 게 아니라 헤어진 거야. 우울증 있는데 약 먹을 돈도 없어서 죽지 못해 사는 중이고. 입맛 안 떨어지니?"
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우리 꽤 근사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 말한 거야? 그럼 이제 내 차례다?"
밥만 먹는 사이가 같이 노래방도 가고, 야자도 하는 사이가 됐다. 나의 친구들과 어울려 너는 이동 수업도 가고, 체험학습도 가고, 석식이 맛없는 날이면 분식집 투어를 했다. 너는 나와 노래 취향이 꽤 잘 맞았다. 손재주도 좋아서 쉬는 시간이면 요리조리 내 머리를 예쁘게 땋아줬다. 머리도 좋은 편이어서 같이 공부하기에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말 잘 먹었다! 처음엔 밥 한 숟갈도 안 들더니 이제는 고봉밥을 퍼서 내 반찬까지 뺏어 먹는 게 그동안 어떻게 참은 건가 싶었다.
그렇게 네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무렵, 우연히 다시 마주한 네 손목 상처들은 날 무너뜨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서둘러 가린 손목 끝엔 방금 태어난 새빨간 피가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내가 하나도 도움이 안 됐던 걸까. 결국 내 선에선 해결이 안 되는 걸까. 그때서야 난 교무실로 달려갔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누구 얘긴데.."
"반장, 선생님 대충 알고 있었어. 사실 우리 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선생님 너무 걱정 많았는데 반장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부담을 덜어줘서.."
존경하던 선생님이 내 앞에서 울었다. 나약한 어른을 보며 난 스스로 더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자신도 잘 살필테니 앞으로도 내게 잘 부탁한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그 뒤로 너는 선생님과 몇 번 상담을 한 것 같았지만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나의 존재로 인해 더 이상 다른 친구들이 너를 괴롭히지 않으니까 그거면 됐다고 생각하신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3 때도 같은 반으로 배정되었다. 고3 담임 선생님은 첫날부터 나를 불러 나와 너 사이에 대해 전달받았다며 잘 부탁한다고 내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그때부터였을까. 네가 내 어깨 위 짐으로 느껴졌던 것은.
미리 변명하자면, 나도 고작 고3이었다. 수능 시험 스트레스가 상당한 수험생이었다. 어느 순간 매사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너와 밥 먹는 게 힘겨워졌다. 친구들과 별 거 아닌 것에도 웃고 떠들던 때가 그리워졌다. 친구들이 점심시간마다 나만 모르는 그들만의 추억들을 쌓아가는 게 부러웠다. 내가 선택한 일인데.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데. 네 잘못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네가 미워질 때도 많았다. 눈치 빠른 넌 내 삐뚠 마음을 알아챘다.
"졸업하면 나랑 연락 안 할 거지?"
"무슨 소리야?"
"아냐.. 오늘은 나 진짜 속이 안 좋아서. 점심, 친구들하고 먹을래?"
"그래. 쉬고 있어."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 시기였다. 자잘한 고민들은 나중으로 미뤄야 마땅했으니 나는 합법적으로 너를 마음속에서 유기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수능, 너와 난 서로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따냈다.
"성인 되면 핸드폰 번호 바꾸려고. 뭔가 새로운 마음으로."
"바꾼 번호 나한테 안 알려줘도 돼."
"응?"
"이제 나한테서 자유로워지라고."
언젠가 네가 내게 그렇게 말했을 때, 맞아. 사실 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게 너로부터 인지, 네가 아닌 그 무엇으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20대는 우울 없이 밝았으면 했다. 너를 끊어내지 않으면 나는 평생 널 신경 써야 할 것만 같아서.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너의 어둠들을 함께 지켜내야 할 것 같아서. 그게 더는 자신이 없어서... 비겁하게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나의 몫의 우울이 있었다. 그걸 너와 나눌 순 없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딸 많이 도와줬다고.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우리 딸이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도 갔어. 어머님, 따님 정말 잘 키우셨어요. 감사해요. 감사해요 정말..."
너와 나의 마지막이었던 졸업식 날. 영문도 모른 채 나를 쳐다보는 부모님과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하는 너의 어머님 사이에서 우린 짧디 짧은, 엇갈린 작별 인사를 했다.
"나 번호 바꿨어."
"응. 잘 가. 고생했어."
"응.. 잘 지내."
"잘 지내."
이후 다른 친구를 통해 네가 대학에 가서도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마음이 복잡했다. 늦게라도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아무도 너의 번호를 몰랐다. 어떻게든 알아내려면 알아낼 수 있었겠다만 그 또한 기만 같았다. 몇 년이 더 지나고 나선 동창들 중 그 누구도 너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넌 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그렇다면 응당 내 기억에서도 옅어져야 맞을 텐데 넌 조금씩 오래오래 내 기억에서 짙어졌다. 죄책감 때문인지, 미안함 때문인지, 그것도 아닌 그리움 때문인지조차 분간이 어려웠다. 술자리에서 이 얘길 처음 동창에게 꺼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착한 거야~ 누가 반장이라고 그렇게 나서서 했겠어. 난 그런 이유로 네가 걔랑 다닌 줄 몰랐어. 사실 걔한테 별 관심이 없었기도 했고. 갑자기 우리랑 밥 안 먹는다길래 우리가 싫나 했는데 걔 비밀 지켜주려고 했던 거야?"
"너네한테도 고마워. 나 이해해 줘서. 근데 나는 지금까지도 너무 죄책감이 들어. 그렇게 연락을 끊었으면 안 됐는데.."
"선의에 왜 죄책감을 느껴? 네가 걔 인생을 다 책임질 순 없는 거야."
"아... 이제 알 것 같아. 사실 선의가 아니었단 걸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거야."
"선의가 아니면?"
"이기심이었어."
처음엔 나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중학교 3년 내내 전교생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나는 밥 먹을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반 애들은 들으라는 듯이 나를 비웃으며 지나갔다. 친하지 않은 친구들한테 빌붙어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매점에서 빵으로 때우거나, 그냥 굶어버리는 날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타의로 밥을 굶고 있을 네가 안쓰러웠다. 나도 너처럼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들에게서 버려졌으니까. 부모님께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 추억 하나 없는 최악의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까.
그다음은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였다. 내가 따돌림하고 내팽개쳐지기 전에 나 또한 그 무리에 섞여 다른 애들에게 위협을 가한 적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애의 어깨를 치고 다닌다거나, 몰려가서 위협한다거나, 폭언을 하는 행위에 가담했다. 그리고 그 죗값은 몇 배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늘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는데 너를 통해서라도 그 죄를 씻어내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그렇기에 너는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생각한 이기적인 애였으니까.
"이기심으로 시작했더라도 결과가 선하면 나쁠 거 없다고 생각해. 어쩌면 이 세상에 많은 선의는 다 이기심에서 발현된 걸지도 몰라. 결국 내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들이잖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이기심이 꼭 나쁜 걸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너도 너를 그만 용서해. 그리고 과거를 놓아줘. 넌 할 만큼 한 거야."
"그땐 내가 너무 역겹다고 생각했어. 착한 사람인척 구는 게."
"이전의 너는 잘못했을 수 있지. 그렇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때 너는 착한 척한 게 아니라 착한 사람이 맞아. 하나의 잘못으로 전부를 매도하진 마."
"그렇다면..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걔한테 말해주고 싶어."
마지막 이유는 네가 좋아서였어. 우리 꽤 잘 맞았잖아. 너의 비밀 얘기를 내게 털어놔줘서 고마워. 조금이라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어. 또, 나랑 밥 먹어줘서 고마워. 여리고 어렸던 우리가 고마움, 미안함, 부담감 같은 큰 감정들에 억눌리지 않았다면 더 좋은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더 오래 볼 수 있었을까? 너는 이젠 울지 않고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보고 싶다 친구야. 언젠간 우연이라도 닿게 되면 나랑 밥 한 번만 먹어주라. 요즘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프로젝트명 '밥만 먹는 사이'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