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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민 Sep 21. 2021

준대로 받고 싶은 욕심

여기는 당분간, 러시아 모스크바


주변에 코로나 돌파 감염 사례가 더러 생기고 있다.


거듭하는 얘기지만 러시아는 이미 ‘위드아웃 코로나’ 상태라서 우리가 아무리 백신 맞고 마스크 열심히 쓰고 다닌다 해도 고약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다행히 백신 접종자들은 돌파 감염이 된다 해도 약한 몸살감기 수준인 듯하다)


모스크바에서 흔치 않은 마스크 착용 집단이었던 식당 종업원들도 이제 ‘턱스크’만 겨우 하고 있는 마당에 일반 시민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백신 접종률이 아직 28% 수준. 도처에 바이러스라는 얘기다.


처음엔 러시아 정부도 백신 맞기 캠페인도 하고, 모스크바 시정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백신 접종 완료 바코드를 제시해야만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등 조치를 취하는 듯 보였으나, 이제는 이들도 포기한 듯 보인다.


현지인들에게 들어보니 스푸트니크를 맞으면 불임이 된다는 등 무시무시한 루머가 많아서 특히 젊은 사람들 위주로 백신 접종을 대부분 꺼리고 있다고. 대신 돈 좀 있는 러시아 사람들은 프랑스나 독일 같은 주변 유럽 국가에 가서 화이자를 맞고 온단다.


러시아의 ‘요지경 코로나’ 소개는 여기까지 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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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 감염 사실이 확인되면 그때부터는 온 가족이 코로나 테스트 결과가 음성이 나올 때까지 무조건 격리다. 최소 2주다.  


러시아의 쿠팡 ‘오존’을 통해 생필품이나 식자재를 바로바로 배달해 먹을 수 있고, 배달 가능한 한인 마트도 있지만 격리된 채 매끼 해 먹는 건 엄청난 고역일 거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배달음식은 탄식이 나오는 수준이기 때문에,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되는 순간 온 가족이 퇴로 없이 자급자족 가내 수공업 신세가 되고 만다.


나도 언젠가는 당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감염자 가족에게 밑반찬이나 배달이 안 되는 베이커리의 디저트 같은 것을 보내주기로 했다.

격리 가족 집 문 앞에 음식을 놔두고 ‘놓고 갑니다’ 문자 메시지 남기고 돌아오는 거다.


그렇게 서너 가족 집에 ‘구호물자 배달원’ 노릇을 했는데, 여기서 또 한 번 나의 치졸한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나의 배달을 받은 사람들의 감사 인사가 '쇄도하길' 바라고 있었던 거다.


물론 감사 문자 메시지는 받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너무 감동이에요'

'밑반찬이 너무 맛있어요'(어떤 밑반찬인지, 어떻게 맛있는지 구체적으로 나열할수록 좋음)

'어쩌면 이렇게 세심하세요'


같은 ‘칭찬합니다’ 메시지를 보내줬으면 싶었고,

격리 해제가 되면 ‘덕분에 나았다’며 먼저 연락을 해주기를 바랐다.


한마디로 나를 확실하게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줬으면 싶었던 거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집은 없었다.


한 집은 수제 돈가스와 메추리알 장조림 등등 밑반찬과 함께 모스크바로 이사 올 때 싸온 스팸 몇 통을 갖다 줬는데, 남편을 통해 “야, 스팸 정말 맛있더라”라는 인사 외 내 반찬에 대한 칭찬이 없었다. 무진장 서운해서 남편한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그 직원이랑 놀지 말라고 했다. 유치하게.


또 다른 집은 밑반찬을 가져다주는 길에 먼저 연락을 했는데 남편에게 ‘반찬도 고마운데, 담배 좀 사다 주면 안 되냐’고 해서 또 살짝 빈정이 상했다.



도대체 난 얼마큼의 칭찬과 감사 인사를 바란 걸까.

주고도 이렇게 트집만 잡을 거라면 처음부터 안 하면 되는데, 왜 난 격리 가족이 생길 때마다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걸까.

참 변태 같은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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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며칠 전, ‘성인애착 유형 검사’라는 게 한국에서 제2의 MBTI로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TV나 에세이로 자주 접했던 아동 상담 전문가 ‘오은영 박사’가 추천한 테스트라고 했다.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아보는 테스트라는데, 간단히 말하면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신감이 있는지, 또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가졌는지에 대한 테스트다.


자기 긍정/부정, 타인 긍정/부정 성향에 따라

안정형 / 불안형 / 거부 회피형 / 공포 회피형으로 총 네 가지로 나뉘는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있고 남들의 시선에 쿨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성숙한 애착 유형이 자기 긍정 – 타인 긍정 성향의 ‘안정형’,

반대로 관계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하고 남들 눈치도 많이 보는 자기부정 – 타인 부정 성향을 ‘공포 회피형’으로 해석하는 듯하다.



나는 불안정 애착(공포 회피형) 인간이었다!


남들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회생활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좀 당황스러웠다.


질문지 중 ‘상대방에게서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하다’ 식의 문항이 몇 차례 나오는데,

복기해보니 그때마다 ‘구호물자 배달 경험을 생각하며 ‘매우 그렇다’를 눌렀더랬다.


난 준대로 받고 싶은 사람인 거다. 아니, 받고 싶어서 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굳이 베풀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반응이 없으면 실망한다. 참 얄팍하다.


생각해보면 친구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좋은 친구이고 싶어서 귀찮은데 굳이 만나자고 하고서는 후회하고, 지방에 있는 친구 집으로 놀러를 가겠다는 둥 지키기 힘든 공수표를 날린다.

그렇게 힘든 약속을 겨우겨우 지키고 나서는 친구들의 칭찬과 인정을 기대하고, 성에 차지 않으면 '에잇, 헛수고했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남편과 싸우는 이유도 생각해보면 ‘내가 준 만큼 너도 나한테 줘’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휴직하고 여기 모스크바에 와서는 내가 가사를 주로 하게 되면서 더욱 그렇다.


'내가 너를 위해서 오늘 한 시간이나 저녁 밥상을 차렸는데' (나도 맛있게 먹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산만한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 청소를 했는데.  화장실까지!' (화장실 청소가 집안일  가장 하드코어하긴 하지만, 가족끼리 화장실 청소 답례 인사를 받는 것도 좀 어색하긴 하다)

'내가 너를 위해서 네가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양말을 일일이 뒤집어서 세탁을 해줬는데' (근데 이건 좀 짜증 나긴 한다)


그러다가 '내가 너를 위해서 여기 러시아 땅까지 왔는데' (사실 나도 쉬고 싶었으면서…)


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고, 그다음엔 결국 남편에게 ‘네가 하는 게 뭐야’ 조로 시비를 거는 거다.


내가 선택하여한 일에 다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내가 만족하고 뿌듯해하면 되는데 왜 내가 준 것, 또는 그 이상의 인정을 받아야만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할수록 건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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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결과지 밑에 아주 간단하게 극복 방법이 적혀있다.


1.     회피에서 벗어나려는 에너지를 내부의 변화로 연결하자

2.     도망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운명을 따라나서고, 결과를 주체적으로 책임지자

3.     피하지 말자

4.     실패해도 괜찮으니 스스로 기회를 박탈하지 말자

5.     할 수 없다는 믿음을 버리자


추상적인 내용이라 마음에 잘 와닿지 않아 나만의 방식으로 '극복 방법'을 정리해보며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해보려 한다.


여기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내가 쏟은 에너지를 타인에게 오롯이 다 돌려 받아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단단하고 당찬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남에게, 그리고 나에게 아끼지 말고 충분히 주자.’

‘베풂의 대가를 당장 받을 거라 생각하지 말고, 기대를 내려놓자'

‘하지만 믿자. 내가 하는 일에 헛된 것은 없다고’



[덧붙임]


스푸트니크 2차 접종 완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돌파 감염자가 될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는 내가 있으니' 무조건 잘 견뎌내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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