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알코올의존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아마 그런 거 같아, 그럴지도 몰라, 그렇겠지.
라고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전문가에게 ’ 맞아요 ‘라고 듣는 건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혹은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우울증 진단 척도를 아무리 해보아도, 거기서 우울증상 심각단계라는 결과가 떠도 ‘이거 믿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나는 정말 자주 ‘심각’ 단계가 뜨는데,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당장 생활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 이게 맞나?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감정이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상황이라, 그냥 넘어가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원장양반은 나에게 몇 가지를 물어봤다.
뭐가 제일 ‘불편’한 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계기였다고 추측되는 게 있는지.
예상되는 질문이었다.
증상 위주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며 울지 않을 수 있었고, 한편으론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중간에, 어릴 때도 그런 적 있었는지 물었다.
이전에, 3-4년 전에 말고.
자살과 자해를 생각해 본 적.
생각해 보니, 첫 자해, 자살생각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규모가 큰 왕따와 그 상황을 악화시킨 담임의 여파였다. 우리 집 약통은 다들 대용량이었는데, 저 약통에 있는 약과 방부제를 모두 먹으면 그 모든 것이 다 끝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생각보다 오래 전이구나. 첫 우울증은.
저게 우울증이란 생각을 못해봤었는데. 그랬구나.
첫 우울증이 그 때였겠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 이후 중3-고1, 대학교 3학년, 행시 그만두고 나서 복학한 막학기.
4-5년 주기로 왔었구나.
미디어로 접한 우울증과는 조금 증상이 다를
수 있었다.
죽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저 약을 다 먹어볼까
차도로 뛰어들어볼까
손목을 그어볼까
물에 뛰어들어볼까
반드시 죽고 싶다는 게 아닌데 이게 과연 자살사고일까.
그렇게 넘어갔던 듯하다.
술도 그렇다.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다음날 지장이 간 적이 없는데, 이게 과연 알코올의존증인가? 단지 매일 술을 먹는 것뿐인데. 하루에 한-두 캔 밖에 안되는데.
목마를 때 먹는 음료수 같은 느낌인데.
여튼. 이 생활, 증상들이 진짜 우울증, 알콜의존증이라는 말을 귀로 들으니, 그래도 일편 안심이 되었다.
아니라고 했으면, 대체 나에겐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더 답이 안 나왔을 것 같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차차 다시 살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