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
이지안의 신작 <Just after Christmas>는 노르웨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완성됐다. 일상 사진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하는 그의 작업은 ‘변하는 것과 쉽게 변하지 않는 것, 떠나는 것과 남겨지는 것’을 생각하게끔 한다.
사진의 이중생활
이지안(a.k.a. 구 이향안)의 작업 타임라인에는 몇 개의 변곡점이 존재할까. 작가들이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간헐적으로 그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놀라움을 주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지안이다. ‘이향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는 셀프 포트레이트에 나뭇가지를 덧댄 작업을 필두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색 가득한 스틸라이프를 시도했었다. 그런가 하면 주목받지 못했던 도시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찍은 사진 위에 오브제를 배치하기도, 작가 행동반경 안에서 마주한 풍경과 사물에 독특한 조형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이지안’으로 선보인 <Just after Christmas>에선 일상의 풍경을 이용해 입체감과 초현실성을 부각하고, 동시에 새로운 내러티브도 구축했다. 일견 작업은 저마다 개성이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체 실험’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유지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혜의 눈’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지안(智眼)’처럼 공통된 주제를 슬기롭게 변주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지안은 ‘이중성’이라는 사진 속성에 초점을 맞춰 작업한다. 진실과 거짓을 오가고,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것이 작업 핵심이다. 처음부터 실험적으로 사진 속성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 본성을 가진 채 태어나지만, 환경과 경험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쳐 나가며 성장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초기의 ‘셀프 포트레이트+나뭇가지’ 작업이 이를 방증한다. 그림을 연상케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지안은 회화와 사진의 차별점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답은 내면의 무언가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 회화라면, 사진은 외부 요소를 내면으로 끌어오는 매체라는 것. 다시 초기 작업으로 돌아가, 사진에 약간의 실험(평면→입체→평면)을 가미했음에도, 의미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작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절단과 결합이 반복되면 본디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사진이 더는 객관적인 재현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에 무관심한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으리라. 이때부터 그는 사진의 이중성을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초기의 ‘셀프 포트레이트+나뭇가지’ 작업이 스튜디오에서 완성됐다면, 최근 작업은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작업 방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거리를 거닐며 눈길 가는 대로, 특별한 의미 없이 셔터를 눌렀을 뿐이다. 이후 사진 위에 오브제를 감각적으로 올린 다음, 재차 사진을 찍어서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 결과물은 분위기가 묘한데, 일상이 환상으로 전환된 모양새다. 사진의 표면(껍데기)과 실제 물건이 만나 다시 표면(껍데기)을 만든 셈이다. 즉, 2차원과 3차원이 만나 2차원이 되고, 실재와 실재가 만나 허구가 된 것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포토샵 클릭이 아닌, 손재주로 눈속임을 구현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Just after Christmas>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르웨이에서 촬영한 사진 위에 돌, 유리, 음식 같은 일상의 소재를 결합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 작업이 네모난 사진의 틀 안에서 재구성(크롭)된 것과 달리, 이번 작업은 사진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것.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이를 통해 보는 이는 물질성이 부여된 사진의 변화, 사진을 비물질로 소유하는 방법 등을 고민할 수 있다.
서구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매체 실험’ 작업의 기저에는 사진의 기계적인 속성을 연구하는 풍토가 짙게 깔려 있다. 작가들은 이를 무미건조하게 감각적인 설치작업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사라지는 기억 같은) 사회적인 이슈와 엮어내기도 한다. 이는 ‘매체 실험’과 ‘의미’가 결코 물과 기름 같은 존재가 아님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각설하고, 아쉽다고 해야 할지, 과도기라고 해야 할지 분간이 서질 않지만, 이지안의 <Just after Christmas>는 초기 작업으로 회귀한 듯 보인다. 분명, 실험적이긴 한데 감각보다는 감정에 의존한 듯하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사진의 경계, 시각적 착시 효과, 평면과 입체의 넘나듦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근래 작업과는 결이 다르다. 아마 타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이 강하게 투영된 탓일 테다.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가 산발해있는 것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예전 같았으면, ‘사진의 이중성’을 실험하는 것이 커다란 틀이었을 텐데, <Just after Christmas>는 ‘노르웨이 생활이 힘들고 외로웠어.’라는 감정과 의미가 부여된 틀 안에 ‘매체 실험’을 가뒀다고 할까. 이로 인해 그동안 보여주었던 조형성이라는 매력이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아기자기하게도 사진과 함께 공개한 영상 작업에는 ‘종점은 시작하는 길로 이어져 있다. 흐르는 것은 물뿐만이 아니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감정은 잠시 돌아가더라도, 감각과 전체적인 작업 기조는 가지치기한 곳에서 새로이 시작하기를, 다음 작업에서 기대해본다. [2020. 02]
이지안 사진의 이중성(진실과 거짓, 2차원과 3차원 등)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촬영한 사진 위에 오브제를 올려놓고, 다시 촬영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Just after Christmas>(공간 291+공간 황금향, 2019), <따뜻하고 푸른 물결>(홍티아트센터, 2018) 등의 개인전 포함,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hyangan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