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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Sep 01. 2020

타인을 보는 눈

김옥선

김옥선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여름을 수놓고 있다. 먼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개인전 <Berlin Portraits>에서는 지난 50년간 독일에 정착해서 살아온 재독 한인 간호 여성들의 모습을 선보였다. 그리고 현재 경기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단체전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에서는 대만 다문화가정의 2세 청소년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오슝 포트레이트, Digital c-print, 125x100cm, 2019, 가오슝미술관 및 경기도미술관


명징하게 조명된 초상사진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김옥선의 초상사진만큼 명징하게 조명된 작업이 과연 있을까. 너무나 많은 매체에 등장했기에 시계를 반대로 돌려보아도, 잊었던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이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래서 김옥선 작업을 다룬 글 몇 개를 들춰보기로 한다. 먼저, 그의 작업은 국제결혼을 한 자신과 남편, 남편의 친구들, 자신과 유사한 다문화 커플, 동성애 커플, 제주 거주 외국인 등 주로 작가 주변에 머무는 소수자들의 삶과 정체성을 탐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박상우). 비슷한 맥락으로, 이러한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고자 하는 내밀한 욕망에서 시작된 작업은 작가 자신의 삶에 관한 질문의 성격, 즉 메타포적인 자화상에 가깝다(박평종). 더 나아가 미묘한 상황 포착과 절제로 인해 낱낱이 응집된 장면의 세부들은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의 시선과 감각을 재구성하게 하며, 혼성의 삶과 일상을 수용하는 열린 시야를 획득하도록 강제한다(이영욱). 위 문장들은 독립된 존재로서의 여성을 상징하는 <Woman in a Room>, 국제결혼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Happy Together>,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정체성과 문화적 경계와 혼성을 말하는 <Hamel’s Boat> 같은, 이질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을 그려내는 김옥선의 대표작들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왼쪽) 가오슝 포트레이트 / (오른쪽) The Shining Things


애잔함이 묻어나는 눈빛

김옥선이 신작을 선보인 전시 <Berlin Portraits>(아뜰리에 에르메스)와 10월 13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로 화제를 돌려본다. ‘베를린 초상’과 처음 마주했을 때 촉촉해진 눈가를 숨기느라 애썼던 기억이 난다. 지난 50여 년 동안 ‘이주 한인 소수자’로 살아온 재독 한인 간호 여성들의 초상이 가슴을 후벼팠기 때문이다. 이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을 떠나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낸 그들의 일대기에서 우리네 어머니가 오버랩 되기 때문이리라. “인간이 행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얼굴에 각인된다.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한 권의 열린 책이다.”라는 에릭 호퍼의 말(김윤경의 글에서 재인용)도 떠오른다. 분명 눈과 입꼬리는 미소를 띠고 있는데, 슬픔이 묻어 나오는 눈빛에서, 근력이 약해져 어딘가에 기대앉아 있는 몸가짐에서 인생의 무상함도 전해진다. 장밋빛 인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노동자로서 평생을 가족과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만 했던 그들의 삶이 애석하기만 하다.


한편, ‘가오슝 포트레이트’는 우리나라보다 결혼 이민자 유입이 10년가량 앞선 대만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을 기록한 작업이다. 김옥선과 독일인 남편, 그리고 딸이 우리나라에서 경험했던 혼란스러운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가오슝 포트레이트’는 비록 외래종이지만 이제는 제주의 흔한 풍경이 되어버린 야자수를 촬영한 <The Shining Things>의 연장선으로 인식된다. 열병을 일으켰던 이질적 풍경이 일상의 온도로 전환된 대만 다문화가정과 제주의 야자수가 유사한 맥락이라는 건 분명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인물들의 눈빛은 어딘가 불안정하다. 그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만 같은 애잔한 울림이 전해진다. 사진에서 TCK(Third Culture Kid, 여러 나라를 옮겨 다녀 어느 문화권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가 겪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이 묻어나는 까닭이다. 익숙하다지만 간혹 생경하게 다가오는, <The Shining Things> 속 색이 바래버린 그래서 쇠약해 보이는 야자수와 참 많이 닮았다.


(왼쪽) BNP_8711JS, Digital c-print, 189x150cm / (오른쪽) BNP_8709CZ, Digital c-print, 150x120cm, 2018


정직함의 가치

김옥선의 사진은 정직하다.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눈앞의 대상을 프레임 안에 담아낸다. 그렇다 보니 별다른 수정도 없다. 특별하지 않은 인물 포즈도 인상적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자세다. 그는 타인의 삶을 관조하기라도 하듯, 오랜 시간 낯선 눈빛을 들여다본 후 셔터를 누른다. 지극히 건조하고 평범한 사진이지만, 인물의 눈에서 특별한 감정이 읽히는 이유다. 김옥선 작업의 응집력은 사진을 열거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그는 비슷한 것들을 집적하고, 열거하며,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작업의 선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속 인물들과 ‘눈의 대화’를 하게 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도록 한다. 나아가서는 자신과 주변인의 삶을 돌아보고, 개인이라는 존재가 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한다.


최근 김옥선 작업에서 눈에 띄는 건 예전에 비해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소(생필품, 의복 등)’가 잘 드러나지 않는 프레이밍이다. 이로 인해 ‘이방인’의 의미처럼, ‘이방인’ 개념이 머릿속에 정착되지 않고 표류하는 느낌이다. 점점 부드러워지는 인물 표정도 흥미롭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엔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최고의 컷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당사자 입장에서 한 번 더 고려한다고 한다. 덕분에 보는 이는 사진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무르익듯, 작업도 성숙해지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에 반응할 차례다. 감상하는 사람의 생각도 성숙해져야 한다. 사진이 사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정직한 마음과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뜻이다. [2019. 09]




김옥선 국제결혼 커플, 여성, 제주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왔다. 김옥선의 사진은 중심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 대상으로 향한 시선을 가지며, 미묘한 상황 포착과 절제, 특유의 디테일을 특징으로 한다. 일우사진상(2017)과 동강국제사진상(2016), 다음작가상(2007)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www.oksun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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