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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Sep 10. 2020

김녕만 _ 해학 있는 풍경

김녕만이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은 분명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리고 각박한 세상에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따스함도 있다.


1989년 판문점


김녕만의 ‘유머가 있는 풍경’은 이중적이다. 사진의 첫인상은 ‘재미’가 있다. 시골의 한가로운 풍경이든, 격동의 시절 일어난 사건·사고 현장이든 한결같이 유머가 묻어난다. 지금처럼 디지털카메라도 아니었을 텐데, 요즘 말로 ‘움짤’의 한 프레임 같은 장면을 흑백필름으로 포착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악수를 하면서 시선은 내레이터 모델을 향해 있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라든가, 판문점에서 한국 기자들의 흐트러진 뒷모습과 대비되는 경직된 북한 군인의 표정, 링 위에서 라운드걸의 모습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복서의 모습 등 해학이 묻어나는 찰나를 동물적 감각으로 포착한 그의 시선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웃음 뒤에는 페이소스도 있다. 김녕만은 자신의 작업에 관해 “웃음 속에 눈물도 있고, 생활도 배어있고, 인간미도 들어 있는, 말하자면 판소리 같은 사진을 해보고 싶다. 이미 문학에서, 음악에서, 또 그림에서 표현되어 왔던 우리의 해학을 사진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내 사진이 ‘판소리와 같은 해학 사진’이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다만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주는 그런 사진이길 바란다.”라고 말한다. 그의 사진이 잔잔한 웃음을 주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고, 동시에 긴 여운이 남는 이유다.


(위) 1985년 서울 방배동 / (아래) 1976년 경기 수원


사진가 육명심은 김녕만 사진에 대해 “마지막 인디언이나 아이누족을 보듯 우리의 마지막 토박이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생명의 맥박 소리를 듣는다.”라고 평한다. 한국적인 뿌리를 찾는 데 일조한 그의 사진이 대견했으리라. 하지만 이는 ‘유머가 있는 풍경’이 사진집으로 나온 1990년대 초반, 과거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져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던 시절의 얘기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육명심의 말은 ‘사라져간 문화’보다는 ‘잃어버린 유머’로 읽히는 것이 사실이다(비록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해학은커녕, 살벌하고 공격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이 작금의 상황 아니던가. 정치판을 봐도 그렇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봐도 그렇다. 심지어 웃음을 주겠다는 코미디 프로그램도 그렇다.


1994년 서울 코엑스
1986년 서울 학생체육관


약간의 여유를 가진다고 해서 정말 세상이 크게 달라질까. 가뜩이나 각박한 세상인데,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따뜻하게 웃어주기보다는, 쉽게 화내는 일에 더 익숙한 게 현실이다. 어찌 됐든 김녕만의 옛날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옅은 미소와 함께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된다. 아직은 그의 ‘옛날’ 사진이 해학과 잔잔한 웃음이라는 또 다른 전통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2019. 07]




김녕만 다큐멘터리 사진가. 1970년대 후반 동아일보에 입사,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을 발로 뛰며 기록으로 남겨온 ‘시대의 목격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고, 판문점 및 청와대 출입 기자 등을 거쳤다.


(왼쪽) 1973년 전북 부안 / (오른쪽) 1974년 서울 천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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