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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Sep 30. 2020

시간의 틈 사이로

김태동

‘제6회 아마도사진상’ 수상자 김태동의 개인전 <플라네테스>가 12월 20일까지 ‘아마도 예술 공간’에서 열린다. ‘전쟁’을 모티브로 하는, 긴장감과 시간성을 느낄 수 있는 두 개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강선(Rifling)>, Digital Pigment print, 2017


낯선 자들의 도시

김태동의 작업은 도시와 그곳의 기묘하고 낯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도심과 변두리 지역이라는 구분과 경계에 관심을 두고, 평범한 도시 풍경과 인물을 비일상적인 분위기로 포착’하는 것이 핵심이다. 뉴욕 플러싱 한인 타운에서 진행한 <Symmetrical>(2010~)은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주 한국인들의 심리적 초상을 시각화했고,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의 경계 속에서 작업한 <Daybreak>(2011~)는 건축 구조물을 배경 삼아 도시를 배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냈다. 이와 함께 고향인 연신내에서 촬영한 <Break Days>(2013~)는 개발과 파괴가 반복되는 서울 경계 지역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김태동이 예전부터 선보여 온 작업들은 ‘경계’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더불어 사대문 안(도시 중심부)에 편입하고 싶어 하는 인물의 욕망도 감지된다. 스트레이트 한 사진들로 구성됐지만, 그의 작업을 몇 개 단어로 아우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 속 인물 삶에 관여하는 대신, 상상의 여지를 다분히 남겨둔다. 이는 보는 이의 심리 상태와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강선(Rifling)>, Digital Pigment print, 2017
<강선(Rifling)>, Digital Pigment print, 2015


역사적 잔흔 앞에서

‘제6회 아마도사진상’ 전시에서 김태동이 선보인 작업은 <강선>(2015~)과 <ΠΛΑΝΗΤΕΣ, PLANETES>(2017~)다. 두 작업 모두 ‘전쟁’을 모티브로 한다. 먼저, <강선>은 전쟁의 상흔이 깊게 새겨진 경원선 라인 인근(동두천-백마고지)을 추적하며 담아낸 시골 마을 풍경으로 구성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잔잔한 긴장감을 밤의 적막함으로 표현했다. 한편, <ΠΛΑΝΗΤΕΣ, PLANETES>는 철원 수도국지(강원도 최초의 상수도 시설)에서 별을 촬영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흔들린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별의 자전 궤적을 추적하는 ‘적도의(지구 자전축에 평행한 회전축과 그에 수직인 또 하나의 회전축으로 구성)’를 이용했다. 프레임 위에 멈춰 있는 듯한 별과, 흔들린 전쟁 유적지 및 퇴역 무기가 눈에 띈다(시간당 15° 정도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별의 궤적을 추적하면, 정지된 대상이 흔들린 것처럼 촬영된다). 역시나 조용한 긴장감이 흐른다. 여전히 익숙한 듯 어색하지만, 기존 작업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작업이 도시와 변두리, 중심과 외곽에 존재하는 ‘경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강선>과 <ΠΛΑΝΗΤΕΣ, PLANETES>는 ‘전쟁을 둘러싼 것들’에 집중한 모양새다. 또한, 작업 대상이 ‘우연히 만난 인연’에서 ‘철저한 리서치를 해야 하는 역사적 잔흔’으로 달라졌다. 하지만 이미지 자체만 보면 추상적 성격이 짙다. ‘전쟁’이라는 직관적인 소재에 함몰되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작업 안에서 유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ΠΛΑΝΗΤΕΣ, PLANETES>, 2017

우리를 둘러싼 것들의 순환

<강선>과 <ΠΛΑΝΗΤΕΣ, PLANETES>를 감싸고 있는 건 긴장감과 시간성이다. ‘긴장감’은 ‘밤’이라는 배경에서 기인한다. 막이 올라가기 직전 연극 무대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스산하지만 아름답게 다가오는 밤의 양면성이 묘한 기운을 자아낸다. 반면, ‘시간성’은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동시에 표현하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강선(Rifling)은 ‘총포 내부에 나사 모양으로 판 홈’이다. 탄환이 나선형 홈을 빠져나가기에 포탄 자국을 보고 어떤 총을 사용했는지 예측할 수 있다. 마치 ‘흘러간 시간의 흔적’과 ‘역사의 순환’을 빗댄 듯하다. <ΠΛΑΝΗΤΕΣ, PLANETES> 내 고정된 별과 흔들린 대상의 대비도 흥미롭다. 보통 ‘별’을 찍었다고 하면, 흔들리게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별에 감정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태동의 작업은 반대다. 별은 이성적으로, 전쟁 유적지와 퇴역 무기는 심리적으로 접근한 것처럼 보인다.


별의 궤적을 역사로 상정하면, 이는 물리적인 시간(크로노스) 속에서 전쟁을 상기하고 톺아보는 자신만의 시간(카이로스)을 갖는 것과 다름없다. 경계를 넓혀, <강선>과 <ΠΛΑΝΗΤΕΣ, PLANETES>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의 생성과 파괴, 역사의 순환 등을 스트레이트하게 말하는 <강선>을 크로노스, 다소 추상적인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ΠΛΑΝΗΤΕΣ, PLANETES>를 카이로스라 하더라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두 작업을 한 공간에 병치할 때 얻는 효과는 자명하다. 바로 ‘시간 축의 중첩’이다. 기록사진이 특정 시간대에 갇혀 있다면, 김태동 작업은 시간의 틈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보는 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침으로써 전쟁이란 소재를 여러모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태동 작업의 전체적인 틀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도시’라는 미시적인 존재에서 ‘흘러간 시간’이라는 거시적인 존재로 소재만 확장됐을 뿐이다. ‘일어났던 일’을 기반으로, 생각을 여러 갈래로 가지치기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다. 개별 작업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본다면, 김태동 작업이 ‘우리를 둘러싼 것들의 순환’으로 귀결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19. 12]




김태동 시간과 공간, 낮과 밤 등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도시 풍경을 비일상적인 분위기로 포착하는 작업을 한다.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제6회 아마도사진상(2019), 일우사진상 ‘올해 주목할 만한 사진작가’(2012), KT&G 상상마당 SKOPF 최종 작가 3인(2011) 등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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