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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Apr 26. 2021

웃으면 복이 올까?

웃어서 행복한 것일까, 행복해서 웃는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웃음과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웃음과 행복의 의미는 만고불변하는 것일까. 웃음이 고픈 현대인들을 위한 웃음과 행복을 둘러싼 몇 가지 이야기.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를 구분 짓는 건 눈 주위 근육이다.


웃음의 의미


‘웃음 전도사’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다. ‘신바람 박사’도, ‘희망 전도사’도 그랬다. 한때 ‘웃음이 헤퍼야 성공한다.’라는 말이 하루가 멀다고 여기저기서 소개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행복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다던 강사의 책이 출간된 직후다. 책의 골자는 성공과 행복,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면 유머를 장착하라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성공한 사람들은 유머 지수가 높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라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 때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웃을 일이 널려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코미디언들까지 나서서 책을 홍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저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매일 극도의 통증에 시달려야 하는 지난한 투병 생활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였다.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사람들이 주야장천 떠드는,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는 희망의 말이 다시 절망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지라 오랫동안 그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웃음과 행복은 비례라는 인생의 공식도 무참히 깨졌다.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웃음’만 있으면 집에 빨리 갈 수 있다던, ‘웃음 전도사’의 만병통치약 처방전은 대중 앞에 나서기 위한 한낱 원고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당연히 징징대는 것보다야 웃는 게 낫겠지만,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도 아니고,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웃음도 뒤따른다. 참고로 웃음은 근육 긴장을 풀어주고 혈압을 내려주며, 엔도르핀 분비를 늘려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단다.


한국의 양극화 문제를 실감 나게 보여준 영화 <기생충>                                


웃음=경제적·사회적 성공?


‘웃음’이라는 단어를 검색 사이트에 입력해 보았다. 웃음을 논하는 콘텐츠 대부분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주제로 하고 있다. 유머러스한 사람은 일의 능률을 올리고, 동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존경까지 받는다고 한다. 무슨 일을 부탁할 때도 유머 코드가 있어야 센스 있는 사람이 된단다. 인상적인 점은 웃어야 성공한다고 말하는 책이 ‘자기 계발서’로 분류된다는 것. 유머를 계발하고 웃음을 팔아 사회적 성공을 쟁취하라는 말로 들린다. 그래야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니까. 다양한 사례에서 시작된 책이 ‘행복=경제적·사회적 성공’이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을 보니 참으로 냉정하단 생각이 든다. 지나간 우리의 시간을 반추해보자.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면서 해. 다 좋자고 하는 일 아냐.”라는 말을 들었던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하회탈을 쓰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짢은 표정이다. 또한, 나랏일 하시는 분들은 어찌나 세상 물정을 잘 아시는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행복을 위해 결혼해서 애를 낳고,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내라고 한다. 하향식(Top-down) 사회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이들은 소시민들이 ‘뒤셴 웃음(Duchenne, 눈 주위 근육을 사용해 입과 함께 웃는 진짜 웃음)’을 보낼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모두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럴 땐 이렇게 웃고, 행복하다고 말하라’라는 지침이 있는 ‘웃음과 행복의 공산주의’를 구축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어쭙잖은 권력으로 남의 웃음을 종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와 행복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하는 <그리스인 조르바>
세련된 비판과 풍자를 보여줬던 코미디언 김형곤


그냥 아무나 돼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의미한다. 분명 행복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지독히도 하나만 얘기하는 게 현실이다. 유일무이의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으라고 떠들어대니 우리 삶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 자신보다 행복하다고 여겨지면,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그를 비난하지 않는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라고 말한다. 행복은 ‘추상적 사유를 통한 자기 설득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감각의 경험’인데, ‘다른 사람과의 비교’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달이 나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속 박 사장(이선균)네와 기택(송강호) 가족을 보면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현상에 관해 많은 사람이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비뚤어진 욕망에서 기인한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이야 조선 시대 ‘붕당정치’ 때도 치열했지만, 경쟁으로 인한 오작동(질환, 범죄 등)이 대두하기 시작한 것은 IMF 이후의 일이다. 과거에 힘들게 살았으니 내 자식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그래서 남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정작 경쟁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방법은 가르치지 못한 채 말이다. 무엇이 되면 어떤가. 아무나 돼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허세 가득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코미디언 안일권의 유튜브


속물적 유머


어찌 됐든 시대가 말하는 성공의 필수조건은 아닐지라도, 사전적 행복의 충분조건 혹은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웃음’이 각박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경기침체, 고용불안, 양극화로 인해 도무지 웃을 일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짓는 ‘웃음’도 있다. 항공기 승무원들의 억지 미소를 빗댄 ‘팬 아메리카 웃음(Pan-American)’이다. 슬픔과 분노를 감추기 위해 행복한 척하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 증상으로, 경쟁에 내몰린 직장인과 서비스직 노동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최근 곪아버린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웃음 치유’가 사업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아픔을 권유하는 시대가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우리에게는 2,500원을 내면 즐길 수 있는 웃음 유발 콘텐츠가 있(었)다. <유머 일번지>, <쇼 비디오자키>, <개그 콘서트> 등이 바로 그 예다. 굳이 윽박지르지 않더라도 잔잔함 속에 촌철살인 멘트를 녹여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탱자 가라사대’가 여전히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그런데 요즘 개그는 감흥이 없다. 세련된 비판이나 풍자가 아닌, 외모 비하나 소수자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속물적인 유머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국회방송 생중계가 더 재밌다. 비록 긴 시간 보고 있으면 열불이 나지만. 의리로 ‘고인 물 콘텐츠’를 보느니,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짤방을 보는 게 차라리 생산적이다. 이들 특징은 간결하면서 폐부를 찌르는 돌직구 스타일이라는 것. 자극적이고 휘발성 강한 웃음을 선호하는 건 사회 분위기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가뜩이나 골 아픈 세상, 잠시나마 매일의 비극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구가 될 수 있는 건 호흡 짧은 웃음을 통한 ‘쿨링 브레이크’가 아닐까.


호흡 짧은 웃음의 대표격인 ‘짤방’


일단 미지근하게라도 웃어라


인간의 몸은 650개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웃을 때 움직이는 근육은 230개 이상이다. 그리고 우리 얼굴은 80개의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웃음에 관여하는 건 15개 이상이다. 한편, 우리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은 7천 개 정도이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놀라움, 두려움, 분노, 슬픔, 행복, 혐오 6가지라는 게 학계 정설이다(인간에게 27가지 감정이 있다는 최근 논문도 있다!). 이보다 더 다양한 것은 웃음의 종류다. 어림잡아 50개가 넘는다. 쓴웃음인 고소(苦笑),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기는 냉소(冷笑), 소리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미소(微笑), 참아야 하는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실소(失笑), 조롱하는 태도의 조소(嘲笑)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큰 소리로 껄껄 웃는 가가대소(呵呵大笑),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 박장대소(拍掌大笑), 어이가 없을 때 나오는 앙천대소(仰天大笑) 등도 있다. 웃음과 행복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편은 아니지만, 실제 ‘웃음’의 효과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핵심은 억지웃음도 정상적인 웃음의 90% 효과가 있다는 것. 뇌가 진짜와 가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해서란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엔 여전히 변함없지만, 어쨌든 징징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플라시보(Placebo)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다음 페이지의 사진들을 보며 웃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말 실소나 쓴웃음도 효과가 있는지 스스로 검증해보길 바란다.

[201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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