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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계절에 두었다.

효연산문 4

by 박효연

모든 게 선명해지는 계절이 왔다

코 끝을 스치는 향기와 냄새, 시선이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색의 향연, 농밀하게 다가오는 목소리, 이토록 뚜렷한 감정, 교류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 일렁이는 두 사람의 생경함, 마음을 간지럽히는 친절한 바람.


봄이 오려면 모든 것이 희미한 계절에 놓아주어야 할 것을 보내야 한다. 오색찬란한 계절에 놓게 되면 그것은 다시 선명해진다. 원숭이가 과일을 놓지 못해 원주민에 잡아먹힌 것처럼 나도 그 추억에 매몰당해 잡아먹히게 된다. 나의 색 바랜 추억은 희미한 계절에 두었다. 다가올 날에, 내 마음이 말랑해진 날에 무언가를 잔뜩 들여놓기 위해 기꺼이 보내주었다. 그리 쉽지는 않았으나 어렵지도 않았다. 잘못된 걸 이미 오랜 계절을 보냄과 동시에 알았으니까. 나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기에 잘 보내줄 수 있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내가 변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아서 나아갈 것 같아서. 더욱 잘 빠르게 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더 많은 걸 영위하기 위해 구질구질한 것은 버려두고 가야겠다.


일단 구질구질 한 나부터 버려두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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