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엄마의 딸

딸이 딸에게

by 그래좋다고치자


"자기 전 매번 같은 생각을 해. 이대로 눈 뜨지 않게 해 달라고. 요즘엔 그냥 죽고 싶어. 이대로 죽어도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아. 엄마 진짜 그래."



며칠 사이 엄마가 야위었다. 밥도 먹질 않고 매번 죽고 싶다는 말로 내 마음에 비수를 꼽는 건 일상이 되었다. 잠시 엄마를 떠올린다. 더 엄마스러웠던, 그래서 내게 더 익숙한 엄마의 모습을 그려본다. 웃을 때면 복스럽게 자태를 뽐내던 볼살, 시원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눈매는 보는 이마저 피식 웃음 짓게 만들었다. 특유의 깔깔거리는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정도의 유쾌함이 담겨있었다. 유난히 작은 키에도 언제나 큰 꿈을 품고 살던,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그런데 요즘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듯 웃어도 웃는 게 아닌 듯하다. 작은 바람에도 꺾일 듯 휘청이는 당신 앞에 나의 마음은 조급하다. 내가 뻗은 손에도 쉽게 툭 부러질 것만 같다. 엄마, 도대체 왜 그래. 그저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는 엄마다. 더 이상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헤집는다. 나마저 무너지면 안 되는데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생각을 않는다.



*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당신이 옳다 중에서)



엄마를 돌아본다. 그리고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야간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막내딸이 무섭지는 않을까 밤늦게 불을 켜고 있었다던 외할머니. 당신의 곁에는 양푼이에 담긴 비빔밥이 있었노라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땐 어깨 한 번을 못 피고 있던 외할머니는 2살 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나자 돌연 태도가 변하셨댄다. 나의 할머니 앞에서 얼마나 떵떵거렸는지 모른다며 그땐 아주 속이 시원했노라 말했다. 유독 나를 아끼셨다던 외할머니는 4살이 된 내 양손에 막대 사탕 하나씩을 쥐어주고 돌아가셨다고, 사돈 댁 앞에서 한 번은 떵떵거리고 가서 다행이라며 섭섭함이 한껏 배인 웃음을 짓던 엄마를 기억한다. 아주 어렸을 적의 이야기라 내게는 외할머니에 관한 희미한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다. 다만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 남은 액자 속 사진을 통해 어떤 분이셨을지를 짐작하는 수밖에는 없다.



"엄마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어떤 분이셔?"

"우리 엄마 생각하면 불쌍하기만 해. 평생 자식들만 보고 살았는데 죽기 직전까지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었어. 그래서 엄마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와. 정말 안 됐어, 우리 엄마."



돌이켜보면 엄마는 외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야자를 마치고 12시가 지난 시간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던 엄마를 떠올린다. 한 겨울에는 두꺼운 이불을 둘러싸고 반쯤 감긴 눈을 하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그 모습에 외할머니가 겹쳐지는 건 왜일까. 귀가 닳도록 들었던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오늘따라 내 가슴을 후벼 판다. 엄마가 엄마일 수 있었던 이유, 나에게 다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그곳에 있었다.


"그런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

"그냥 불쌍하지."

"고맙다는 생각은 안 들어?"

"고맙지는 않아. 그냥, 불쌍해 우리 엄마."



눈물을 참으려 애쓴 덕에 목 끝엔 칼칼함마저 느껴졌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이 쉬이 나오질 않았다. 한참 목을 가다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딸에 불과했던 우리 엄마에게. 딸이 딸에게.



"그런데 엄마, 나는 엄마가 외할머니처럼 평생 자식만 보고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내 기억 속의 엄마가 그저 불쌍한 엄마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해.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 내가 항상 응원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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