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음과 잃음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잃으며 살아온 것 같다

by 그래좋다고치자

학교는 공사 인부들로 가득하다. 열명 남짓의 인부들은 창 너머로 오래된 흔적들을 꺼내느라 여념 없다.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듯하다.



4학년 교실 복도엔 구멍이 하나 있다. 지킴이 선생님 말로는 오래전부터 그래 왔단다. 유독 눈에 띄는 어두운 색 타일로 그 위를 간신히 가리고 있었는데, 바쁜 걸음에 밟기라도 하는 날이면 공기 중으로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퍼지고 만다. 성인 치고도 무거운 내 몸무게 때문은 아닐런지 하는 걱정을 면할 수 없다가도 이따금 지나치는 학생의 작은 발바닥이 타일과 만나 엇비슷한 소음을 만들어내면 왠지 모를 안도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이제 4학년 교실 복도, 아니 학교 모든 곳에서 옛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4번의 공사를 거친 탓이다. 아니 5번, 아니지 6번이던가... 아, 정확히는 8번이다. 외관 공사, 운동장 공사, 주차장 공사, 페인트 공사, 샷시 교체 공사, 강당 및 급식실 건축, 페인트, 학교 숲 공사 그리고 마루 교체 공사까지. 마치 번데기가 탈피를 하듯 주기적으로 오래된 옛 흔적을 벗고 그 위에 새 것들을 채워나가는 형식이었다.



시멘트 바닥을 훤히 드러낸 학교가 낯설다. 음산하기까지 하다. 민낯을 드러낸 바닥 위로 예전보다 짙은 색의 타일이 깔릴 모양이었다. 밝은 색 타일은 금방 더러워져 내 속을 썩이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엔 그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어차피 더러워질 테니 마음껏 써도 된다는 일종의 해방감마저 선사했다. 새 마루가 깔리면 깨끗하다 못해 '무'의 상태에 이른 신성함에 넋을 읽음과 동시에 예민한 신경이 곤두서겠지. 교실 속 모든 '유'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산스러운 건물에서 빠져나온다. 건물 앞에 쌓인 옛 것의 흔적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게워낸 토사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신히 공사 현장을 벗어나니 건물 뒤편에는 학교 숲 만들기로 여념이 없다. 가만있어 보자. 여긴 원래 어떻게 생겼었지. 시멘트가 올라가기 전엔 빈 터였으며, 그 전엔 학급 텃밭으로 사용을 했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쑥이 잘 자라 할머니들의 봄 필수 코스이기도 했다. 바로 옆엔 쓰레기 창고나 다름없는 비닐하우스가 있었고 제법 많은 수의 생명들이 그 안에서 싹을 트고, 옅은 숨을 내뿜고, 다시 시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전에는......



기억의 필름이 끊긴다. 아니다. 끊겼다는 것은 이전엔 연결되어 있었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기억의 필름이 애초에 연결되어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그런 자신이 놀라울 만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는 인상 깊은 곳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기억 한편을 잃은 것 같은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기억을 더듬을 것조차 없어 생각하기를 관둔다. 아마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추억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사소한 것들이 '옛 것'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도 많이 지워지고 있는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는 엄마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