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그리고 교사
예방 접종을 통해 신체에 들어간 항원이 covid-19의 탈을 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면역 세포들을 도발한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도발하는 것에 견디지 못한 면역 세포들이 인정사정 없이 항원을 공격한다. 탈을 쓴 항원이 유언을 남긴다. remember me! 나와 똑같이 생긴 바이러스, 즉 covid-19이 오면 지금처럼 주저 말고 공격하라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죽거나 약하게 만든 항원을 몸에 넣어주어 그 특성을 기억하게 만드는 백신의 원리를 귀엽게 표현한 영상이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온갖 부작용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나 또한 적잖게 걱정을 했었다. 줏대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영상을 본 뒤로는 백신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나를 위해 희생해주는 아주 귀엽고 대견한 녀석이구나! 라고. 그리고 어제 날짜로 백신을 맞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맞기 1분 전까지도 0.0000001%의 확률로 부작용이 나타나면 어쩌나 호들갑을 떨었다. 나의 호들갑이 무색할 정도로 큰 부작용은 없었다. 약간의 열감과 두통이 느껴지는 정도?
이 정도의 두통 즈음이야 작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생각이 스쳤을 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짧디 짧은 교직 생활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종류의 예방 접종을 맞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단 일기에 적을 새로운 소재 거리가 생겨서 기쁘기도 했다.) 신규 시절에는 극성 학부모를 만나 고생을 했다. 학폭을 여니 마니, 교사가 책임감이 없다느니, 당신은 거짓말쟁이라느니, 애한테 관심이 없다느니 다양한 이유를 들어 나를 괴롭혔다. 나의 첫 번째 예방 접종 영역은 '극성 학부모'였다.
일이 잘 해결되나 싶었지만 내 앞에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발령 받은 교감 선생님의 미움 받이가 돼버린 것이다.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옷차림, 인사, 복무, 업무, 돌봄 강사, 방과후 강사, 그리고 생활 교육까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교감의 주된 업무=나 괴롭히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힌 대가로 월급을 받아간 것인가. 이런!) 그렇게 영역 '진상 관리자'에 대한 두 번째 예방 접종을 마쳤다. 그 이외에도 칼을 들고 후배를 협박하는 아이, 방과후 강사와 싸우는 아이, 끈질기게 발표를 하지 않는 아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문과 업무들, 그리고 나를 무시하는 동료 교사 등 다양한 이유로 크고 작은 좌절을 경험했다. 다가올 큰 아픔을 대비해 미리 예방 접종을 맞은 셈이다.
여태 맞은 예방 접종이 효과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무뎌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아프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또한 2차까지 맞지 않는가. 고작 한번의 경험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깡'이 생긴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경지에 오른 거겠지. 그렇다면 교사 예방 접종 2차는 언제쯤일까. 지금보다 더 아플까. 2차로 끝나기는 할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종류의 아픔이면 어쩌지.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정년은 채울 수 있으려나. 한번 시작된 걱정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을 시간들 앞에 나는 또 작아진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이겨낼 수 있겠지. 아픈 만큼 더 성장하겠지 라는 뻔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는 수밖에는 없다. 미리 아프면 덜 아플까. 이왕에 아플 거면 멋지게 아프면 좋겠다. 다가오는 아픔에 실컷 아파하면 좋겠다. 아파하고 좌절하더라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런 아픔도 이겨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척박한 토양일지라도 단단히 뿌리를 내려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교단 위에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