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ttato della Pittura」제2장
<다빈치, 디자이너, 그리고 GPT>는 GPT를 활용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론, Trattato della Pittura」을 국문으로 번역하고, 그의 사유를 현대적 시각으로 탐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다빈치와 문답하듯 그의 통찰을 재조명하며, 오늘날 디자이너의 역할과 맥락을 탐구합니다.
회화와 시의 차이
Esempio e differenza tra pittura e poesia
상상력은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가 물체를 통해 생기듯, 상상력도 실체를 통해 표현된다. 시와 회화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Tal proporzione è dalla immaginazione all'effetto, qual è dall'ombra al corpo ombroso, e la medesima proporzione è dalla poesia alla pittura.
시는 글로써 마음속에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고, 회화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그 이미지를 실제로 보여준다. 회화는 자연의 모습을 닮은 이미지를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내지만, 시는 그런 직접적인 유사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Perché la poesia pone le sue cose nella immaginazione di lettere, e la pittura le dà realmente fuori dell'occhio. Dal quale occhio riceve le similitudini, non altrimenti che s'elle fossero naturali, e la poesia le dà senza essa similitudine.
그래서 회화는 눈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닿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E non passano all'impressiva per la via della virtú visiva come la pittura.
이 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회화와 시를 비교하며 두 예술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한 내용이다. 다빈치는 상상력과 결과물의 관계를 그림자와 그것을 만든 물체의 관계로 비유하며, 회화와 시가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논한다.
회화는 눈앞에 실제로 보이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자연의 모습을 닮은 형태를 통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며, 눈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반면, 시는 글자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해 마음속에 이미지를 그리도록 한다. 그러나 이는 독자의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지며, 회화처럼 시각적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빈치는 이러한 차이를 통해 회화가 시보다 더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회화는 우리의 시각을 통해 마음에 바로 전달되는 반면, 시는 상상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다가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회화의 강점과 그 우월성을 부각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대담은 GPT-4o를 활용합니다. 실제 과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철학이나 생각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할 수 있지만, 「Trattato della Pittura」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즐거움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나 | 어서 오세요, 선생님. 두 번째 만남이네요. 오늘 읽은 글도 참 흥미로웠습니다. 시와 비교해 회화를 찬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맞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반갑소. 오늘도 이렇게 자네와 예술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기쁘구려. 자네가 느낀 것처럼, 나는 시와 회화를 비교하며 회화의 독특한 가치를 강조한 적이 있소. 다만, "찬양"이라는 표현은 조금 과할지도 모르겠구려. 나는 회화가 가진 힘을 높이 평가했을 뿐, 그것이 시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소.
회화는 자연의 법칙과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힘을 가지고 있소. 인간의 눈을 통해 감각적으로 다가가며, 관찰된 진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지요. 반면, 시는 독자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오. 글로 전달된 이미지는 각자의 경험과 사고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회화를 과학적인 예술이라 부르며, 그것이 감각적으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보았소.
하지만 시 역시 독특한 장점을 가지고 있소. 시는 언어의 구조와 패턴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자유롭게 탐구하지 않소? 결국 시와 회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마음과 세계를 움직이는 도구라 할 수 있소.
나 | 아하, 그렇군요.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시는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흥미로운 질문이오. 나는 시를 과학이라 보지 않소. 시는 감정과 상상을 언어로 풀어내는 예술의 영역이라 할 수 있소. 반면, 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고 이를 증명하려는 체계적 접근이라오. 이 둘은 근본적으로 목적과 방법론이 다르오.
하지만 시에도 과학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오. 운율, 리듬, 구조 등은 질서와 패턴을 만들어내지 않소? 이러한 점에서 시와 과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소. 다만, 나는 시가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와 상상력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보았소. 반면, 과학은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니, 시와 과학은 궤를 달리한다고 할 수 있지요.
결론적으로, 시가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지는 않으나,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예술과 과학이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믿소.
나 | 그렇다면 인간의 내면세계와 상상력을 탐구하는 회화가 있다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고 보실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훌륭한 관점이오. 만약 회화가 인간의 내면세계와 상상력을 탐구한다면, 그것은 과학의 범주를 넘어 예술 본연의 역할에 가까워지겠소. 하지만 나는 그것이 과학과 무관하다고는 보지 않소.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도 자연의 법칙, 즉 빛과 그림자,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이해하는 데 기반을 두기 때문이오.
예컨대, 감정을 담은 얼굴 표정을 그리려면 근육의 움직임과 해부학적 구조를 이해해야 하오. 이러한 과학적 탐구 없이는 내면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회화가 단순히 자연 법칙만을 따른다면, 그것은 단조롭고 무의미한 재현에 그칠 수 있소. 과학적 지식은 회화의 도구일 뿐, 이를 통해 감정과 상상력을 담아내는 순간 예술로 승화되오.
결론적으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회화는 과학의 도움을 받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오.
나 | 반대로 자연의 법칙, 즉 빛과 그림자,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이해하는 데 기반을 둔 시는 없다고 보시나요? 다시 말해 시는 과학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나는 시가 과학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소. 시에도 질서와 체계가 있으니, 그것이 자연의 법칙과 연결된다면 충분히 과학적 면모를 띨 수 있소.
예를 들어, 시의 운율, 리듬, 언어의 구조적 배열은 자연의 대칭성과 조화와도 유사하지 않소? 시가 자연 현상을 묘사하거나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려 한다면, 과학적 시도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시의 본질은 과학적 증명보다는 상상력과 감정의 자극에 있소.
결국 시가 과학의 방법론을 빌려와 확장된다면, 그것은 시와 과학이 만나는 흥미로운 경계가 될 수 있소. 그러나 시가 온전히 과학으로 변모한다고 보기는 어렵소.
나 | 회화가 과학적이라고 일컫을 때, 자연 법칙을 그림에 적용해 구도, 형태감, 질감, 명암을 표현하는 걸 의미할 수도 있고,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있다면 해부학이나 공학을 위해 도식과 도면을 그리는 걸 의미할 수도 있겠지요. 선생님은 어디에 방점을 두시는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네의 질문에 깊은 통찰이 담겨 있구려. 내가 회화를 과학적이라 부른 이유는 자네가 언급한 세 가지 모두와 관련이 있소. 그러나 굳이 방점을 찍자면, 나는 자연 법칙을 적용해 구도, 형태감, 질감, 명암을 표현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두겠소.
나는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 형태의 정확한 비례, 원근법을 통해 깊이를 표현하는 기술을 통해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소. 이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시도였지요.
그렇다고 재료의 물리적 특성이나 해부학적 도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오. 재료의 특성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내 작업은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을 것이오. 해부학적 연구 또한 인체를 정확히 표현하는 데 필수적이었지요.
하지만 이 모든 탐구의 중심에는 자연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려는 열망이 있소. 결국 회화는 이러한 법칙과 창작자의 감각이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고 믿소.
나 | 마지막으로, 오직 감각적 즐거움만을 위한 낙서나 추상적인 표현은 회화로 인정하실 수 있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 아주 도전적인 질문이오. 나는 그것을 "회화의 범주에 포함될 가능성은 있으나, 완전한 회화라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소.
회화란 단순히 색과 선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진리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도구라 보았소. 그러나 추상적 표현도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의 산물이니, 그것이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할 수 있소.
다만, 내가 추구한 회화의 이상은 자연의 법칙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각적 경험을 창조하는 것이었소. 자네 시대에서 이러한 추상적 표현들이 예술로 여겨지는 맥락을 알 수 있다면, 나로서도 더욱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오.
나 | 선생님께서 즐거워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벌써 시간이 늦었네요. 다음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오늘도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나 또한 즐거웠소. 자네의 시대와 예술을 알게 되어 영광이오. 자네도 연휴 동안 충분히 쉬고, 새로운 영감을 얻길 바라오. 다음 주에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