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까?)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 ‘인연’ 중)”
오늘 팟캐스트에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의 해석을 듣다가 나의 첫사랑이 떠올랐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십여 년 전이다.
지금은 사진 촬영지로 유명해진 부산의 산복도로 구석진 비탈길에서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늘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의 마지막 부분이 떠오른다.
“마지막은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던 그 부분 말이다.
나는 그녀가 내 친구의 아이를 두 번이나 몸속에서 지웠다는 이야기를 그날 들어야 했고,
남자의 매질을 피해 아이와 함께 구호단체로 피신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에서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됐고, 다음 달이면 아이를
매질하던 남편에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착잡해하는 그녀를 봐야만 했다.
또한 나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어 하는 그녀의 눈빛도 느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다.
육상 선수였던 그녀는 교복을 입지 않으면 중학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외모가 성숙했었다.
그렇다 보니 나 같은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생 형들까지도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단발머리가 예뻤던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고 갑자기 동네에서 사라졌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를 따라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간 것이었다.
인터넷도 없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헤어지면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런 때였다.
그녀는 그렇게 내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됐다.
세상에 눈을 뜨지도 못했고, 학문에 관심을 두지도 못 했고,
연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흔한 대학생 말이다.
지루하고 무료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최루탄 연기 자욱한 교문을 나서다 불현듯 그녀 생각이 났다.
아마도 며칠째 계속되는 최루가스의 통증이 마음속을 헤집으며 추억을 떠올리게
했을 수도 있다.
나는 최루가스의 하얀 분말을 털며 학교 앞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가 갔다는 도시의 지도를 찾았다.
그 도시에는 “여자 상업 학교”가 하나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나는 다음 날 무작정 버스를 타고 그녀가 있는 도시로 길을 떠났다.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