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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l 06. 2021

(소설) 훔쳐 듣기

'대화체 소설'


[ 훔쳐 듣기... 세부(Cebu, Philippines) 카페 옆 자리에서 하는 한국인의 전화통화를 훔쳐 들음 ]


-야, 000 있잖아. 지 여자 친구 하고 1년이나 됐는데 아직 한 번도 못 해 봤데.

너 알잖아 그 여자애 예쁜 거.


-.......


-그래 맞아 그때 그 애야.. 마르고 가슴 큰 애..

몸매 장난 아니잖아.. 어휴... 생각만 해도..

걔들 여행도 몇 번 가고 했다는데 한 번도 안 했다네.


-.......


-이상하지? 그래서 내가 왜, 안 했냐고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뭐라는 지 아냐? ‘사랑해서’란다.


-.......


-그런데 웃기는 건 며칠 전에 여자애가 문자로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했데.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나.


-.......


-맞아, 차인 거지.

어제 그놈이 술이 떡이 돼서 한 밤 중에 전화했더라고.


-.......


-내가 뭐라고 했을 거 같냐? 좋은 말 해주고 끊었어...


야, 그런데 정말 웃기지 않냐?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꽝 난 거.

아마, 그 새끼 아직 태어나서 한 번도 못해봤을걸?..

그리고 평생 그러고 살 거다.


-.......


-맞아, 그놈 잘난 척은 엄청 하잖아.

그런데 여자하고 깨진 게 벌써 몇 번짼지 몰라.

깨질 때마다 나한테 술 먹고 전화해.

여자애가 좋았네 어쩌네, 다시 사람을 만나네 어쩌네..


-.......


-나는 그놈이 여자랑 했으면 안 헤어졌을 거라 생각해.

여행 가서 

“난 널 사랑하니까, 널 지켜줄게” 이런 소리하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떤 여자가 좋아하냐?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겠냐?


-.......


-너도 이해 안 되지?

여자도 다 준비하고 왔을 거 아니냐고?


-.......


-여자가 왜? 안 하는 걸 고마워한다고 생각할까? 

여자는 몸이 없냐?

그 녀석은 여자는 감각이 없다고 생각하나 봐..


-.......


-난 그 새끼가 이상해,

사랑해서 안 한다는 거잖아.

섹스를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지 사랑 안 하는 사람하고 하냐고?


-.......


-뭐? 사랑 안 하는 사람 하고도 많이 한다고?

'원 나잇 스탠드' 같은 거?

모르는 사람하고 갑자기 눈 맞아서 하는 거 말이지?

야! 그건 오락이지, 게임 같은 거, 그건 섹스가 아냐.


-.......


-원나잇으로 시작해도 정들고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당연히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원 나잇으로 시작하면 극복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저 년은 뭐하는 년인지?”

“저 년이 엉겨 붙으면 어떡하지.”

뭐 이런 생각 들지 않겠어? 


여자도 마찬가지고....

"저 놈은 뭐하는 놈이지?"

"저 놈이 소문낸다고 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하지 않겠냐? 


그걸 극복할 수 있으면 사랑이라는 게 되겠지, 

그런데 그게 쉽겠냐?


-.......


-안 되는 게 아니고, 쉽지 않다는 거야...

야! 사랑하는 사람하고 해야 나쁜 느낌 같은 게 안 생겨,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 걸 섹스라고 하는 거야.


-.......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하는 거? 그건 오락이라고 했잖아.

그런 건 진짜 섹스가 아냐, 그냥 PC게임 같은 거야, 

축구나 야구하는 거 하고 똑같은 거라고.


-.......


-뭐? 말이 안 되는 거 같다고?

야! 섹스를 우리말로 뭐라고 하냐?

소설에서 “섹스”라는 단어 우리말로 뭐라고 쓰냐고?


“그들은 그날 밤 한 판 했다.” 이러냐?

“그들은 그날 밤 한 따까리 했다.” 이래?

“그들은 그날 밤 한 빠구리했다. 이러냐고.

아니면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해서

“그들은 그날 밤 아름다운 성교를 했다.”이렇게 쓰냐고?


아니잖아,

“그들은 그날 밤 사랑을 나누었다.” 이렇게 쓰잖아.


-.......


-야! 네가 몰라서 그래....

우리나라에서는 섹스를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니까.

다른 단어 있으면 말해 봐!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사랑'한다는 뜻은 섹스한다는 뜻이야.

알았냐?


-.......


-뭐? 묘하게 설득력 있다고? (ㅋㅋㅋ) 


-.......


-너도 몸으로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딴 소리 하는 거야.

사랑을 머리로만 한다고!

난 사랑을 머리로만 한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해.


머리가 사람을 기억하는 것처럼

몸도 사람을 기억하거든.

몸도 감정과 느낌을 기억한다니까.

아마 여자들은 더 할걸?


-.......


-이해가 안 돼?

너 해보고 헤어진 사람하고,

안 해보고 헤어진 사람하고 누가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냐?


-.......


-맞아, 당연히 해 본 사람이 오래 기억에 남아.

사람은 몸에도 기억력이 있다니까?

몸에도 흔적이 남는다고.


-.......


-그렇지, 그러니까 사랑하면 섹스해야지.

자주 하면 자주 할수록 좋은 거야.

자주 한다는 건 자주 사랑을 확인한다는 말이야.

그러면 사랑이 깊어져...


-.......


-야!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해.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자주 하는 게 좋아.


-.......


-이 바보가 무슨 소리하는 거야.

아파트 옥상 같은 데서 하지 말고.

분위기 잘 잡아서 하라고.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생각하면서 하란 말이야.

무작정 아무데서나 하면 그건 싸기 연습밖에 더 되냐?

혼자 하는 거 하고 뭐가 달라?


-.......


-뭐? 상대가 아파트 옥상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냐고?

뭐.. 그거야 취향 문제니까 할 말 없네.. 좋다면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런데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 많지 않을 거 같은데.

어쨌든 상대 취향을 알 수 있으면 좋은 거지, 

상대가 내 취향을 알면 더 좋은 거고.


-.......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냐고?

바보야! 그건 노력해야 알게 되는 거지, 공짜가 어딨어?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거야.

그 사람이 뭘 좋아할지 생각을 해! 

아파트 옥상을 좋아하는지, 니 차 뒷 좌석을 좋아하는지.... 

그렇게 상대를 알아 가는 거, 그게 사랑이야.. 

포르노나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


-.......


-너, 포르노 따라 하면 병신 된다.


-.......


-뭐? 포르노를 봐야 테크닉이 는다고? 


섹스는 내가 싸거나 그 사람이 싸는 문제가 아냐.

테크닉이 좋으면 좋을 수는 있겠지 그런데 그건 사랑이 아냐.


사랑은 뭔가가 길게 유지되는 걸 말하는 거야.

한두 번 반짝하는 그런 건 사랑이 아냐.

이벤트 같은 걸 사랑이라 착각하는 인간이 아직도 있네.


-.......


-왜냐고?

테크닉 좋으면 좋지, 그런데 그건 딱! 그때만 좋은 거야.


-.......


-그래도 좋다고? 기억에 남는다고? 

당연히 좋겠지. 아까 말했잖아. 그건 오락 같은 거야. 스포츠하고 비슷해.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잖아. 그런데 그건 사랑하는 거 하고 다른 거라니까.


-.......


-사랑하는 사람하고 할 때는 테크닉 같은 거 필요 없어.

있으면 당연히 더 좋겠지. 근데 테크닉은 상대방 취향을 알고 난 다음 문제야.

그렇지 않냐? 상대는 좋아하지도 않는데 나 혼자 테크닉이랍시고 

파닥대면 그게 바로 병신 짓이라는 거다.


-.......


-사랑하는 사람은 좀 어설퍼도 그냥 하면 돼, 할 수 있는 거 그냥 하면 된다고. 

그러고 끝나고 나서 그냥 안고만 있으면 돼. 그거보다 더 좋은 테크닉은 없어.

그러니까, 몸으로 하는 사랑을 잘 배워야 해! 

상대를 잘 알게 되면 테크닉은 자연스럽게 생기게 마련이야.

바보 같이 포르노 따라 하는 게 테크닉이 아냐.


-.......


-왜냐고?

상대가 날 사랑한다는 걸 몸이 알면.

몸이 충만감 같은 걸 느끼거든.

물론 아쉬울 때도 있겠지. 인간인데 없겠냐?

그런데 아쉬움이 나쁜 게 아냐.


-.......


-아쉬움이 남으면 아쉬워서 다음에 또 하는 거야.

그러면서 사랑은 더 깊어지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는 거라고.

그럼 그때 뭔가를 더 개발하게 되는 거야. 

그럴 때 진짜 테크닉이라는 게 발달하게 되는 거지.

테크닉은 '기술'이 아니고 상대의 취향을 더 깊이 아는 걸 말해..


-.......


-정말이라니까.

넌 여자가 꼴딱 넘어가야 좋아할 줄 알지?

니 애인한테 물어봐 진짜 꼴딱 넘어갈 만큼 해야 좋은지.

쉽게 대답하지 못할걸? 


어쨌든,

여자들은 그런 거 별로 따지지 않아. 어릴 때는 더 그래.

인간은 섹스를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냥 싸는 거 하고, 섹스를 하는 건 그래서 다른 거야.


-.......


-진짜 사랑을 하면 섹스가 좋다 싫다 말하지 않는다니까.

그냥 하는 그 자체가 좋거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거 하고

사랑하는 이의 몸이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건 같은 거야.

그걸 섹스라고 부르는 거야, 

신기한 건 한국말로는 이걸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거지.


-.......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면 몸이 알아서 반응을 해.

그러니까 사랑하면 섹스해야지.


-.......


-사랑 없이 하는 섹스도 좋다며?  

그럼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는 얼마나 좋겠냐? 

거기다 서로 취향까지 알고 있으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뿌듯해지네....ㅋㅋㅋㅋ


-.......


-섹스를 하는데 뿌듯한 느낌도 없고 충만감도 없고

지루하기만 하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냐?


-.......


-그래, 그런 걸 사랑이 식었다고 하는 거야.


-.......


-그 사람하고의 섹스가 지루해지고, 

오락이나 스포츠처럼 느껴지거나 의무감으로 느껴지면 사랑이 식은 거야.


-.......


-사랑이 식었다고 인연이 끊어지지 않아.

사랑은 식었다 다시 불붙었다 하는 거야...


-.......


-야! 그런 거 물어보지 마, 그거까지 이야기하면 한 시간도 더 걸려,


-.......


-그러니까 사랑할 때 열심히 '사랑'하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냐?

섹스도 안 해보고 헤어지는 건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헤어지는 거라고. 알았어?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서 사랑을 열심히 확인하라고.


-.......


-그 녀석처럼 바보 짓 하면서 살지 마라, 

알았지... 전화 끊어.....

뭐? 더 물어볼 거 있다고? 


-.......


-사랑이 식었다고 인연이 끊어지고 어쩌고 한 거?

야! 그런 거 있어, 그건 다음에.... 네가 전화 해...


끊어 바빠. 나 가야 해...


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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