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Cebu, Philippines) 남부투어]
#13, 다시 세부(Cebu)로...
“두마게티 시티”로 들어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편의점을 찾는 일이었다.
온종일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인지 배가 너무 고팠다.
현지 편의점에 가면 요즘은 한국 라면이 필수 아이템으로 준비되어 있다.
늦은 시간에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편의점에서 한국라면을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은 도시의 불빛을 발견하면서 했던 생각이다.
적당한 편의점을 찾아서 한국 라면과 계란, 빵으로 식사를 했다.
현지 편의점에는 햇반이나 김밥은 팔지 않는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 라면은 꿀맛이었다.
국물까지 깨끗이 비운 후 주전부리 몇 개를 사 들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편의점 직원의 말로는 편의점 주변에 호텔들이 있다고 했다.
편의점 옆 골목을 뒤지다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싼 모텔을 찾았다.
다행이었다. 별로 헤매지 않고 꽤 괜찮은 잠자리를 발견했다.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으며 알람을 껐다.
알람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고된 하루였으니 편한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눕고 보니
정신이 점점 더 말똥말똥해졌다.
피곤한데도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은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낮에 산속에서의 긴장감을 생각하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을 텐데 신기하게 잠이 안 왔다.
왜 그랬을까? 날카로워진 신경이 아직 무뎌지지 않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혼자라는 외로움 때문에 그랬을까?
침대에서 꽤 긴 시간을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얕은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모텔 근처의 '깐틴(현지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동네 구경을 했다.
평범한 동네였다. 필리핀 현지 식당에 가면 의외로 한국인 입맛에 맞는 국물 요리들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생강 맛이 나는 따뜻한 쇠고기 국물이 위벽을 안정시켜 주는 느낌이다.
오전 산책을 끝내고 출발 준비를 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출발이 자꾸 미루어진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계속 미적거리다가 지도를 확인하고 짐을 쌌다.
"여기서 더 뭘 하겠어, 일단 세부로 가는 배를 타자." 이게 결론이었다.
네그로스의 선착장에서 다시 배에 차를 실었다. 지나왔던 길을 돼 밟아
세부로 갈 생각이다. 그런데 세부로 건너오고 보니 운전이 너무 힘들었다.
몸도 무거웠고 두통과 함께 식은땀도 흘렀다. 몸살끼가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졸음도 심해져서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이틀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한 채 계속 운전만 하고 다녔다.
어디 방구석에 콕 처박혀서 꼼짝 하지 않고 며칠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세부 선착장에 도착해서 오슬롭을 지날 때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슬롭 읍내에 도착하기 전에 괜찮아 보이는 길가의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객실이 15개 정도 되는 작은 호텔에는 점심시간 전이어서인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2층의 바닷가 쪽 제일 전망이 좋은 방을 선택해서 체크인을 했다.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조그만 수영장이 로비 앞 쪽에 있었다.
하룻밤 1천 페소(25000원) 짜리 치고는 시설이 좋았다.
창밖에 펼쳐진 세부의 멋진 남쪽 바다에서 동네 꼬마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창밖을 보다가 침대에 잠깐 앉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아무 데서나 잘 자는 편이지만 김 선생님 집에서도 그렇고 어젯밤 모텔에서도 그렇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 시간 정도를 정말 죽은 사람처럼 잤던 거 같다.
낮잠을 이렇게 깊게 자보기는 건 참 오랜만이다.
잠에서 깼을 때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나를 보고 그때서야 알았다.
“너, 참 피곤했었구나.....”
(1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