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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y 23. 2021

“오늘 참 죽기 좋은 날이다.”

“오늘 참 죽기 좋은 날이다.”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는지?

“오늘 참 죽기 좋은 날이다.”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는지? 


“오늘 참 죽기 좋은 날이다.”

살면서 이런 말 들어 볼 수 있을까?

나는 들어 봤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대답은 이거였다.

 

“어디냐?”

“동작대교”

“된장찌개 끓인다. 빨리 와라, 집에 소주 있다.”  


그 친구는 한 달에 소주를 40병 정도 먹는 친구였다.

소주병 버리는 게 눈치 보인다고 며칠에 한 번씩 빈병을 모으면

한 밤에 멀리 큰 길가 박스 더미 옆에 놓고 오곤 했다.


어쩌다 하루에 두 병이 필요할 때는 옆 동네에 가서 술을 사 왔다.  

동네 사람들 눈에 놈팡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전화를 끊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밥을 했다.


그 친구와 나는 6개월째 서울의 한쪽 구석에서 셋방을 살고 있었다.

남자 둘이 사는 방 두 칸 자취방에 식량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전화를 끊고 슈퍼에서 대충 장을 봐서 있는 기술 없는 기술 쥐어짜서 요리를 했다.

1시간쯤 지나서 그 친구가 집으로 들어왔다. 

주방 바닥에 앉은뱅이 밥상을 펴고 둘이서 소주를 마시고 저녁을 먹었다. 


“얼마나 날렸냐?”

“거의 다.” 


내가 15년도 지난 이때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을 그 녀석에게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집에 가니 멀쩡한 벽시계가 바깥에 버려져 있었다.

내가 “이거 왜 버리냐?”라고 물었더니, 


“야! 넌 시계 재깍거리는 소리 안 시끄럽냐?

난 그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

"야! 주방에 있는 벽시계 소리가 니 방에서 들린다는 게 말이 되냐?"

"나는 밤에 누워 있으면 바퀴벌레 기어가는 소리도 들려....” 

뭐 이런 식이었다. 


"죽기 좋은 날이다."라는 말과 "바퀴벌레 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그가 했던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스스로를 “베터(Bettor)"라 불렀다.

“야, 그런 단어가 있기는 하냐? ‘겜블러(Gambler)’면 ‘겜블러’지 베터는 뭐냐?”

“야, ‘Gambler'하고 'Bettor'는 다른 거야.”

“베터가 뭔데?”

“그런 거 있어. 모르면 찾아봐”

나는 ‘베터’가 뭔지 찾아보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베팅하는 사람??) 


된장찌개를 먹은 다음 날 눈을 떠보니 그 녀석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일요일의 느긋함을 충분히 즐길 초저녁 즈음 그 녀석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족발, 먹을래?”

“족발 좋지” 


해 질 녘에 그 녀석이 족발과 소주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술이 얼큰하게 됐을 때 내가 물었다.   


“좀 땄냐?”

“어제 50 남았었거든,  오늘은 그게 700 됐다.” 


“어제는 과천에서 나오다가 ‘동작역’에서 일부러 내렸다니까.

동작대교에서 진짜 뛰어내리려고 했어. 

동작대교 한가운데까지 걸어갔는데 네가 된장찌개 끓인다며, 

전화 끊고 나니까 갑자기 배가 고픈 거야. 소주 생각도 나고..

된장찌개 아니었으면 나 못 볼 뻔했다.” 


그날 밤 그 녀석은 구시렁대며 몇 마디를 더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 일이 있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그 녀석의 어머니와 동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는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나는 식구끼리 뭔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 그 자리를 피했다. 

1시간쯤 지나서 그 녀석이 동네 놀이터에 앉아 있던 내게 찾아왔다. 


“야, 방 빼야겠다.”

“언제?”

“어머니가 지금 당장 빼란다.”

“지금? 당장?”

“집주인한테 어머니가 이야기했다.”

“알았어, 짐 쌀 게.”

“어디 갈 데는 있냐?”

“내가 알아서 할 게.” 


그 녀석은 그날 밤 어머니와 함께 나갔고,

다음 날 동생이 짐을 챙기러 집으로 왔다.

 

“형님 죄송해요.”

“니가 나한테 죄송할 게 뭐가 있냐?”

“어디 가실 데는 있으세요?”

“찾아봐야지.”

“며칠 전에 저한테 이런 게 왔어요.”

하면서 봉투를 보여준다.

나는 내용물은 꺼내보지 않았다. 뭔지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편지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자 동생이 물었다.

“형님 이거 뭔지 아세요?”

“유서 같은 거냐?”

“네..." 

그 녀석이 이번에는 내게 전화를 하지 않고 동생에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일 이후로 그 친구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무거운 마음의 빚이 있다.

그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경마장’ 구경을 시켜준 사람이 나였다.

가을날 '서울 대공원'에서 '경마장'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 길은 무척 아름답다.

멋진 은행 낙엽을 밟으러 갔던 그곳을 그 녀석이 혼자서 갈 줄은 몰랐다. 


그가 떠난 뒤로도 나는 서울에 꽤 오랫동안 살았다.

날씨 좋은 날 올림픽대로를 타고 동작대교 밑을 지날 때면 녀석이 떠오르곤 했다.  


그 뒤로 딱 한 번 녀석을 부산에서 만났다. 

집에서 정신과 치료를 잠깐 받았고 시골로 들어가서 ‘오미자’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바퀴벌레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일종의 신경쇠약 증상이었다고 한다.   


오늘 동작대교와 비슷하게 생긴 막탄 다리를 건너면서 문득 그 녀석 생각이 났다. 

절망의 끝에 서면 절망의 끝이 떠오르나 보다.

(세부 막탄 올드 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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