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참 죽기 좋은 날이다.”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는지?
“오늘 참 죽기 좋은 날이다.”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는지?
“오늘 참 죽기 좋은 날이다.”
살면서 이런 말 들어 볼 수 있을까?
나는 들어 봤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대답은 이거였다.
“어디냐?”
“동작대교”
“된장찌개 끓인다. 빨리 와라, 집에 소주 있다.”
그 친구는 한 달에 소주를 40병 정도 먹는 친구였다.
소주병 버리는 게 눈치 보인다고 며칠에 한 번씩 빈병을 모으면
늦은 밤에 멀리 큰 길가 박스 더미 옆에 놓고 오곤 했다.
어쩌다 하루에 두 병이 필요할 때는 옆 동네에서 술을 사 왔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 눈에 놈팡이로 보일까 걱정했던 거 같다.
그 친구와 나는 6개월째 서울의 한쪽 구석에서 셋방을 살고 있었다.
남자 둘이 사는 방 두 칸 자취방에 된장찌개 거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슈퍼에서 장을 봐서 밥을 안치고 어설픈 요리를 했다.
1시간쯤 지나자 그 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방 바닥에 앉은뱅이 밥상을 펴고 둘이서 소주를 마시고 저녁을 먹었다.
“얼마나 날렸냐?”
“거의 다.”
내가 15년도 더 지난 이날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 몇 가지를 그 녀석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집에 가니 멀쩡한 벽시계가 바깥에 버려져 있었다.
내가 “이거 왜 버렸냐?”라고 물었더니,
“야! 넌 시계 재깍거리는 소리 안 시끄럽냐?
난 시계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
"야! 주방에 있는 벽시계 소리가 방에서 들린다는 게 말이 되냐?"
"나는 밤에 누워 있으면 바퀴벌레 기어가는 소리도 들려....”
뭐 이런 식이었다.
"죽기 좋은 날이다."라는 말과 "바퀴벌레 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그가 했던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다.
그는 스스로를 “베터(Bettor)"라 불렀다.
“야, 그런 단어가 있기는 하냐? ‘겜블러(Gambler)’면 ‘겜블러’지 베터는 뭐냐?”
“야, ‘Gambler'하고 'Bettor'는 다른 거야.”
“베터가 뭔데?”
“그런 거 있어. 모르면 찾아봐”
나는 ‘베터’가 뭔지 찾아보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베팅하는 사람??)
된장찌개를 먹은 다음 날 눈을 떠보니 그 녀석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일요일의 느긋함을 충분히 즐길 초저녁 즈음 그 녀석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족발, 먹을래?”
“족발 좋지”
해 질 녘에 그 녀석이 족발과 소주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술이 얼큰하게 됐을 때 내가 물었다.
“좀 땄냐?”
“어제 50 남았었거든, 오늘은 그게 700 됐다.”
“어제는 과천에서 나오다가 ‘동작역’에서 일부러 내렸다니까.
동작대교에서 진짜 뛰어내리려고 했어.
동작대교 가운데로 걸어가는데 네가 된장찌개 끓인다고 한 거야.
그 말 들으니 갑자기 배가 엄청 고픈 거야.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더라고....
된장찌개 아니었으면 나 못 볼 뻔했다.”
그날 밤 그 녀석은 구시렁대며 몇 마디를 더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부산에 사는 녀석의 어머니와 동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는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가족 간에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자리를 피했다.
30분쯤 지나서 그 녀석이 집 앞 놀이터에 앉아 있던 내게 찾아왔다.
“야, 방 빼야겠다.”
“언제?”
“어머니가 당장 빼란다.”
“지금? 당장?”
“아래층 집주인한테 어머니가 벌써 이야기했다.”
“알았어, 짐 쌀 게.”
“미안하다. 어디 갈 데는 있냐?”
“미안하긴 어차피 네 집인데, 내가 알아서 할 게.”
그 녀석은 그날 밤 어머니와 함께 나갔고,
다음 날 동생이 짐을 챙기러 집으로 왔다.
“형님 죄송해요.”
“나한테 죄송할 게 뭐가 있냐?”
“어디 가실 데는 있으세요?”
“찾아봐야지.”
“며칠 전에 저한테 이런 게 왔어요.”
하면서 봉투를 보여준다.
나는 내용물은 꺼내보지 않았다. 뭔지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편지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자 동생이 물었다.
“뭔지 아세요?”
“유서 같은 거냐?”
“네..."
그 녀석이 이번에는 내게 전화를 하지 않고 동생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무거운 마음의 빚이 있다.
그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경마장’ 구경을 시켜준 사람이 나였다.
가을날 '서울 대공원'에서 '경마장'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 길은 무척 아름답다.
멋진 은행 낙엽을 밟으러 갔던 그곳을 그 녀석이 혼자서 다시 갈 줄은 몰랐다.
그가 떠난 후에도 나는 서울에 꽤 오랫동안 살았다.
날씨 좋은 날 올림픽대로를 타고 동작대교 밑을 지날 때면 녀석이 떠오르곤 했다.
그 뒤로 딱 한 번 더 녀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부산 본가에서 정신과 치료를 잠깐 받는 중이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나 바퀴벌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던 건 일종의 신경쇠약 증상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며 모자를 벗는데 머리카락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깜짝 놀라자,
"괜찮아, 몸이 좋아지려고 독소가 빠지고 있는 거래." 하며 해맑게 웃었다.
우리는 그날 시답잖은 농담을 몇 마디하고 간단히 차를 마시고 해어졌다.
그게 그와 나의 마지막 만남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서 10여 년을 동고동락했던
친구와의 마지막 헤어짐이었다. 그 뒤 나는 그 친구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오미자가 건강에 좋다면 자기는 시골로 가서 오미자 농사를 짓겠다고 했던 게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었다.
오늘 동작대교와 비슷하게 생긴 막탄 다리를 건너면서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다리 가운데로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절망의 끝에 서서 보니,
오래 전에 절망의 끝으로 먼저 걸어갔던 그 친구가 떠올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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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에 우연히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이런 노래가 있었다니... 헐~~
(전략)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테니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보면 살아가다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테니..
세상이 널 뒤통수쳐도
소주 한잔에 다 털어버려
부딪히고 실컷 깨지면서
살면 그게 인생가야 넌 멋진 놈이야...
https://youtu.be/GdAlyV7LSDA?list=RDGdAlyV7LS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