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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Nov 12. 2022

색이 변하는 것

삶에도 색깔이 있을까.

우리 회사 정원에는 단풍나무가 두 그루 있다.

가을이면 빨갛게 물드는 잎이 손바닥을 닮은 흔한 단풍나무다.

여름이 끝날 무렵 그 나무를 보면서 건물의 관리 소장과 이런 대화를 했었다.


"이 나무 좀 있으면 예쁘게 물들겠네요."

"글쎄? ㅎㅎㅎ"

"??? ('글쎄'라니? 단풍나무니 가을이 되면 당연히 단풍이 들겠지.)"


11월이 되어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면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햇볕은 여름만큼 따가운데 바람은 차가운 애매한 날씨가 된 것이다.


일 년 내도록 뜨거운 바람이 부는 곳에 살았던 터라 따가운 햇살에 차가운 바람은

내겐 참 낯선 조합이다. 그런데 이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따뜻하고 상쾌한

가을 날씨를 싫어할 한국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제는 점심밥을 먹다가 문득 "아! 단풍나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동안 바쁜 일상 탓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었기에 단풍나무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 후 사진이라도 찍을 요량으로 단풍나무 있는 곳으로 산책을 갔다.  

그런데 "으잉?" 단풍나무의 잎이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탈색된 잎들은 내가 알던 가을 단풍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직 가을이 깊어지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이렇게 됐지?"

의아한 생각이 들어 사무실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물었다.


"단풍나무가 색이 이상해요. 제주도에는 단풍 안 들어요?"


말을 하고 보니 내가 참 멍청한 말을 했구나 싶었다.

한라산 단풍이 얼마나 유명한데 이런 소리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나의 이 황당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더 황당했다.

"야! 왜 너는 회사에 와서 일은 안 하고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갖냐?"

"참~ 여러 가지 한다. 사람이 아주 낭만적이야...ㅋㅋㅋ"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뭐 대충 이런 대답이었다.

퇴근길에 문 앞에서 관리 소장과 마주쳤다.


"정원에 있는 단풍나무 있잖아요. 그거 단풍이 들지를 않네요."

"그거? 벌써 잎이 많이 졌을 걸?"


"그러게요, 제주도는 (한라) 산 아래는 단풍이 안 드나 봐요."

"여긴 날이 따뜻하고 습기가 많아서 산 밑에는 단풍이 잘 안 돼."


"단풍나무가 색깔 안 변하는 건 처음 봐요."

"같은 나무라도 어디 사느냐에 따라 다른 거지 뭐."


"음~!"

"단풍도 온도나 습도가 맞아야 색깔도 예쁘게 나오는 겨."


"정말 그러네요. 두 그루가 다 그래요."

"같은 자리 있으니까 똑같아지는 거지 뭐."


"예쁘게 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게 왠지 아까운 거 같아요."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뭐...."


"꼭, 단풍나무만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가??"


"네~~"


내가 있는 곳이 여기가 맞는지 참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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