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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y 15. 2023

[보홀 이야기] #00, '래시가드'의 시대 끝나는가?

'래시가드'의 시대 이제 끝나는가?


보홀에 오고 제일 놀란 것 중 하나는 해변에 서양사람이 많은 것이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의 해변처럼 많다는 뜻이 아니다. 세부에 비해서는 많다는 뜻이다.


세부에서 가이드할 때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이거였다.

"여긴 한국 같아요. 외국사람이 없네요."

"필리핀 사람들 있잖아요."

"그거야 필리핀이니까 그런 거고 나머진 전부 한국사람이잖아요.

여기가 유명한 관광지가 맞긴 해요?"


보홀에서는 이런 말 들은 적이 없다.

여긴 세부에 비해서 동서양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섞여있는 편이다.   

동양인은 한국사람과 대만사람이 반반 정도이고 서양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이렇다 말을 못 하겠다. 그리고 가끔 인도나 중동의 무슬림들도 보인다. 

 

보홀에는 보라카이 출신 가이드들이 많다.

가이드만 많은 게 아니라 핼퍼(현지인 가이드)도 가이드를 따라 많이 와 있다.  

그들도 한결 같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보라카이에는 한국사람이 대부분인데 여긴 딴 나라 사람도 많네요."


사실 이 말은 비수기 때 모습만 봐서 그렇다.

성수기가 되면 여기도 한국인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 된다.


보홀의 유명 관광지인 팡라오 섬에는 꽤 괜찮은 비치들이 여럿 있다.

프라이빗 비치가 많아 들어가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보홀을 대표하는 

'알로나 비치'는 퍼블릭이라 무료다.


알로나 비치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선텐을 하고 있는데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서양인들이다. 

이들을 보면 햇볕에 환장한 사람들 같다. 모두가 땡볕에 누워 살을 익히고(?) 있다. 


이렇게 선텐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여긴 '래시가드' 입은 사람이 많지 않다.

아예 없는 게 아니라 많지 않다는 거다. 래시가드는 한국사람과 필리핀 사람들이

주로 입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부끄럼도 많지만 타는 걸 극도로 싫어서한다. 

그래서 물놀이를 할 때 옷을 입는게 자연스럽다. 

그건 래시가드라고 부르기보단 그냥 입은 옷 그대로 물놀이를 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 


가끔 무슬림 여성 관광객을 볼 때도 있는데 이들은 바다에 들어갈 때도 히잡(?)을 한다. 

온몸을 레시가드 같은 걸로 가리고 물놀이를 하는데 불편해 보이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다행이다. 


한국, 필리핀, 무슬림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여자 관광객은 비키니를 입고 있다.

그건 대만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해변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알로나 비치' 근처는 

대부분 그 상태로 돌아다닌다. 솔직히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선글라스만 끼고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여인들을 볼 때면 처음엔 내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도 몇 번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예전 세부에서 호핑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호주에서 온 20대 여자 교민 두 명이었는데 모두 어릴 때 호주에 간 사람들이었다.  

20명쯤 탄 호핑 보트에서 둘만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멋있어요."

"ㅎㅎㅎ... 부끄러워요."

"잘 어울리는데 왜요?"

"우리만 이렇게 입고 있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부끄럼이 많아서 야외에서 수영복 잘 안 입어요."

"어머, 저도 부끄럼 많아요."

"그래요? 근데 왜?"

"할 수 없이 입는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이건 또 뭔 소리?)"


"저는 한국에서 온 사람도 다 이렇게 입고 나올 줄 알았어요."

"한국 사람들은 비키니에 익숙지가 않아요."

"그건 몰랐어요."


"어릴 때부터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었어요?"

"네, 모두 다 입고 있으니까. 그냥 입는 거죠."

"다른 수영복도 많이 있잖아요. 원피스 같은"

"그런 거 입는 사람이 특이한 거죠."


"이건 해변의 교복(유니폼) 같은 거예요."

"교복(유니폼)?"

"네, 학교 갈 때 교복 입듯이 해변에서는 당연히 비키니를 입는 거예요."

"(음... 교복이라..)"


나는 이 대화를 하고 난 후, 외국 사람들이 몸매에 관계없이 왜 모두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는지 이유를 알았다.


서양의 비키니는 한국의 목욕 문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탈의실부터 홀랑 벗고 돌아다니는 한국 목욕탕의 방식이 외국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어색하다고 한다. 겪어 보니 공동 샤워실에서도 외국 사람들은 마지막 

까지도 수건을 감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 


한국인이 비키니를 입을 때의 어색함과 외국인들이 한국 목욕탕에서의 어색함이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의 성향에는 '래시가드'가 딱 맞다.

타기 싫어서 입는 이유도 있겠지만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한국의 분위기에서 

'래시가드'는 야외 물놀이의 구세주 같은 아이템이다.


그런데 보홀 알로나 비치에서는 한국인들도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유행이 변한 것인지 세대가 변한 탓인지 비키니만 입고 다니는 한국인이 많아졌다. 


물론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이 클거라는 생각도 든다.    

일몰이 멋진 해변에서 칵테일 잔 들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래시가드를 입은 모습은 

아무래도 부족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7~8월 한국인이 몰려오면 또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보홀 해변에는 

한국인의 '래시가드' 시대가 끝나가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환영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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