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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rriet Nov 12. 2018

세입자로 살기2

이렇게 떠밀려 간다.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계약기간보다 좀 더 빨리 방을 빼 줄 수 없냐고 물었다. 한 마디가 더 붙었다. 평일 이사 가능하냐고.


하하하 당황스럽네요.

내 기분을 드러낼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당황스럽다. 아직 계약기간이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남았고 계약서도 안 썼는데. 게다가 평일 이사라니. 한 발 물러서서 보름 이내로 이사갈 수 있는지 나중에 알려달라는 당부와 함께 부동산과의 통화를 마쳤다.


짜증나. 카페에 앉아 혼자 속삭였다.

아니, 이 기분은 짜증이 아니다. 무기력감 혹은 무능력감 그 어디 쯤에 있는 감정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이 상황에 힘이 빠진다.



잠시 생각을 했다. 집 주인 둘과 새 입주자, 부동산 사이의 이해관계에 나만 쏙 빠져있다. 물론 이사를 일찍 가면 월세를 아낄 수 있다. 그거 참 다행이네.

다시 생각을 했다.

최근에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을 생각했다. ‘기꺼이 경험하기’. 그래, 기꺼이 경험하기를 연습해 볼 기회지! 기꺼이... 마음 속으로 심한 말을 외쳐본다. 난 아직 멀었다.

다시 생각해보자.

내 방이 인질로 잡혀있다. 앞으로 계약할 집 주인이 공실이 싫다고 가계약금을 돌려주면 다시 방을 구해야 한다. 이만한 조건의 방을 구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론이 났다. 아쉬운건 내 쪽이다.




이미 내 앞에 떠밀려온 결과를 피해 도망가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다. 뭍에 닿길 바라며 같이 떠밀려 갈 수 밖에.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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