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ong is right
“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 그렇지, 예뻐야 해!”
화가 르누아르가 말했습니다. 제겐 책이 ‘그렇지, 예뻐야 해!'입니다. 디자인이 예쁜 신간 <당신 곁의 화가들>을 발견했습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남깁니다.
<당신 곁의 화가들>은 서로의 연관검색어로 남은 화가 16명에 대한 책입니다. 같은 시대에 살며 영향을 주고받은 화가들이 둘씩 짝지어 소개됩니다.
르네상스의 두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르네상스)
빛에 매료된 두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과 요하네스 베르메르 (바로크)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 다른 화살을 쏘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프란시스코 고야 (로코코)
위대한 빛, 그리고 우정: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 (인상주의)
불꽃 튀는 천재들의 만남: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후기 인상주의)
애증의 줄다리기 속에서 피어난 예술: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근대 조각사)
가장 과묵한 작가와 가장 요란한 작가: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상식에 끊임없이 도전하다: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주의)
여러 대학과 기관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는 저자가 1400년대 르네상스부터 1900년대 초현실주의까지 쉽게 풀어줍니다. 그 흐름 속 공통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은 새로운 화풍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예술 세계입니다.
1839년, 사진술이 발명되자 당시의 화가들은 대부분 회화가 쇠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히려 사진의 특수성을 그림으로 가져와 새로운 예술 양식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 전통을 따르는 화가들이 사실적 묘사와 재현적 색채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인상주의 화가들은 각자의 눈이 담긴 색채와 대상에 대한 즉각적 인상을 강조하며 재현적 색채 대신 빛에 따라 변화하는 순간의 색채를 화폭에 담아냈다. p.171
하지만 당시 사람들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예술 학파 이름들은 대부분 작품을 비꼬는 말에서 붙여졌습니다. 입체주의(cubism)라는 이름은 피카소 그림이 작은 입방체들(petit cubes) 일 뿐이라는 부정적인 평에서 나왔습니다. 야수파라는 말은 마티스 그림이 마치 야수가 발에 물감을 묻히고 지나간 것처럼 거칠다는 비평가의 야유에서 비롯됐습니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균형미와 비례를 중시하는 르네상스의 고전 예술 양식과 비교했을 때 불규칙적이고 과시적인 건축과 조각을 비하하는 표현이었다. 현재는 한 시대의 예술 사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p.87
그렇게 외면받던 화가들은 나중에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인정받습니다. 기존 개념을 전복시키고, 또 자기 자신의 틀을 깨고 발전한 사람들로 말이죠. 그들 삶에서의 변화 또한 인상깊습니다. 늘 새로워진 한 화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물감 상자를 받아 든 순간, 이것이 내 삶임을 알았다'라고 말한 앙리 마티스입니다. 그는 스무 살에 미술을 처음 접하고 매일 13시간 미술에 몰두했습니다. 어릴 때 우중충한 북쪽 공장지대에서 자라서인지 밝은 빛과 화려한 색채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사물을 실제처럼 재현하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단순하게 그리고 주관적으로 칠했습니다.
마티스는 매일 13시간가량 작업하는 동안 회화에서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볼륨감을 없애며 간단한 몇 번의 드로잉만으로 형태를 만들어 내고자 꾸준히 연습했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가장 기본적인 형태만을 남겨 색채를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p.270
내가 초록색을 칠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잔디가 아니야. 내가 파란색을 칠했다고 해서 하늘을 의미하지는 않지. 나의 모든 색깔은 다 같이 모여서 노래해. 마치 음악의 화음처럼. -앙리 마티스
노년에 마티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오랜 시간 이젤 앞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의지로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침대와 휠체어에서 조수의 도움을 받아 가위로 작업했습니다. 흰 종이에 원하는 색의 구아슈를 칠한 후 물감이 마르면 가위로 오려서 다른 종이에 붙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1943년부터 그는 더 이상 붓을 들 수가 없었다. 1941년에 십이지장 수술을 받은 후 여러 합병증에 시달리게 되고, 관절염까지 심해져서 더 이상 앉은 상태에서 힘주어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cut-out) 방식을 고안했다. p.271
'재즈'는 초기 컷아웃(종이 오리기) 작품들입니다. 오려낸 종이들이 다른 형태와 배경에 즉흥적으로 어우러짐이 재즈 같아서 붙인 이름입니다. 마티스의 색채들이 만드는 리듬감과 균형미를 음악으로 만들면 정말 재즈일 것 같습니다. 재즈는 고전 클래식과 달리 멜로디를 그 순간에 변주하고 확장하니까요. 형식에 매이지 않고 본질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마티스에게 딱 어울리는 장르입니다.
우리 곁의 화가들은 예술과 인생에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사진이 발명되자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의 인상을 강조하는 기법을 창작했습니다. 마티스는 붓을 못 쓰게 되자 가위로 회화를 그렸습니다.
이 모든 변화들이 제게 재즈처럼 느껴집니다. 예술이라는 주제 선율을 각 시대마다 화가마다 독창적으로 해석했으니까요. 당시에 잘못되었다고 냉소 받았지만 후대에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재즈 뮤지션의 말처럼, 틀린 연주는 없습니다.
Wrong is right.
-Thelonious Monk
오늘날 우리는 어떤 변주를 할 수 있을까요. 21세기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그 속에서 저는 정성스럽고 싶습니다. 굳이 시간을 들여 누군가에게 책이 닿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돈이 되지 않지만 사람들을 모아 책 얘기와 마음을 나눕니다. 스마트폰 알림이 없어도 특별한 날짜를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삐뚤삐뚤한 글씨지만 손편지를 보냅니다. 그렇게 느린 박자에 진심을 담겠습니다.
참고 링크
-전시회 '그대 나의 뮤즈, 반 고흐 to 마티스' http://www.meetmymuse.com/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18년 3월 11일까지 진행되는 미디어 아트전입니다. 거장으로 불리는 다섯 화가들과 그들에게 영감을 준 뮤즈를 만날 수 있습니다. 롯데카드로 할인받을 수 있습니당.
반 고흐: 빛나는 아를의 자연
르누아르, 카유보트: 파리라는 도시
클림트: 사랑하는 연인
마티스: 예술의 즐거움
-다큐멘터리 영상 BBC Modern Masters: Matisse https://youtu.be/MGAsizxpES0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https://youtu.be/e82MYVAk1vs
책에 나오지 않지만 폴 세잔과 에밀 졸라 또한 서로의 연관검색어로 남은 화가들입니다. 아래 영상은 그들에 대한 영화 트레일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