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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by 효선


세계대전 속에서 피어난 작품


오늘날 사람들은 이전 시대에 살았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실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 결과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자연의 실험으로 창조된 귀중하고 고유한 존재임에도- 서로를 대량 학살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고유한 생물종으로서의 인간 그 이상의 어떤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 인생이 죽음과 함께 모두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곧 한 알의 총탄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p.11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에 간행된 책입니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전 세계는 군국주의에 사로잡혔습니다. 헤세는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외쳤고 전쟁이 끝나자 자기 탐구와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데미안은 패전 뒤에 절망하던 독일인들에게 위로를 주며 신인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그 자신 이상의 존재이다. 한 인간은 독특하고 매우 특별한, 그리고 언제나 의미심장한, 세계의 현상들이 서로 만나는 교차점이며, 그 인간 안에서 삼라만상이 교차하면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오직 한 번뿐인 순간의 무늬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그토록 중요하며, 변함없이 신성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하고 영원하며 신성할 뿐 아니라, 인간은 누구든 살아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는 경이롭고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이다./p.11


헤르만 헤세는 기존 명성에 기대지 않으려고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책을 발표했습니다. <데미안>의 부제는 "싱클레어의 청춘 이야기"입니다. 작가와 주인공 이름이 같으므로 자전적 소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헤세가 원작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본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두 세계'


저자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부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했으며, 어머니는 선교사의 딸로 인도에서 자랐습니다. 헤세는 네 살부터 아홉 살까지 (부모님이 해외 전도사의 근거지인 전도관 일을 맡았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지내며 세계 시민 마인드를 가졌습니다. 동서양 종교가 융합된 외할아버지의 정신세계가 헤세에게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외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신교 목사가 되기로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지만, 그는 모범적인 청년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보면 주인공에게 두 세계가 있습니다. 밝고 선한 세계와 어둡고 악한 세계. 순수하고 질서 있는 세계와 살인, 자살 이야기가 오가는 무서운 세계. 싱클레어는 낯설고 두렵지만 금지된 세계를 궁금해합니다. 또한 성경을 다르게 읽습니다. 그 해석을 들은 싱클레어 아버지는 이교도 사상을 다신 꺼내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을 아벨이 아닌 카인이라고 봅니다. 때로는 밝은 세계와 지혜를 꿰뚫어 보고 경멸하고, 사악함과 불행을 통해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면서요.


"카인 이야기는 아주 다르게 해석할 수가 있지. (...) 다른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어떤 것이 깃들어 있는 얼굴을 가진 남자가 있었던 거지. (...) 용기 있고 개성이 넘치는 사람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어딘가 두렵고 불길해 보이는 법이지. (...) 강한 카인이 약한 아벨을 죽였던 거야. 그들이 정말로 형제였는지는 의문이지만.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아. 결국 인간은 모두 형제니까. 약한 자들은 그들이 불안에 휩싸여 한탄할 때, 만약 누군가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그자와 맞붙어 싸우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우리가 겁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럴 순 없다. 그는 징표를 가지고 있다. 신이 그에게 내린 것이다!'라고 말하지. 이렇게 해서 속임수는 생겨난 거야." /p.33-34


그처럼 두 세계에서 악에 흥미를 느끼며, 성경을 다르게 읽은 헤르만 헤세는 신학교에서 도망쳤습니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는 갈등으로 방황하고 신경증을 겪습니다. 그러다 누나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아버지가 가진 세계 명작을 모조리 읽습니다. 스물두 살에 시집을 자비 출판하고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책을 쓰고 냅니다. 또래와 달리 불안정한 길을 가며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주변을 걱정시켰지만, 원하는 바를 끈질기게 추구하여 결국 존경받는 작가가 됩니다.



선악을 통합하는 신, 아브락사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p.84


책에서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메시지를 주인공에게 준 사람이 바로 데미안입니다. 이름이 책 제목이듯이 존재감이 큰 인물입니다. 어른스러운 얼굴로 비범한 포스를 풍기는 그는 상급생 크로머의 괴롭힘을 해결해주며 싱클레어에게 구원자처럼 등장합니다.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줍니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통합한다"라는 말이 내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 우리는 임의적으로 분리된 절반의 세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신만을 섬겨 왔다(이 세계는 공인되고 인가받은 밝은 세계였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전체를 숭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악마이기도 한 신을 갖거나 또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드려야 함을 의미한다. 아브락사스는 신이면서 악마이기도 한 신이다. /p.85


데미안은 악령에 붙잡힌 것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합니다. 악마적이며 초인간적인(daeonisch) 힘을 지닌 그의 인도로 싱클레어 소년은 운명을 개척하고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걸어갑니다. 소설 마지막에서 거울 속 자신이 데미안과 꼭 닮아 보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길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다다르기 위한 여정, 아니 그러한 길을 찾아내려는 실험이며 그러한 오솔길의 암시이다. 완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었던 사람은 이제까지 존재한 예가 없다. 하지만 의식하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구별은 있을지언정 누구나 목표를 거기다 두고 힘껏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점액이나 알껍데기와 같은 태생의 흔적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닌다. 끝내 인간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나 도마뱀, 개미 따위의 단계에서 그대로 죽어 버리는 사람도 있고, 상반신은 인간이지만 하반신은 물고기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자연이 인간 창조에 건 모험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같은 기원의 존재이며 똑같이 아득한 저 너머에서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서로 다른 깊이를 지닌 어떤 실험이며, 자기 운명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저마다 지니는 고유의 뜻을 아는 것은 그 자신뿐이다. /p.12-13


작가는 인생이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길을 찾는 실험이라고 말합니다. 한 오솔길이 옳다는 가설을 세우고 모험을 떠나는 것입니다. 틀렸다고 판단하면 돌아와,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세상 많은 길 중에 하나로 걸어갑니다. 여러 일을 겪으며 점점 인간이 되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끝내 인간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고슴도치 정도인 듯합니다(?)

사람이 되고, 자기 자신이 되고, 고유의 뜻을 아는 삶은 어떤 걸까요? 싱클레어가 성장한 모습에서 유추해봅시다. 그는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틀을 깨고 보다 큰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상급생에게 공포스러운 괴롭힘을 당하고, 술에 취해 대학 생활을 하고, 사제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만나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전쟁에 참전합니다. 세상의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 또한 끌어안습니다. 선밖에 몰라서 선을 택하기보다, 악을 알면서도 선을 택할 때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성경에서 하와를 유혹한 뱀을 지혜라고 보는 해석도 있듯이 말입니다. 싱클레어처럼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고 책임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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