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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선 May 21. 2018

<맨해튼 트랜스퍼>

그들은 맨해튼 트랜스퍼에서 환승해야 했다. /p.167



 <맨해튼 트랜스퍼>는 1920년대 미국이 배경인 소설입니다. 책 제목인 맨해튼 트랜스퍼는 당시 가장 붐비던 환승역 이름입니다. 흥미롭게도 뉴욕의 중심지 맨해튼 자체가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도시에 있는 방화범, 파산한 은행장, 배우, 노숙자, 법조인, 노동자 등 스무 명도 넘는 인물이 파편적으로 나옵니다. 그들을 통해 소제목 '열흘 붉은 꽃 없다', '되는대로 사는 환락의 도시'가 묘사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카메라로 관찰하듯이 담아낸 실험적인 기법과 파노라마식 구성으로요. (그걸 모르고 처음 읽을 때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따라가려고 애쓰느라 힘들었습니다. 같은 사람도 여러 이름으로 불려서 헷갈리고요. 중간에 이해를 포기하고 읽으니 편해졌습니다..)



"브로드웨이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난 중심지로 가고 싶소!" /p.10


  도시 자체가 주인공이지만 눈에 띄는 인물들이 몇 있습니다. 먼저 뉴욕에 환상을 품고 상경한 버드입니다. 책 초반에 등장한 버드는 차를 타고 중심지로 갑니다. 불쌍하게도 시작부터 외모 지적을 받고요, 짐을 옮겨주는 대가였던 1달러 대신 50센트만 받고 쫓겨납니다. 대접받은 음식도 다 상해 가는 수프와 딱딱한 빵입니다. 달콤할 줄 알았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의 쓴 맛을 경험하고, 비참하게 노동자의 생을 마감합니다.



 장갑을 테이블 한끝에 놓아두려다 그녀의 손이 시들어가는 빨강, 노랑 장미가 꽂힌 화병을 건드렸다. 색 바랜 꽃잎이 그녀의 손과 장갑, 테이블 위로 우수수 떨여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것들을 털어냈다. "그리고 이 궁상맞은 장미도 좀 치우라고 해줘요. 조지... 시든 꽃은 질색이에요." /p.310


 시든 꽃을 질색하는 앨런은 화려한 소비생활을 하는 여배우입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유명세를 얻으며 끊임없는 스캔들과 함께 파란만장하게 삽니다. 남편 조조와 이혼을 하고, 변호사 조지에게 끊임없는 구애를 받지만, 스탠과 재혼을 하는데 또 그가 화재로 죽습니다. 딸을 낳고 기자 지미와 재혼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 끔찍하군요” 갑자기 지미가 외쳤다.

"뭐가요?"

“섹스에 관한 온갖 은밀한 얘기들 말이에요. 그렇게 고통이 심할 수 있다는 걸 난 오늘 밤까지도 몰랐어요. 그동안 참 힘들었겠어요... 누구나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당신 같은 경우는 운까지 나쁜 거죠. 운까지. 마틴은 이렇게 말하곤 했죠. 종이 울림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과 살아온 방식과 사랑한 얘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질 거라고요. 감추니까 썩는 거죠. 끔찍하군요.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인데."/p.333


 뉴욕타임즈 기자인 지미는 지식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네온사인 불빛처럼 빛나는 도시의 그늘을 압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이 텅 비었거나 곪은 사회라고 환멸 합니다. 문제를 고발하며 작가 존 더스 패서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온갖 은밀한 부정에 질린 그가 차를 타고 꽤 멀리 떠나며 소설은 끝납니다.


"좀 태워주실래요?" 그는 운전석의 붉은 머리 사내에게 묻는다.
"어디까지 가는데요?"
"글쎄.... 꽤 멀리요." /p.564



 작품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이 있기 전에 발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1920년대 뉴욕 그리고 2018년도 서울.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소설에서 지미가 외쳤듯이, 감추니까 썩습니다. 전 대통령의 비리, 국회의원의 만행, 유명 그룹 일가의 갑질, 일상에서 겪은 성폭력 등.. 요즘은 겉으로 드러나고 정화되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서울 -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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