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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선 Jul 01. 2018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그 많던 역사 속 여성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많던 역사 속 여성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자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만들어온 이미지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 한마디로 설명했다. 여성이 약하고 귀엽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은 여성의 생물학적 본성이 아니라 교육의 결과인 것이다.
 여성은 귀여운 생명체로 자라야 한다고 배운다. 여자아이는 엄마를 관찰하며 모방한다. 세상으로 나온 그들의 눈엔 온통 남자들뿐이다. 학교에 가면 세계사를 쓴 남자들의 이름을 배운다. 위대한 화가, 작곡가, 시인, 사상가, 수학자, 발명가는 모두 남자이다. 오랜 세월 여자들은 그렇게 살았다. /p.501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어크로스, 2018)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시기적절하게 나와서 인기 많을 법한 컨셉이다. 우리는 세계사를 말할 때 주로 남성 인물들을 배웠다. 그렇다면 '역사 속 여성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잘 지은 책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세계사에서 빠진 퍼즐 채우기


유명한 여성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았다. 다만 그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뿐이다. 그 이유는 여성이 비범한 일을 하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시대의 사건을 기록한 남성들이 여성의 업적을 무시해버리는 일이 자꾸만 일어났다.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가 세상을 뜬 후 사람들은 건축물에 새겨진 그녀의 이름을 도로 파내버렸다. 몽골에서도 여성의 역사가 기록된 부분을 모조리 잘라낸 13세기의 양피지가 발견되었다. 로마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p.12


이 책은 세계사라는 퍼즐을 다시 맞추겠다고 한다.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남성들을 뺀다면 편파적이므로, 빠진 퍼즐 조각들을 채워 넣겠다고. 여자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남자를 포함한 역사(주로 서양사)를 말한다. 다른 역사서 보다 여성과 관련된 일화 혹은 인물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기득권 남자들이 여성에 대해 왜곡한 일이 많았다.


아랍인들은 여자를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약탈품으로 생각했다. 승자는 적에게서 뺏은 여자를 취했고, 집에 두고 시중을 들게 하거나 노예로 삼아 밭일을 시켰다. 아니면 내다 팔아서 돈을 벌었다. 무함마드는 여자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이런 풍습에 심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는 아내들과 딸 파티마를 진심으로 아꼈기 때문에 그런 풍습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그러나 추종자들은 여자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라는 선지자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느꼈다. (...)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이슬람교도들은 철폐했던 노예제도를 부활시켰고 심지어 무함마드가 '비이슬람적'이라 했던 강제 결혼 같은 풍습도 다시 도입했다. 선지자가 특별히 신경 쓴 가르침을 배반한 것이다. /p.179


칭기즈칸은 여자들이 맡아하는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았다. 그래서 집안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라도 잘 다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딸 치체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네 아버지 칸의 딸이므로 너를 보내 오이라트족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딸 알라카이 베키에게는 '나라를 다스리는 공주'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사위들이 딸들을 간섭하지 못하도록 그는 사위들에게 이런저런 직책을 맡겨 멀리 유럽의 전쟁터까지 데리고 다녔다. 칭기즈칸이 직접 다스린 본국은 네 명의 아내에게 맡겼다. /p.248


상나라나 주나라 같은 왕조가 멸망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다른 귀족 가문들의 힘이 점차 세져서 왕의 권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또 몽골에서 중국을 침략한 기마민족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왕을 망친 두 여인 달기와 포사의 이야기는 이런 과정을 심하게 단순화시킨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전설의 목적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설은 특정한 해석을 퍼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전설들이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우연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나쁜 여인이 등장해 왕을 비도덕적 행동으로 이끌고 그로 인해 불행을 끌어들인다. 여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멸망의 진짜 이유와 남자들의 실책을 은폐한다. /p.51-52


 


취지는 좋았으나 깊이가 아쉬운 책


하지만 전반적으로 깊이가 얕아서 아쉽다. 취지는 좋았으나 내용이 파편적이다. 사소하지만 아래 부분을 읽고 특히 신뢰도가 떨어졌다. 공자가 제자를 칭찬한 내용도 많은데 한 구절에 트집 잡다니.. 공자에 대해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오해할지도 모른다. 다른 내용에서도 맥락 없이 원하는 부분만을 가져온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촘촘하게 잘 짜인 직물을 원했는데 구멍이 숭숭 난, 성긴 니트를 받은 기분이다.


공자에게는 3000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중에는 수공업자, 농민, 상인 같은 평민 출신이 많았다. 공자가 그들을 특별히 존중한 것 같지는 않다. "시는 어리석고, 증삼은 노둔하고, 자장은 편벽되고, 자로는 거칠었더니라."라고 제자들의 험담을 늘어놓았다니 말이다. 이웃을 공경하라는 자신의 주장을 잊은 것일까? /p.106


공동 저자 소개를 보면 독일 여성 둘 다 역사만을 전문으로 하지는 않는다. 케르스틴 뤼커는 철학, 슬라브학, 음악학, 종교, 유럽 및 러시아 역사를 연구했고 번역가, 작가, 편집자로 활동한다. 우테 댄셸은 독일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고 편집자로 활동했고 현재 교사라고 한다. 편집자였어서 그런지 감각있는 기획으로 책을 만들었다.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라는 테마만은 괜찮았다.

 역사를 아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다른 양서를 읽겠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는 내용이 방대하지만 설득력 있다.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가 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역사서는 아니지만) 책의 혁명성에 대한 역사를 서술하는데,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 감탄하며 여러 번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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