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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대표 Nov 24. 2023

온라인 N삽질이 시작되다

온라인은 기회의 장이구나

가르치는 게 천직인지라

네이버 카페가 참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카페 내에는 다양한 등급이 나뉘어져 있었고 관심 주제로 모인 사람들은 카페에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등업신청을 했다. 카페에서 정한 기준 이상이 되면 조금 더 높은 등급으로 등업이 되었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모인 회원들은 알아서 자유게시판을 통해 토론을 하기도 했고 다양한 재테크 칼럼을 발행하기도 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카페에는 운영진들이 제공하는 정보 외에도 다양하고 알찬 정보가 쌓여갔다. 카페 규모가 점점 커지니 광고문의가 들어왔다. 카페 메인화면에 배너를 다는 광고는 배너의 크기나 위치에 따라 비용이 차등 적용됐다. 오프라인 임대료를 받는 것처럼 배너 광고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대신 월세를 받았다. 자리에 따라 5만 원에서 20-30만 원까지 다양했다. 또 다른 월세 수단은 카테고리 임대였다. 이미 규모가 커진 카페였기에 비용을 내고 카테고리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관련주제라면 카테고리 대여도 제법 늘려갈 수 있었다. 역시 매달 월세를 내고 운영되는 방식이었고 운영진들이 나눠서 관리하면서 수익도 분배했다. 또 다른 수익화는 공동구매였다. 카페 규모가 커지니 공구 제안도 많이 들어왔다. 제안이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 수용하는 건 아니고 회의를 거쳐서 카페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공구들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카페 회원 관리와 배너와 카테고리 임대로 입점해 있는 사장님을 관리를 맡아서 했다. 카페 차원에서 회원들 상대로 진행하는 아이템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정보성 칼럼을 작성하며 교육하기도 했고 팀별로 나누어 원격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가르치는 게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언가를 가르칠 때 에너지가 넘치는 나. 하루하루 돈도 벌고 재미도 있었다.


나만 벌고 있다는 가책

한동안 카페 운영에 푹 빠져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카페 회원들보다 운영진들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익화가 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페 운영과 월세, 다양한 교육을 인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건데.. 모든 회원들이 다 잘 따라오지 못하고 버는 사람들만 버는 게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그만큼 나를 갈아 넣으며 열심히 했기에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때 당시에는 함께 공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를 다 끌고 갈 수 없는 건데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모두가 함께 갈 수 없다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에 카페 운영진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 친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블로그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거였다. 그 당시 네이버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블로그를 해보라는 말에 의아했다. 키워드를 활용해서 검색유입 시키며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 했다. 최적화 블로그를 만들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적극 권했다. 방법도 다 알려준다며 한번 해보라는 동생의 말에 무턱대고 시작했다.


블로거라는게 되다.

동생은 A4용지 2장 정도의 블로그 운영 방법과 팁들을 정리한 파일을 주었고 난 그 방법을 토대로 블로그 세계에 입문했다. 네이버 광고에서 제공하는 키워드 도구를 활용해 키워드 찾는 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지금이야 키워드 찾는 툴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때는 네이버 '키워드 도구'가 전부였다. 블로그 시작할 때는 검색량 200-300 정도의 키워드부터 시작했다. 200-300 키워드가 상위노출되면 500으로 올렸고 500짜리 키워드가 상위노출되면 1,000으로 올렸다. 동생은 세부 키워드부터 공략해서 점점 레벨을 올리는 방식을 알려주었고 계단식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2배로 높여가면서 올리면 된다고 했다. 검색량 1,000에서 2,000으로 2,000에서 5,000원으로 1만으로 진짜 신기하게도 다음 레벨로 올라갈 땐 2배 정도의 성장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최적화 블로그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운영하면 쓰는 글마다 상위노출이 되는 최적화 블로그가 되었다. 최적화 블로그는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동생은 1인 마케팅 회사를 운영 중이었고 병원과 부동산 등 다양한 업체들의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었다. 최적화 블로그를 키워서 업체들에게 넘겨주시고 했고 직접 블로그 대행을 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블로그 수작업 공장이 되다.

최적화 블로그가 너무 잘 만들어진다. 한 IP에서는 2개의 블로그만 운영했고 한 명당 만들 수 있는 네이버 아이디는 3개이다. ID와 IP가 부족했다. 부족한 아이디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동생이 조달해 주었다. IP는 인터넷 회선을 3개로 늘리고 그것도 부족해 VPN(가상 사설망)을 여러 개 구입하여 사용했다. 나 혼자 운영하는 블로그만 10개에서 15개 정도였고 20개 이상 운영할 때는 알바를 고용해서 함께 블로그를 운영했다. 한 달에 2번 최적화 블로그가 결정되었는데 여러 개의 아이피와 아이디를 돌리니 결전의 날엔 여러 개의 최적화 블로그가 만들어졌다. 완전 인간 블로그 공장이었다. 프로그램을 돌려서 최적화 블로그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만들어진 블로그는 금방 저품질에 걸렸다. 그 당시 저품질은 회생불가능이라 판단하여 버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수작업으로 만든 최적화 블로그는 생명력이 좀 더 길었다. 눈 뜨고 있는 거의 모든 시간에 블로그 작업에 올인했다. 막내가 어렸기에 낮잠 재울 때나 울며 보챌 때는 싱크대에 노트북을 올리고 서서 일을 했고 소파에서 쉴 때도 다리에 올려놓고 포스팅을 했다. 카페를 할 때와는 다르게 내가 열심히 하면 내가 벌고 덜 열심히 하면 내가 덜 벌 뿐. 마음이 너무 편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 최적화 블로그 운영에 박차를 가했다.


1인 블로그 대행사를 운영하다.

동생의 권유로 시작한 블로그 덕분에 업체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대행 업무가 엄청 늘어났다.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믿고 일을 맡겨주시는 분들께 감사했다. 일이 많아지다 보니 어느새 난 1인 블로그 대행사의 형태가 되었다. 많은 업체들의 블로그가 내 손을 거쳐갔다. 내가 관리해 주는 업체들은 블로그 덕분에 트래픽 발생은 물론이거니와 전환이 잘 되어 매출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TV나 라디오, 신문 광고가 더 익숙했는데 온라인을 활용한 광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네이버에서는 홍보용 블로그가 많이 늘어나니 로직을 바꾸면서 진입장벽을 높였다. 로직이 바뀔 때마다 연구와 테스트를 반복하며 방법을 찾아내고 적용시켰다. 처음 로직이 바뀌어 대거 저품질의 늪에 빠졌을 땐 너무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계속 파고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나게 블로그에 미쳐있었던 것 같다. 전형적으로 배워서 잘하게 된 일이 좋아지게 된 경우였다. 내가 관리해 주는 업체들에서 매출이 올라갔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고생한 모든 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체험단과 제휴마케팅의 세계

거래처들 브랜드 블로그를 운영해주시고 했지만 내 블로그도 3-4개 운영했다. 다양한 정보성 포스팅을 하면서 키운 블로그였고 최적화 블로그를 만들어서 체험단을 진행했다. 정말 많은 제품을 제공받았고 정말 다양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당시 니콘 DSLR 어깨에 메고 여기저기 참 열심히 다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체험단을 재미있게 경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들, 딱히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들을 먹고 포스팅하는 내 모습에 현타가 왔다. 밀려드는 체험단의 리뷰들에 치여서 지쳤던 모양이다. 차라리 돈을 받는 게 낫지 딱히 원하지 않는 제품들은 그만 받고 싶었다. 꼭 필요한 체험단만 선별해서 진행했고 제휴마케팅을 병행했다. 포스팅을 작성해 주고 주제별로 책정된 포스팅 비용을 받았다. 센 키워드 노출을 원하는 경우는 포스팅 단가가 올라갔고 가볍게 할 수 있는 포스팅들은 낮은 단가에 여러 개 진행하기도 했다. 블로그 운영만 잘해도 돈을 벌 수 있는 신기한 세상의 중심에서 제법 승승장구하는 내 모습을 보니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레슨을 그만두며 전업주부가 되던 그날이 떠올랐고 전혀 모르는 분야인데 1부터 시작해서 유의미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는 게 그저 뿌듯했다. 10여 년 전 난 온라인 세상의 가능성을 제대로 알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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