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사라지고 내가 남았을 때

경력 단절을 마주한 마음

by 효나니

퇴사는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복직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었다. 대기번호가 한참 남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조금 먼 어린이집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았는데 내가 마음 편히 아기를 맡길 수 없는 조건들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 4시에는 하원을 하는 것이 아이한테 좋겠다, 등하원 도우미를 구해보는 게 어떠냐’ ‘할머니는 안 계시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냐’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마음이 조급해졌다.



첫 여름을 맞이한 아기의 통통한 종아리


내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 무서웠다. 다른 사람이 아기한테 함부로 할까봐 두려운 것은 두 번째였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나의 불안함이었다. 내가 아기를 봐주는 사람을 의심할까봐, 함부로 대할까봐, 믿지 못하고 일에 집중을 하지 않을까봐 불안했다. 남편이나 우리 엄마, 시엄마를 떠올렸지만 누구도 아이를 온전히 봐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한테는 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워킹맘으로 살아갈 내 모습만 생각해왔었기에 전업맘이 된 내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순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아기와 함께 하루하루 온전히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한 아기는 나를 무척이나 괴롭히면서도 사랑해주었기 때문에 다음 생일이 될 때까지는 내가 해보자, 일 년만 더 기다리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겠지. 바로 퇴사 의사를 밝혔다. 회사 이사님과 만나 퇴사를 해야겠다고, 내 입으로 퇴사를 말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10년 간 쉬지 않고 일했던 마케터 전효선의 한 페이지가 마무리 되었다.



누구보다 활력적으로 일했던 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억지로 밀려난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퇴사를 말했고, 기꺼이 ‘엄마의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선택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30개월이 된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을 그만둔 건 나인데 막상 ‘회사원’ ‘전효선 팀장’이라는 이름표가 떨어지고 나니 너무 큰 게 사라진 것 같았다. 아기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 충만한 동시에 마음 속의 어떤 빈자리는 점점 커졌다.



이게 경력 단절이라는 건가.

나는 더 이상 마케터가 아닌가.

내가 아기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은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아기와 처음으로 둘이 차 타고 멀리 나들이 나왔던 날



아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바쁘게 흘러갔다. 결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기의 옹알이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고 아기가 웃을 때마다 내 안의 감정들도 요동쳤다. 아기는 스스로 뒤집었고, 일어섰고, 작지만 커다란 한 발을 떼었고, 나를 엄마라고 불렀고, 계속 울었다. 작고 느린 변화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이 시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경력 단절. 휴직. 공백기


익숙한 단어들이지만, 어떤 단어들도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을 온전히 담아주지 못했다.



『자미』 | 오드리 로드 | 디플롯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경력단절 여성의 현실을 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 나와 연결되고 싶어서. 어떠한 역할이나 성과 없이도 내가 어떤 시간을 살아냈는지 그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멈춘 것처럼 보였던 이 시간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이 조용한 기록이 혹시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에게도 닿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