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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Aug 25. 2020

침묵이 밀어 낸 말
3. 침묵 속 난장이들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 읽기


3. 침묵 속 난장이들






21세기의 ‘은강’은 이제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기업의 건전성과 윤리 의식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다. 촛불 정국 이후 부패한 대통령과 결탁한 재벌이 구속되었고 정권이 교체되었으며 비정규직자들은 정규직화된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는 힘은 여전히 뱀처럼 비열하게 세계 은밀한 곳에 또아리를 품고 있다. 그것에 비해 가지지 못한 자의 힘은 초라하기만 하다. 사용자는 아주 교활하고 이에 비해 노동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이제 노조 따위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그 자신의 워라밸(Working·Life·Balance)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난 ‘가상세계’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미래 산업은 이원화되고 대립화된 이미지로 투영된 난장이식 투쟁에서 벗어나 아주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선생은 상수에게 미싱이 ‘머신’(machine)의 일본식 표현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머신은 기계이니까 그렇게 따져보면 미싱은 온갖 기계를 대표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미싱회사 직원인 우리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옷을 왜 입냐는 것인데, 우리가 혼자 살면 옷 안 입어도 됩니다. 그런데 옷을 입는다는 건 어딜 나간다는 거고 누굴 만난다는 거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된다는 거잖습니까. 인간다워지라고 미싱을 돌린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상수씨, 그거 안 잊어야 합니다.”



경애는 자기가 결정하는 사람은 아니고, 옆의 상수를 가리키며 이분이 팀장이셔,라고 했다.
“이분이 팀장님이면 우리 아빠는요?”
영서는 상수가 젊어 보여서 그런지 문득 그런 걱정을 했다.
“아빠는 선생님이셔. 회사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렸어.”
“선생 아닌데 왜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잠깐 상수와 경애는 할 말이 없었다. 이윽고 경애가 “너무 좋은 분이라서 그래. 그런 사람은 여전히 회사에서도 선생이라고 불러. 그런 건 안 변해”라고 대답했다.


김금희, 『경애의 마음』, 창비, 2018.




그 와중에도 여전히 ‘사람’을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김금희의 신작 『경애의 마음』에서는 최근 한국 사회의 노사 갈등과 그 안에서 지켜야 할 ‘사람’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서는 ‘조선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회사에서는 제대로 된 직급조차 없는 인물이지만 그 만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세월호와 용산 참사 이후 눈물과 반성의 시국을 지나 산업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21세기 난장이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고요한 침묵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여전히 햇빛을 더듬는 손이 있고 끄집어내야만 하는 언어들이 측량하기 어려운 힘을 내재하며 휘몰아 친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사형 선고 이후 사라진 지섭처럼 작가는 연작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작가는 오랜 침묵 안에서 어떤 말들을 떠올리고 있을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의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지만 어떤 면에서 시를 읽는 것처럼 느껴지게도, 그림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작가가 침묵의 뿌리에서 토로한 것처럼 “오랫동안, 찾아오는 말들을 너는 안될 사정이 있어 안 돼 하며 돌려 보내기만 했더니 이제는 모든 말들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 지레 채고 발길을 끊어 버렸다”고 한다.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왔던 말들은 난장이 문학으로 탄생하였고 그것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에서 머물러 한정되지 않고 여러 연작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화되었다. 그 연작이 각기 다른 행성처럼 일정의 힘을 두고 서로를 밀고 끌어당기면서 난장이의 우주는 문학으로 탄생되었다. 작가는 오랜 침묵 속에 끌어올린 자신의 언어로 충분히 난장이의 삶과 그 아픔을 전달하였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오랜 세월 독자의 몫이다. 물론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보하므로 난장이의 시대는 지금의 모습과 차원이 다르게 변모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난장이’들은 존재하고 나날이 교묘한 방식으로 사람을 기계화시키는 체제 앞에서 다시금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김금희, 장강명과 같은 젊은 작가들의 문학을 통해 21세기식 난쟁이들은 여전히 고요하게 투쟁 중임을 짐작할 뿐이다. 침묵 속에서 난장이의 언어는 어떤 시이고, 그림으로 소생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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