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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Jul 19. 2024

아기

효구 에세이 



아기는 아직 사람의 형체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아기는 영문도 모르고 자신의 형체를 일으키고 또 일으킨다. 그저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라 여기고 있다. 강낭콩 같은 작은 몸을 둥글게 말아 반복해서 뱅그르르 돌린다. 내가 한번 숨을 쉴 때 아기는 온 힘을 다해 두 번을 쉰다. 가끔은 두 번 이상을 쉬는 것 같다. 일정하지 않은 리듬으로, 이미 사람으로 30년을 넘게 산 나보다 더 잦은 맥으로, 도시를 살아가는 직장인보다 더 바쁘게, 쉬지 않고, 툭. 툭. 툭. 숨을 쉬고 있다. 


어느 날, 나는 뱃속에 다른 숨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툭. 툭. 투둑. 투둑. 조용한 빗소리처럼, 내 안에 음악이 흐르게 되었구나.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고요한 요동. 


요새 유독 험한 꿈을 더 많이 꾸는 것 같아. 


아기의 아빠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처지를 나는 충분히 납득한다. 다만, 나는 그와 달리 온 몸으로 아기를 이해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드러낸 적 없는 살과 가죽 아래에 아기를 품고 있다. 내 몸 안에 자리를 만든 생명은 아기가 유일하다. 아기의 세상은 온전히 나의 살 안에서 펼쳐진다. 자궁은 아기의 작은 우주가 되었다. 나에게도 자궁이 우주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대체 우리는 살아가며 몇 겹의 우주를 경험하게 되는 걸까. 


나는 아기의 잦은 숨과 그 노력을 온 몸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그의 현재를 이해함과 동시에 다가올 가까운 미래를 직감한다. 나는 신뢰할만한 예언자가 된다. 아기의 생활 반경이 내가 가늠할만한 위치에 놓여있다. 아기의 운명은 나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나의 사건이 아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직감하지만, 나는 때때로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아기의 삶은 나의 삶보다 윤택해야만 하며, 내가 불행했던 경험을 아기는 겪지 않아야만 한다. 불필요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령 이런 생각들.


‘아기의 삶은 나의 삶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난다 한들, 아기만은 살려낼 수 있다. 그러면 아기는 종종 불행할지언정 내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살고, 아기가 사라진다면? 그런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불행할 것이다.’


나는 두렵고, 혼란스럽다. 육신은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로하다. 저녁 내내 속이 메스껍다. 


별안간 나는 울고 싶어지기도 한다.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나면, 아기는 엄마의 울음을 배울까? 전체가 꽝꽝 진동하는 울음의 세상 속에서 아기는 존재하는 기쁨과 슬픔을 일찌감치 배울까. 생각에 미치자, 나는 절대 울지 않기로 한다.


아기야, 아무 것도 몰라도 돼. 날씨의 변화에 대수롭지 않은 파리 사람들처럼, 너도 엄마의 마음을 저 흘러가는 구름이라 여겨 줄래? 


여름에는 하늘에 구름이 참 많네. 얕은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어서 차곡차곡 모인 구름의 무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꽃구름, 꼬리구름, 뭉게구름, 나비구름, 높쌘구름, 겹구름. 구름의 모양은 다양하고, 겹겹이 모이면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한다. 툭 툭 툭 툭. 빗소리. 꼭 너의 작은 숨소리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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