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시월의 EATFLIX(2021. 10)
'힘내'라고 말하면 정말 힘이 날까?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꼭 잡고, 등을 토닥이면 나의 진심이 다 전해질까? 함께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그가 짊어진 마음의 무게도 함께 흘러가 버릴까? 아님 '와하하하' 웃으며 별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게 되려 힘이 될까? 여러 번 반복된 말들이 진심을 퇴색시키진 않을까? '괜찮다'라는 말은 좀 이기적인 것일까?.. 가볍거나 무겁거나 사람을 위로해야 할 일들은 많아졌지만,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누군가를 제대로 잘 위로하는 매뉴얼이 따로 있거나, 진짜 완벽한 이모티콘이 등장해서 부담 없이 툭하고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위로가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도 않으며,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적당한 상태로 잘 전해져 아픈 마음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아끼는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그곳에서 김혜자는 얼떨결에 백화점 VIP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인회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을 주제로 시를 짓는 과제를 받는다. 이를 위해 그동안 들었던 기억에 남는 말을 생각하는데, 대체로 상처가 되었거나 화가 났던 날카로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고민에 가득 차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오빠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의 처지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혜자는 작은 가게를 내볼까, 월세를 받는 상가를 살까 생각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오빠는 혜자에게 묻는다. "돈은 있니?" 이 말을 듣고 조용히 커피만 마시다 집에 돌아오며 이렇게 말한다.
"돈은 있니?라는 말에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울컥 마음이 뜨거워져서. 힘들게 사는 거 다 보였나 싶으면서도 이 사람 꽤 나를 많이 생각해주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힘들 거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왜 같이 사는 식구조차 내 주머니에 돈이 말라 힘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걸까요? 드라마나 소설 속 아름다운 얘기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항상 그녀들의 가계부가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얼마를 벌어서 어떻게 얼마를 쓰고 사는지 그 아름다운 얘기에 그 얘기가 쏙 빠져있어 왠지 인형놀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돈은 있냐는 당신의 말 한마디에 난 벌써 위로를 받았습니다. 힘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동적인 한 마디를 떠올려야 하는 이 시점에, 당신은 내게 감동적인 한마디를 던져주고 가셨습니다. 난 아마 이 글을 발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동네에서 이런 글은 이해받지 못할 테니까요. 그저 나만이 아는 애 인생의 한마디. 돈은 있니?"
진심은 늘 준비되지 않은 지나치는 말에 있다. 그리고 그 지나치는 말에는 오랫동안 상대를 위했던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 말들은 아주 자연스럽고, 따뜻해서 사람의 마음 깊이 들어가 위로하고 감동을 준다. 여전히 쉽지 않은 시지만, 돈은 있니라는 별거 아닌 말과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매일 듣는 말처럼 특별하지 않아서 놓치기 쉬운 말들에 몰랐던 감정을 담은 것까지 시라고 부른다면 조금은 친근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근해진 만큼 우리의 마음을 토닥여줄 것이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꾸 읽기
매일 오는 계절이, 특별할 것 없는 자연이 나의 오늘을 이렇게 따뜻하게 바꾸는 한 줄의 시들이 모였다. 좋아하는 구절이 많아서 대부분 책장의 모서리가 접혀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건 "추워도 불 가까이 가지 마, 눈사람"
시가 뭐고?: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89명의 할머니들이 시를 썼다. 할머니들의 하루 또는 인생이 날 것의 단어와 말투들이 시가 됐다. 별 거 아닌데 왜 눈물이 나는지 읽어보면 안다. 문식이 할머니랑 박금분 할머니의 시를 보며 훌쩍.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좋아하는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쓴 박준의 시집. 언젠가 나도 겪었을 거 같은 시절을 읽으며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된다. 희망소비자가격이 그렇다.
사랑방 칼국수_백숙백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치킨스톡이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여기 닭국물일 거다. 따뜻한 국물과 닭고기와 밥과 김치를 함께 즐기면 닭국물의 온도만큼 우리의 마음도 따뜻해져 있다.
돈까스백반_돈까스백반
무려 돈까스가 무한리필인데, 성인 남자 2명이 가도 한번 리필이 최대치이다. 소스가 특이하고 함께 차려지는 반찬과 된장찌개와 미역국이 아주 맛있다. 엄마한테 속아서 병원 가기 전 혹은 후에 먹은 그 돈까스만큼 다 큰 어른을 토닥여준다.
주유소식당_낙지백반
스뎅 그릇에 담긴 흰쌀 밥에 매콤 달콤한 낙지볶음이 얹어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치고 얼어붙은 마음이 사르르 녹고, 으쌰하고 힘을 낼 수 있다. 집밥을 더 집밥답게 만드는 노포 특유의 감성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