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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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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Sep 25. 2023

맨투맨에 반바지를 입는 계절

일상절기_여름과 가을사이

기분상 여름이 1년의 반이 된 거 같다. 더위와 습함은 점점 더 지독해졌다. 봄을 누리기도 전에 시작된 여름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가을은 시작될 듯 시작되지 않는다. 여름에 지친 기분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허나 제 아무리 끈질긴다 한들 처서매직을 지나면 여름은 조금 느슨해진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가을들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아침저녁 선선하고 습하지 않은 바람으로. 푸르게 높아진 하늘로. 일찍 열매를 맺고 떨어지는 은행으로. 그리고 반바지에 긴소매 스웨트셔츠로. 몇 가지 가을들이 날리는 수많은 잽들로부터 여름은 천천히 쓰러진다.


지속가능한 미래와 평화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생과 공존. 지루했던 여름이 밉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사랑하는 계절이기에 끝까지 그를 아껴야 한다. 그리고 가을이 짧아진 만큼 미리 좀 당겨서 넉넉히 즐기기도 해야 한다. 여름과 가을이 오락가락 하루에 다 있는 시절인만큼 여름과 가을을 한꺼번에 다 취해야 맞는 거다.라고 말하지만 그냥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다. 가을이 시작될 거 같은 느낌이 나서.


사실 한낮에는 좀 덥다. 오래 걸으면 땀이 좀 나지만, 슬쩍 찬바람이 부는 저녁이 되면 이보다 좋고, 멋진 차림은 없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며 오늘 저녁거리에 놓인 파란색 테이블에 앉아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자. 반바지에 맨투맨을 입고.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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