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생활자(조규미)
점심시간 종이 울린다. 시끌벅적한 식당을 뒤로하고 나는 오늘도 학생용 화장실로 향한다. 금쪽같은 점심시간을 할애하여 학생들이 주로 쓰는 화장실로 향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점심을 거르는 여자 아이들을 발견하여 밥을 먹이기 위해서이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 시기, 자신을 꾸미는 법에 대한 인증되지 않은 정보를 초콜릿 까먹듯 야금야금 듣고 자란 아이들은 살이 찐다는 이유로 허다하게 점심을 거른다. 그들은 식당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감시하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 아이들을 설득해 밥을 먹이고 영양 상태를 점검하는 것 또한 담임의 역할인 고로 나는 오늘도 소중한 점심시간을 할애하여 화장실에서 그들의 그림자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주제로 한다면 그것으로 책 한 권도 써내려 갈 수 있는 내가 아이들의 외모에 대한 관심과 집착,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비판하고자 펜을 든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눈에 보이는 때로 보이지 않는 혜택들을 절대로 낮추어 보지도 않는다. 나도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을 원하고 성형외과의 과장된 광고에 그것이 얼마나 허왕된 꿈이지 잘 알면서도 혹하곤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외모에 대한 고민은 이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나조차도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욕망인 것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옛날부터 그러했는데 무얼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나 소방관을 꿈꾸는 평범한 아이들 조차 연예인 같은 외모를 가지기 위해 병적으로 밥을 멀리하고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영양 불균형에 이르고 마는 사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외모 지상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일이,
삼시 세끼를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선입견과
몸에 대해 나태하다는 인식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가면생활자(조규미)
이 책은 인류가 아름다움을 돈으로 구입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달콤하고도 잔인한 상상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돈만 있다면 얼굴과 밀착되는 아름다운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 아름다움과 추함은 빈부를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아이마스크사‘의 고가의 마스크를 구입할 여력이 있는 이들은 가면 생활자가 되어 ‘정원’이라 불리는 사교의 장에 입성하여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많은 혜택을 누린다. 이야기는 진진이라는 학생이 ’ 아이마스크사‘의 베타테스터가 되면서부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간다.
마스크 한 겹을 덧씌우면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지는 근미래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두려움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매력적이고 예쁜 얼굴이 신분이 되는 시대, 우리는 과연 내면적 아름다움과 고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가치를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한 소설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도 무심코 즐거울 수 없는 것은 이미 그런 사회가 우리 주위에 펼쳐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다행히도 ‘아이마스크사’의 비리를 알아챈 주인공 진진과 오타가 그들의 비밀을 밝히고자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그들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 마주 앉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 가려져 있던 맨얼굴을 마주 본 그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독자를 위로하는 판타지 같기만 해서 아득해지기만 한다.
55 사이즈가 프리 사이즈로 불리며 공공연한 표준이 되고 조금만 살이 찌면 자기 관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도 모르겠다. 획일화된 마스크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덮는 동안 그 안에 숨어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진짜 우리를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토닥여 일으키고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주어야 할 시간이다.
맛있는 밥 한 끼를 배부르게 먹으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나는
중학생들의 모습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