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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Feb 14. 2024

과거를 이야기하는 책

반반 무 많이(김소연), 푸른 늑대의 파수꾼(김은진)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따뜻한 부뚜막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도 모르게 저 먼 이야기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 수많은 모험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옛날이야기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인기 있는 장르이다. 신화,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옛날이야기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은 역사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중학생들에게 역사 소설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역사 소설은 인류의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이나 시대를 배경 삼아 만들어진다. 누적된 시간 속에서 수도 없이 검증된 서사 구조를 이용하는 셈이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서사의 맥락이 제한되어 있는 데에서 오는 묘한 매력도 있다. 역사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전제 하에 역사 소설을 읽어 나가기 마련이다. 분명히 일정한 제약 하에서 읽는 독서인데도 그 안에서만 즐길 수 있는 가상의 영역에 독자들은 매력을 느낀다. 예를 들어 온달의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한다면 큰 줄기는 이미 정해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일 수밖에 없겠지만 온달과 평강공주 사이의 감정이나 대화, 그들 사랑을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정치적 상황, 디테일한 인간관계의 양상 등은 작가가 설정하는 상상의 영역이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큰 줄기를 역사가 대신해 주기 때문에 디테일에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다는 것도 역사 소설 쓰기의 매력 요소일 것이리라. 그 안에서 역사와 픽션 사이, 보수(유지)와 진보(변화)의 양상을 지켜보며 느끼는 재미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역사 소설은 매력이 있는 장르이지만 이를 소개할 때마다 늘 조심스러워진다. 소설은 감정의 동요를 강하게 일으키는 장르다. 아이들은 쉽게 몰입하여 읽고 주인공의 편에 가서 선다. 그렇기에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쓴 소설이나 너무 강한 자극을 주는 소설의 경우 아이들은 잘못된 사관으로 인도될 수 있고 강력하게 몰입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간접 체험은 정신적인 상흔을 남기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욕심나는 역사 소설은 너무도 많지만 순한 맛의 책을 고른다. 아이들을 다양한 시대로 초대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세계를 대신 체험하게 하고 그로 인해 경험과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것. 그렇지만 너무 강하게 색깔을 드러내거나 한쪽 편에 서지는 않는 책을 고르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이라고 한다. 강자들의 기록이며 그들이 이뤄 놓은 체계와 사관과 사회 제도를 옹호하고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어느 시대고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는 작가들이 있고(무라카미하루키 잡문집 ‘벽과 알’) 쓰여지지 않은 이들의 삶에 귀 기울여 ‘살아남은 것들’이 아닌 ‘살아남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이 작가들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꿈꾸듯 과거를 여행한다.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의 사라진 꿈을, 피워보지 못한 삶을 소설을 통해 표현해 낸 그들의 작품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역사가 아닌 소설이기에 비로소 구현되는 정의가 있다.
실제 역사에서 고개 숙였던 정의와 선량함의 힘이
‘있는 세계’가 아닌 ‘있어야 할 세계’에서 구현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소설의 진정한 매력이다.


독자들은 소설 속 세상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 부분에서 더 큰 쾌감을 얻곤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으로 인해 세상은 마침내 변할 것이다.
있어야 할 세계가 언젠가 펼쳐질 것이다.
그런 이들에 의해 세상은 한 발자국씩 진보되어 왔으므로.



1. 푸른 늑대의 파수꾼(김은진)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슬픈 역사의 한 장면에서 작가는 꿈을 꾼다. 그 속에서는 타임 슬립으로 과거로 돌아간 ‘오햇귀’가 현수인의 손을 잡고 그가 살았어야만 하는 세상으로 그녀를 데려 온다. 누군가에게는 황당한 허구일지 모르나 우리가 가진 상상력을 동원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그려 내는 것. 그로 인해 오히려 비틀린 실재 역사를 아이들로 하여금 재조명하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2. 반반 무 많이(김소연)

1950년대 6.25 전쟁부터 1990년대 IMF까지의 시대상을 10년 단위로 나누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음식들과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재구성한 김소연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역사의 흐름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잊혀지기 쉬운 힘없는 개개인의 서사를 음식을 통해 그려냈다. 이 책을 읽으면 거대한 위기 속에서도 따뜻한 한 끼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개인들의 삶과 그들의 힘에 주목하게 된다. 시대의 아픔을 만들어 내는 것은 거대한 세력과 자본이지만 그 시대를 이겨내는 것은 소소한 음식을 마련해 먹으며 한 끼 분의 따뜻함을 몸에 채우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시대에 의해 강제로 잊혀졌던 이들을 찾아 그들의 소중한 삶을 대신 살아 내는 소설을 통해 우리들은 꿈을 꾼다. 시대를 위해, 사상과 사회 체계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고유성이 존중받고 그들이 삶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의 중심에는 사회도 자본도 아닌 개개인의 꿈과 생각이 있다. 좋은 역사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그런 이들의 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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