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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전문직이니까 괜찮아


결혼 전, 나는 잘 나가던 네일리스트였다.     

24년 전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의 소개로 웅 0 싱크빅 방문 교사로 입사를 했다. 그리고 10개월간의 근무 후 퇴사를 결심했다. 엄마들과의 관계, 영업 부족으로 내 길이 아닌듯해서 조용히 나왔다. 몇 달간 백수로 지내다가 작은 무역회사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연락이 와서 면접을 봤다.     

“지향 씨?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나요?”

“네. 3일 뒤부터 출근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IMF로 취업이 되지 않았던 시절. 마침내 직장인이 되었다. 친구들 몇 명과 만나서 입사 파티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그렇게 바랐던 취업 이건만, 매일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점심때에는 사장님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낮에 실컷 놀다 꼭 저녁 퇴근할 즈음에는 열심히 일하시는 사장님 때문에 퇴근 눈치를 보았다.     

“사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응. 나는 할 일이 좀 더 있어.”

“고 부장 먼저 퇴근해.”     

라고 이야기를 하면, 밑에 직원들도 줄줄이 퇴근 준비를 했다. 드디어 나도 퇴근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받는 달콤한 급여 덕분에 3년간 꾹 참고 다녔다. 2년 반이 지날 즈음 매일 똑같은 생활 퇴근할 때마다 눈치, 잦은 야근이 싫었다. 그래서 가끔씩 우리 회사 부업을 하셨던 싱글맘 동네 미용실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원장님! 나도 원장님처럼 헤어 배워서 미용실 차릴까요? 그럼 결혼 후에도 일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이잖아요. 어때요?”

“지향 씨! 헤어 말고 요즘 네일아트가 뜨는 직업이래. 네일아트를 해봐”

“네일아트요?”

“그래 네일아트.”     

그 이야기를 듣고 종로 00 미용학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날, 마포에서 퇴근해서 종로로 달려갔다.

처음 듣는 생소한 직업. 네일아트는 조만간 뜨는 직업으로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 손재주가 없어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수업을 신청했다. 퇴근 후 저녁시간이라서 앳된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 그리고 나처럼 퇴근 후 제2의 직업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는 직장인들은 반반이었다. 수업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이론수업은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 어렵지가 않았지만, 실기수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웠다. ‘아! 이길 내 길이 아닌가? 어렵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이었지만, 5개월 카드 할부를 생각하면서 그냥 다녔다. ‘하다 보면 조금 늘겠지?’라는 마음에 꾹 참고 다녔다. 5개월을 다니고 나니 처음보다 조금 나아진 실력을 보면서 신기했다. ‘그래 나도 하다 보면 되는구나!’ 행복했다. 근무시간 짬짬이 빨강 팔리쉬를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칠해주면서 깔깔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네일아트 수업을 마치고 네일숍 입사를 준비했다. 네일리스트의 초봉은 박봉이었다. 다니던 회사 월급의 반 토막이었지만, 그동안의 노력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드디어 네일숍에 입사를 했다.     

그 당시 눈앞에 ‘돈’보다는 몇 년 후의 전문적인 네일리스트가 되어서 네일숍 주가 되자!라는 마음이 컸다. 전문적인 일이니 걱정 없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반면 초보 시절 고객님이 오는 게 두려웠다. 무서웠다. 아직은 손도 느리고, 컬러를 칠할 때마다 덜덜덜 떠는 내 손을 보았다. 몇 번의 컴플레인 덕분에 바짝 긴장하면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덜덜 떠는 내 손도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 조금씩 향상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고객이 앞에 앉아있어도 두렵지가 않았다. 어느샌가 고객과 농담도 하면서 깔깔거리면서 즐겁게 일하는 내 모습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한 우물만 10년이 넘어갈 즈음에는 박봉 때문에 그만둘까? 를 여러 번 고민하던 초보는 없었다. 어느새 친한 동생 은진이와 동업으로 샵 주가 되어있었다. 그때의 박봉은 10배의 수익으로 내게 돌아왔다. 10년 동안 버티고 노력한 것으로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하철로 출. 퇴근했던 나는 택시를 타고 출.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갈수록 나와는 적성이 맞지 않고 힘들었던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매일이 즐거웠다. 네일아트와 사랑에 빠졌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네일아트에만 시간 투자를 했다. 제2의 네일숍 오픈을 꿈꾸면 네일아트 기술에 연마했다.     

나는 내 업을 사랑했다. 네일리스트는 전문직이니까 괜찮아! 결혼 후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서 그래! 라며. 내가 네일리스트인 게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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