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고 새로오는
작년부터 그릇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는 건 초를 다투며 샀는데 파는 건 아주 느리게 팔리거나 안 팔린다. 그동안은 사진을 찍어 올리고 채팅을 하고 약속을 잡고 보내기까지의 과정이 귀찮았다. 하지만 올해를 맞이하는 내 마음이 그리고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정리하고 싶어진 것이다. 물건도 사람도 다 정리하고 싶어졌다. 원래 정리를 좋아하는 내가 이사를 자꾸 다니다 보니 단출하고 소박한 짐들만 남은 우리 집인데 그중 가장 복잡하고 맥시멀 한 것이 바로 내가 모은 빈티지그릇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이 그릇들을 보면 마음이 든든했는데 작년 가을쯤부터 1년 정도 잘 안 쓰게 된 그릇들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색감과 형태의 그릇들을 안 쓰고 수납장에 넣어 놓기만 한 상태로 시간이 흐르니 하나씩 꺼내 당근에 팔기 시작했다. 뭐든지 개수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드디어 그릇까지 닿았다.
먼저 무엇을 팔 것인가 정하기 위해 몇몇 후보들을 꺼내 며칠 동안 쓴다. 그렇게 몇 번을 나왔다 들어갔다 하다 보면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그릇들이 있다. 마음이 변했고 생활이 변했다. 그러면 돌이켜 보면서 묻고 묻는다. 이 그릇을 팔아서 돈이 생기는 게 낫겠어? 이제 다시는 이 그릇을 구하지 못한다고 해도 후회 없겠어? 그런 다음 파는 이유가 명확한 것들을 중고장터에 올리고 세상에 내놓는다. 처음엔 정리 자체에 꽂혀서 가격을 계속 낮춰가며 파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런데 팔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생기는 거다. 그럴 땐 '사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야 한다'는 당근 고수 엄마 말씀을 떠올렸다. 그릇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오래된 그릇을 사지는 않지. 그러니 누가 샀더라도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이 샀을 테고 나와는 인연이 다했지만 다른 인연이 시작되어서 좋은 일이지. 그렇게 몇 개를 팔았고 통장엔 돈이 들어왔다. 오래된 그릇이 예쁘고 좋아서 모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이렇게 팔릴 수 있다니. 그러려고 모은 건 아니었지만 몇 년을 나를 기쁘게 해 주고 이렇게 돈까지 남기고 떠나간 빈티지 그릇들에게 고마웠다. 새 주인 분들도 그릇과 함께 행복한 시간 가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그릇시세를 파악하려고 자꾸만 중고장터를 들락거리다 보니 또 그릇을 사고 있는 거다. 판매리스트보다 위시리스트가 더 늘어나고 있다. 오늘은 뭔가 새로운 게 나오지 않았나 하면서 마치 그릇을 처음 모을 때 사람으로 돌아가 중고장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정리를 해서 빈 공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 공간을 새로운 주제로 채우고 있다. 그동안은 트리오 한 조씩 모았으니 이제 몇 개 라인만 추려서 단체로 모아볼까? 컵과 접시만 모았으니 슈가볼이나 저그 또는 화병을 모아볼까?
분명 시작은 그릇 정리였고 수집생활의 가지치기였고 물건 관리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는 거였는데 하다 보니 새로운 그릇으로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과거의 사랑이 떠나가고 새로운 사랑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