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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Jul 16. 2024

수영장 아줌마들은 개그 폭탄

내향형 아줌마는 그저 엿듣고, 뒤돌아 웃기만 합니다


오전시간 수영장 탈의실은 활기차다.


봐도 수영장 n년차 고참 아줌마들은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모르겠다.

청소 여사님과도 막역한 관계다.


머리를 말리면서도, 옷을 입으면서도

형님, 언니 하며

토크 토크를 끊임없이 이어나간다.


나는 수영장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혼자 조용히 왔다갔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너무나 웃기다.


대화를 엿듣는 재미는 개꿀잼이다.

개꿀잼인데 혼자만 듣고 낄낄대기에는 이 이야기들이 너무나 아깝다. 


오전반 수영장 탈의실의 에피소드는 매일 생성된다.


그래서 즐겁고, 고맙다.

수영하고 씻어서 개운하고 좋은데

딱히 에너지를 쓰지 않고 귀만 열고 있어도

웃음 치료를 받게 해주시니,

목소리 크고 활기찬 수영장 아줌마들은 나의 치료사들이다.


오늘은 수영장에서 엿듣고 피식 거린 이야기들을

그들 허락 없이 적어보겠다.


들은 이야기도 저작권이 있나요?




1. 집에 빨리 가야 하는 이유


<할머니 두 분, 화장대 앞에 알몸으로 머리 말리는 중>

나 오늘 집에 빨리 가야 돼.

- 왜?

(잘 안들림)'OO' 때문에

뭐? 뭐때문에?

된장!!!!!!  된장!  

된장때문에 집에 빨리 가야 돼.

된장? 된장이 왜?

아유, OO이 언니가 집에 된장을 보낸대잖아. 된장 받으러 가야지.

아~ 그래. 된장이면 집에 빨리 가야지! 빨리가 어여!



된장이 저렇게 중요하다니ㅋㅋ



2. 기존세 어머니는 협박쟁이


<40대로 추정되는 여성 사물함 앞에서 옷 입는 중. 전화 옴.>


응 OO아, 왜 전화했어. (딸인듯. 시작부터 퉁명스러운 말투, 안 반가운 목소리)

뭐? 학원 안 가고 싶다고?

안 돼. 되겠니?

학원에 안 가고 싶다는 게 말이 되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뭐? 학원에 왜 가야 하냐구? 그걸 몰라?

(점점 격앙되어 탈의실 전체에 목소리 쩌렁쩌렁 다 들리는 중)


첫째. 너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안하기 때문이야.

둘째. 너는 공부를 안 함에도 불구하고 책도 안보기 때문이야.

셋째. 그래서 너는 책 읽는 학원에 가는거야. (셋째에서 목소리 진짜 큼. 울화통 폭발시킴.)

학생인데 공부도 안 하고 책도 안 읽으니 책이라고 읽으라고 학원에 가는거야, 알겠니?


너 오늘 안간다고 하면

일주일 내내 가도록 학원 뺑뺑이 돌려버릴거야!

(학원을 안 가고 싶다는 애한테, 학원을 안 가면 학원을 더 보내버릴거라니! 어머니, 거 참 너무한거 아니오!)


뭐? 라면? 그래, 라면 끓여줄게.

학원 갔다오면 라면 끊여줄게.

안 간다구? 그럼 라면도 없어.

그래도 안 간다구?

그럼 너도 너 할일 안 하니까 엄마도 일 안 하고 돈도 안 벌면 되겠네.

엄마도 회사 그만둔다. 됐니?

시끄러. 끊고 학원가.

셋 세면 끊는다!

하나. 둘. 셋! (끊음)



논리와 협박으로 무장한 어머니는

학원가기 싫다는 딸의 전화를 매정하게 끊어버렸다.

딸은 책읽는 학원에 가서 책을 재미있게, 많이 읽었을까?




3. 아, 할아버지 쫌!!


<백발의 할머니 사물함 앞에서 옷 입는 중. 전화 받음>


어. 여보. 왜. (다정함)

아. 그래 옥수수.  그거 내가 말한다는걸.

그거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돼.

(작은 소리로 뭐라 뭐라 말하심. 넘나 소곤소곤해서 못 들음)

(그러다 갑자기 머리 막 흔들면서 큰소리 급발진)

아니!!!! 터진다고 다 터져@!!!

더 돌리면 옥수수 다 터진다고!!!!

2분만!!!  2분마안!!@

으이그 정말, 끊어!



할아버지.

옥수수 2분 이상 돌리면 다 터진다잖아요.

할머니가

터진다, 다 터져!!  

소리치셔서

수영장에서 폭탄 터지는 줄 알았쟈나요. ㅋㅋ

할머니 말씀 좀 귀 기울여 들으세요.



느낀점 : 남자들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자 말을 잘 안 듣는다.




수영장 에피소드, 저만 웃긴가요?


파워 EEEEEE 중장년 여성들이 가득한 오전반 수영장은

벌거벗은 인간극장 그 자체 입니다.


더 열심히 엿듣고 모아 올게요.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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