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있습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ㅋㅋ>
넘쳐나는 <인사이드 아웃 2> 후기에 하나 더 얹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후기는 아니고, 불만 가득 딴지 리뷰.
이번에는 사춘기 이야기라고 했다.
<인사이드 아웃 1>이 워낙 훌륭했기에, 사춘기 이야기를 영화에서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궁금했다. 맘카페에는 찡해서 울었다는 후기가 여러 건 올라왔다. 중학교 1학년인 우리 딸과 같이 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같이 보러 가자고 먼저 말하기도 전에 친구와 보러 간다고 했다.
어? 우리 다 같이 보고 너의 사춘기와 정신상태 대해 토론을 좀 해보려고 했는디?
우짠디야.
딸이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에 자기 같은 애가 나온다면서,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오호, 그래? 잘됐다. 그래서 딸은 2회 차, 아들과 우리 부부는 1회 차 관람을 하러 갔다.
사춘기 버튼이 눌러지고, 감정들이 고장 났다. 아들이 "누나다, 누나! ㅋㅋㅋ"하며 낄낄댔고, 딸은 동생 귀에 귓속말로 "닥쳐"를 갈겼다.
불안이가 새로운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이었겠지만, 나는 따분이가 지금 세대의 사춘기의 표본 아닌가 싶었다. 우리 부모들은, 불안이는 참을 수 있어도 하루종일 휴대폰만 쥐고 누워있는 따분이는 못 참겠다.
저것 봐라, 휴대폰에 목숨 거는 거 봐라.
남의 일에는 관심도 없다가, 지 휴대폰 없어지니까 길길이 날뛰는 거 봐라.
쟤 폰에 스크린 타임 제대로 걸린 거 맞아? 비번 쟤가 푼 거 아니야?
어머! 쟤가 제일 문제다, 쟤를 좀 어떻게 해봐!!
영화를 보고 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버렸다. 어디서 울었다는 건지 모르겠다.
가장 공감되는 장면은 사춘기 버튼이 눌릴 때도 아니었고, 불안이가 토네이도를 일으키던 장면도 아니었다. 어디였냐 하면 라일리가 가위로 자기 앞머리를 자르는 장면이었다. 우리 집에서 매일 보는 광경이었다. 세면대에 대고 자르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거기에서 앞머리를 잘라댄다. 그럴 거면 미용실을 왜 가냐? 자기 마음대로 머리를 맨날 자르는데. (덕분에 세면대 하수구 막혀서 10만원 주고 뚫었다.)
어쨌든, 영화는 '아주 별로다'는 아니었는데, '엄청 감동'은 아니었다.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했었나? 아닌데.
이 찝찝함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지났다. 결론을 낼 수 있었다.
현실세계와의 괴리감.
그것이 답이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나 장기기억, 단기기억, 신념과 자아의 형성 이런 심리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진짜 '현실에서의 사춘기 여학생들의 친구 관계'에 대한 문제.
자,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저 머릿속의 대카오스 상태가 라일리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이 다니는 친구 둘이면 둘, 셋이면 셋, n명이면 n명이 저런 불균형 엉망진창 상태를 갖고 친구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야 두 시간 안에 결말을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라일리 혼자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받아주고 갈등이 눈 녹듯이 풀리는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사춘기 인간이 자기 잘못을 깨닫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자아 성찰'이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쩌다 잘못을 깨달았다 치자.(하늘이 도와줘야 가능) 실제로 '사과'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사과를 행하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요즘 아이들은 그 용기를 낼 용기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자기가 미안한 일이 있어도 사과하기가 어려워 사과대신 손절을 택한다. 또, 상대방 입장에서 친구가 사과를 해도 흔쾌히 받아주는 일도 흔하지 않다. 사과도 고백처럼 타이밍이라, 상대방이 받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 때 해야 한다. 사과든 고백이든 그 타이밍을 맞추기란 어른도 쉽지 않다. 그래서 사과를 받는 입장에서도, 사과를 거절하고 손절을 하거나, 심한 경우 '내가 피해자다' 싶으면 학폭을 건다.
실제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3명 사이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라일리가 잘 나가는 선배 밑에 붙어서 친한 친구들은 나 몰라라 쌩깐다.
친구들은 영문도 모르고 당한다. '쟤, 왜 저래'싶다. 라일리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후, '구관이 명관이다'의 가치를 느끼고 라일리가 본인의 잘못을 깨닫는다.
라일리가 친구들에게 "아임쏘리"라고 사과했다.
라고 했을 경우에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1. 사과를 친구들이 받아주고,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경우
영화와 같은 하하 호호 눈물 글썽 엔딩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상황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도 다 같이 불안이에게 장악당한 사춘기들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사과를 했을 경우에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말은 다음과 같다.
"미안하다면 다냐?"
"이게 사과냐?"
"사과하면 끝난다고 생각해?"
사과를 바로 받아주고 화해하면, 호구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춘기 여학생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사실 쿨병 여왕벌과 호구들과의 조합이 상당히 많다. 여왕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남 기분 다 상하게 해 놓고 사과도 쿨하게 한다. 호구는 기분은 매번 상하는데 여왕벌이 미안하다고 하니 사과는 받는다. 화해하고 지내기는 해도 동등한 관계는 아니라 이 호구들이 자아가 조금 더 성숙하게 되면 여왕벌과는 친구관계가 끊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내 결론은 이런 해피엔딩은 진짜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2. 쏘리를 친구들이 받아줬으나, 건성으로 받아 준 경우
이 경우는 생각을 못했는데, 영화 같은 해피엔딩이 현실에서 가능하냐에 대해 딸아이와 토론을 하다가 딸이 말해준 경우이다. 이 경우는 친구가 사과하는데 안 받아주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으니 일단 받아는 주는데, 감정의 앙금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으므로 3명이 같이 다니지만 2 : 1 로 다니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헐! 진짜 무섭지 않은가!) 두 명이 짜고 한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한 팀이 되어 라일리에 해당하는 한 명을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외되는 한 명은 겉으로는 같이 놀지만, 매일 표현할 수도, 시원하게 따질 수도 없는 미묘한 서운한 감정이 쌓이게 되어 그 무리에서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워메. 동물적일세. 그래서 여자끼리 홀수로는 놀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닌가 보다.
3. 친구 둘 다 '이제 와서 왜 사과야? 흥!' 하는 경우
이 경우가 가장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사과를 했지만 두 친구들이 함께 안 받아주는 경우는 라일리 입장에서는 진짜 힘든 일이다. 같은 학교, 학급이면 라일리는 바로 다른 친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형성되어 있는 여학생들 무리에서 나를 받아줄 새로운 무리를 찾는 것도 힘들거니와 그 무리에 새로 편입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가 심각해지면 정말로 답 없는 등교거부로 이어진다. 학업이나 학폭으로 인한 등교거부는 해결할 방법이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런 친구관계로 인한 등교거부는 정말 해결하기 힘들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학폭도 아니니 학급교체나 징계를 할 수도 없고, 친구 관계 말고는 문제도 없는데 이사를 가거나 전학을 갈 수도 없다. 그나마 라일리처럼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경우는 다른 학교에 가버리면 그만이다. 가끔 만나면 인사만 어색하게 하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 뿐.
4. 한 명은 받아주자, 한 명은 받아주지 말자 하는 경우
친구 둘이서 분열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도 흔하다. 보통 둘 중에 한 명이 조금 더 착한 경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래도 사과하는데 받아주자'와 '우리가 당한 건 생각 안 하냐'가 맞붙는 경우이다. 이 논쟁이 계속되는 경우 덜 착한 한 명이 더 착한 한 명에게 서운함을 느껴서 이 둘도 서먹하게 된다. 덜 착한 한 명의 주요 대사는 '너만 착한 척하냐, 나만 나쁜 사람 만들 거냐'가 레퍼토리이다. 이 드센 친구는 '나는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없으니, 너는 받아주고 걔랑 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라고 쏘아붙이고 가버린다. 그러면 나머지 한 명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정신적 혼란 짜부 상태가 된다. 이 어정쩡하게 착한 짜부 인간이 가장 불쌍하다. 제일 마음 여리고 착하기는 한데 여기저기서 좋은 소리도 못 듣고 본인이 가장 괴롭다. 이 경우, 피해자는 세 명 모두이다. 모두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 그래도 최종 승자는 가장 드센 친구이다. 혼자서도 알아서 잘 놀거나, 빨리 다른 친구를 찾아서 멀쩡하게 잘 산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미친다. 현실에서 영화 같은 엔딩은 없다.
딸 가진 부모로서 우리 아이는 저런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두가 괴로운 사춘기 소녀들의 미묘한 심리다툼. 그래도 저런 과정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겪고, 손절을 쳐보기도 하고, 당해 보기도 하는 과정이 사춘기의 과업인 듯하다. 슬프지만 어른이 되면 싸우기도 힘드므로, 싸움도 싸울 수 있을 때 많이 해봐야 된다. 아니면 화만 내는 사람이 되거나, 참기만 하는 사람이 되니까.
그리고 교사로서 한마디 하자면, 마음대로 학교에 들어가서 선생님 책상 뒤진 행동은 왜 벌을 받지 않는가?
사춘기에 문구점에서 볼펜 하나 훔칠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 신발주머니에 소시지 하나 몰래 넣어올 수도 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6개 사면서 5개만 찍고 계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종류의 것이지 않나? 학교에 밤중에 무단침입하여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고, 학생 선발과 관련된 선생님의 기록을 훔쳐보는 것은 살짝 범법행위 같은데, 아무에게도 걸리지 않고 혼자만 저렇게 아는 비밀로 내버려두고 아름답게 영화가 끝난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사춘기의 치기? 실수? 호기심? 이런 것으로 끝난다고?
흠. 이 부분, 아주 맘에 안 들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밤에 몰래 학교 기어들어가서 수행평가 시험지 몰래 본거나 똑같은 건데, 이것이 밝혀진다면 라일리는 선도위원회로 넘어가서 최소 강제전학이나 퇴학처분은 나올 정도 되지 않을까. 뉴스 기사에 나오고도 남을 일이다. 또한, 그 학교는 보안 책임을 물어 교무부장부터 행정실장, 교장, 교감에다가 그 실 최종 퇴청자까지 싹 다 조사해서 보안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날 최종퇴청자, 보안점검표 똑바로 썼는지 확인해야 한다. 저렇게 보안이 허술해서야.
웃자고 한 말에, 너무 다큐로 받는 건가요. ㅋㅋ
그럼 죄송.ㅋㅋ
우리가 <인사이드 아웃>을 두 편이나 보고 아이의 성장과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아이들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모편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무슨 벼슬마냥, 고장 난 감정상태를 부모가 당연히 다 받아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받아주는 것도 한번 두 번이지, 부모도 돌기 직전이다. 아이들도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부모도 마음이 넓지만은 않으니, 니들도 부모를 이해해라~~~ 제발 좀!!!'이라는 교훈을 주도록 영화 하나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참회를 하며 눈물을 질질 흘리도록.
부모 머릿속에는 '작살이'을 하나 등장시켜줬으면 한다. 확! 그냥 다 짜증 나게 할 때마다 시원하게 다 줘패서 작살내버리게. 물론 말려주는, '잡혀가'같은 캐릭터를 옆에 하나 박아줘야겠지.
(이 이야기를 하니, 누나 사춘기를 vip석에서 직관 중인 저희 아들이 부모한테 제일 필요한 캐릭터는 '참기이'라고 하네요! 참는 것이 가장 필요하대요. 똑똑하지요?ㅋㅋ)
픽사 관계자님!
<인사이드 아웃> 또 만드실 거면, 저를 스토리 작가로 불러주세요.
사춘기 이야기로 10편도 가능해요.
아이디어, 에피소드 무한제공 쌉가능입니다!
그래도, 온 가족 모두가 볼 수 있는 이런 영화는 대환영이다.
4명이 쪼롬히 같이 앉아서 비싼 팝콘 먹으면서 즐겁게 반나절 보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