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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Jun 24. 2024

06. 직장인 우울증 환자의 고충에 대하여(2)

진단서만 있으면 됐는데, 진짜로 우울증

 두 번째 편이다.


 앞의 글에서나 지금의 글에서나 핵심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 직장인은 더 힘들다는 것이고 그 아픈 것이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면 그것은 두 배, 세 배 더 힘들다는 것이다. 어쩌면 직장 내에서의 거취 문제 때문에 치료나 회복에 전념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남은 이야기를 풀어본다.



1. 관리자(상사)와의 소통 문제 : 나의 거취로, 이렇게 관리자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하다니


 실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다들 나에게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전화하고, 문자하고, 카톡을 했다. 나도 내 상태를 예측할 수 없는데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결정해야 된다는 내용의 대화를 학년부장, 교감, 교장 선생님과 계속 나눠야 했다. 반을 비워둘 수도 없고 시험이 코 앞인데 보강만 계속하다가는 아이들 진도도 못 나가고 시험 보게 생겼으니 학교의 급한 사정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어느 정도의 진단서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나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병가를 60일 쓰고 난 이후에 학교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도 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천천히 생각할 수가 없다며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학교에서는 계속 연락이 왔다.


 그 당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상태였다.

 겨우 아침에 눈을 떠서 햇반에다 계란에 햄을 아무렇게나 구워서 아이들 밥을 주고 학교에 보내놓으면 바로 침대로 가서 누웠다. 잠이 들었다 전화 소리에 깼다. 수신 화면은 어김없이 'OOO학년부장님' 또는 'OOO 교감 선생님' 또는 'OOO 교장 선생님'이었다. 혹시 안 좋은 소식이 있나 심장이 덜컹하면서도 전화는 너무 받기 싫은데 안 받을 수도 없고 교장, 교감선생님 전화를 누워서 받을 수도 없으니 억지로 몸을 일으켜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답도 없는 대화를 나누다 '생각해 보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는 것이 병가기간 동안의 일이었다.


 평소에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랑 개인적으로 통화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어떨 때는 전화번호 저장도 안 해놓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내가 관리자와 통화를 많이 해야 하다니. 괴로웠다.


 그래도 또 이와 관련해서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내 상황이 공유가 되고 있어서 나의 상태가 이해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워낙 위중한 상황이었던지라 대부분의 상황은 파악이 되어 있던 상태였다. 윗사람들이 내가 평소 겪어왔던 어려움에 대한 히스토리를 모른다면, 갑자기 내가 뻗어나가서 병가나 병휴직을 쓰겠다고 하면 이해를 못 받았을 것이다. 나는 일하면서 징징대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느 선을 넘어가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동료나 윗사람들과 나의 어려움에 대해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려우면, 힘들면, 꼭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해결 못 하는 것들에 대한 대책을 더 넓은 시각으로 생각해 보고, 해결하라고 있는 사람이 윗사람이다.


 둘째, 내가 주요 대화를 나누었던 세 분은 내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 주셨다.

 어려운 학교의 상황에서도 아무도 나를 탓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선생님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해 주셨다. 속으로는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감사했다. 심지어 교장선생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선생님 자신만 생각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어렵고 차갑기만 했던 교장선생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니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마웠다. 예전에 뒤에서 욕 많이 했었는데 마음속으로 사과드리고 평생 까방권을 드리기로 했다. 또라이 같은 관리자가 아니라, 이것도 복이다.


 셋째, 관리자(상사)와의 갈등이 아닌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상사와의 갈등(괴롭힘, 갑질, 부당한 지시 등)으로 우울증이 걸렸는데, 그 상사와 나의 거취를 상담해야 하고 소통해야 한다면, 정말 백배 괴로웠을 것이다. 그 상황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2. 내 작고 소중한 월급


 여기에서 박봉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입 아프니까.....) 병가는 급여의 100%, 병휴직은 각종 수당을 제외한 급여의 70%를 지급해 준다. 일하다가 우울증에 걸려버린 것도 짜증 나는데, 월급도 못 받고 병휴직 기간은 경력 인정도 안 해준다. 진짜 작고 소중해서 귀엽기까지 한 월급을 못 받는 것, 호봉 승급 기간이 늦춰지는 것, 그 늦춰진 호봉 승급이 평생 내 귀여운 월급에 복리로 지속적으로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정말 짜증이 났다. 심지어 휴직 기간 동안은 이 학교에서의 실근무기간도 못 채우니 (지금이라도 당장 이동하고 싶은) 학교를 이동할 때도 제약을 받고, 또 일반 대기업에 비하자면 심각하게 귀여운 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니 그런 것들이 억울함을 더 가중시켰다.


 그러나.

 진단서에 한참 집착하고 있을 어느 날, 나는 나의 우울증을 빨리 떨치려는 노력보다 진단서에 더 집착하며 불안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진단서에 왜 집착을 하고 있는가? 휴직을 하기 위한 서류 때문이었다. 진단서는 왜 필요한가? 병휴직을 위해서는 진단서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병휴직을 왜 해야 하는가? 70%가 나오는 월급 때문인가? 만약, 70%의 병휴직에 대한 급여를 포기한다면 나는 진단서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내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지금 시기를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의사가 증명 안 해주면 알아서 내가 쉬면 되는 일이었다. 병가 이전, 담임반의 교실을 지나치는 것조차 힘들어서 아래층이나 위층의 더 먼 길로 돌아서 다른 반 수업을 가곤 했었다. 불안감에 출퇴근 경로도 더 먼 길로 모두 바꿔 돌아가고, 퇴근할 때 교무실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5분도 되지 않는 그 잠깐도 뛰어갔었다. 우리 반 수업이 있는 날에는 끊임없이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키고 들어가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학생들과 눈도 못 마주치고 수업을 하던 상황이었다.


 다시 학교로 간다면,

 이제는 불안을 낮추고 가슴 두근거림을 완화시켜 주는 약이 내 손에 있으니, 약을 먹고 나를 진정시켜 가면서 이 짓을 해야 하겠는가?그것이 내가 이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방법인가? 나를 더 강해져라 채찍질하여 일터에 복귀해야 하는가? 복귀해도 나는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수행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먹으면서 억지로 안정하고, 억지로 잠을 자면서 근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직장을 다니는 것은 지옥으로의 출퇴근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나는 파괴되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올해는 도저히 복귀할 수 없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 그거 뭐, 안 받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애들 학원비에 쪼달리며 아무렇게나 사는 거, 해리포터가 우울증 아니라고 진단서 안 떼준다고 하면, 걍 때려치우고 육아휴직 1년 더 했다고 생각하고 무급으로 아무 휴직이나 할란다'


 막무가내로 생각하니 편했다.

 그렇다면 돈이고 뭐고 상관없다. 남편도 돈 벌고, 돈 없으면 마이너스 통장 더 쓰면 되고.

 


 이 글을 읽는 나와 같은 상황의 동지들께 말씀드린다.

 다 알고 있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정신이 망가지면서 지옥으로 출근하지 마세요.

 소중한 월급보다 더 자신의 마음을 더 소중히 지키시길 바랍니다.

 




3. 나는 다시 일터로 갈 수 있을까?


 다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힘들 것 같다. 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휴직을 연장하기 위해 잠깐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학교는 내가 활기차고 행복하게 근무하던 학교가 아니었다. 모든 공간이 무섭고 힘들었다. 우리 학교의 교복 입은 학생을 단 한 명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만나면 반가울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단 한 명의 동료 선생님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예전처럼 근황을 묻고 대답하면서 편하게 학교에서 대화할 수 없었다.


 학교는 그래도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어떻게든 이동할 방법을 알아보려고 한다.

 단, 조금 더 쉬고. 학교를 더 잊는 물리적 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교직의 장점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모른다.

 이동과 교체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직업. 나를 대체할 자원이 그나마 많이 있는 직업.

 일반 회사원은 바늘구멍을 뚫고 치열하게 들어간 직장에서 우울증으로 휴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잠깐 육아휴직 하는 것도 팀원들한테 눈치 보이고, 휴직할 때 대체인력도 구하기 힘들다던데 얼마나 더 힘들까? 직장에서 쉬기까지에 더 힘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꼭 본인을 지키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길 응원한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도, 수업시간에 어려운 문제를 칠판 한가득 풀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온몸에 생기가 올라오던 나였다. 그런 나를 잃었다. 수학은 꼴도 보기 싫다.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년에는 학생들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며 희열을 느낄 있을까?

 다시, 담임을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진심되게 상담할 수 있을까?



 일단은, 널브러져 있어 보자.

 널브러져 있다 보면, 돌아오든지 말든지.

 안 돌아오면 그만 두지 뭐.








다음 이야기 : 우울증으로의 침잠 : 보통 사람의 우울증 체험기

+ 이게 진짜 우울증인 건가 싶다

+ 오감 상실: 가장 큰 데미지는 미각 상실

+ 시간 감각 파괴 : 오늘이 어젠지 내일인지 모르겠다

+ 위생 관념 붕괴 : 씻어라, 좀!

+ 예기 불안 : 안 일어난 일 걱정하지 말라고? 걱정이 되는데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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