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그 감정에 다시 휩싸이기 싫고, 깊고 어두웠던 감정들을 글로는 쓸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나의 '우울증세'를 서술하는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나의 우울증세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글이 아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우울증이라는 괴물에 압도당했을 때 느껴졌던 당황스러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나의 감정에 깊이 빠져들었고, 내 마음을 관찰했고 생각을 따라갔다.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고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는지 하루종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갑자기 한두 달 만에 사람이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의 기둥이 무너졌다.
이것은 나의 무너졌던 기둥에 대한 기록이다.
1. 모든 것의 시작은 무기력으로부터
일단, 무기력하다. 힘이 없다. 의욕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말과 행동이 느리고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 눈에서 총기가 없어지고 남과의 대화에서도 잘 집중할 수 없다. 내가 집중을 못하는 정신상태가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대화를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경우 공황발작이 오지도 않았고 자해나 자살의 충동도 없었기 때문에 우울증의 가장 큰 증상이라고 한다면 무기력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집 안에서조차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다. 어떤 순간에는 휴대폰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손과 몸에 힘이 없었다.
인생에서 이런 무기력 상태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힘을 내야 힘이 생기는 건지, 힘이 없어서 힘을 못 내는 건지 앞뒤 분간이 되지 않았다. 슬프거나 우울하다는 감정도 있었지만 무기력에 지배당해 버린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2. 감각 파괴 : 가장 큰 데미지는 미각 상실
촉각이나 시각 같은 것들은 살아있었으니 오각을 상실했다고는 쓸 수 없으나 전체적인 감각은 무뎌졌다. 오감을 상실했다기보다는 감각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표현이맞다.
가장 나를 당황시킨 것은 미각의 상실이었다.
나는 엄청난 미식가나 대식가는 아니었다. 초딩입맛이긴 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맛있게 먹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음식에 대한 식욕이 떨어졌고 하루종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만 카페인 중독자로서 커피는 마시고 싶었는데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이들이 남기고 간 맨밥을 몇 숟가락 집어넣는 정도였다. 모든 음식이 맛이 없었다. 맛이 없는 게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無'였다.
젖은 낙엽처럼 집에 붙어 있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 불러냈다.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없는 시간을 쪼개서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씻고 옷 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나도 집에만 계속 있다가는 더 심해질 것 같아 누구라도 불러주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나갔다. 가장 가라앉아 있었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와 소고기 집을 갔다. 갈빗살을 시켰다. 고기 굽는 장인이라며 친구가 고기를 구웠다. 다 익은 고기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 웩, 구역질이 올라왔다. 분명히 맛있어 보였는데, 맛있겠다 하고 입에 넣었는데 역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해버렸다.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는 친구에게 토할 것 같다고 못 먹겠다고 말할 수 없어 역겨운 걸 참고 천천히 먹기는 먹었다.
소고기 갈빗살이 역겹기는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3. 시간 감각 파괴 :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모르겠다.
시간 감각이 파괴되었다. 하루하루는 가는데 진심으로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인지하며 살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자다 깨면, 낮인지 새벽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몽롱한 상태로 깼다. 낮잠도 깨고 밤잠도 깼기 때문에 낮이든 밤이든 지금이 언제인지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휴대폰을 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날짜를 확인하고, 캘린더를 열어 다시 오늘의 날짜가 몇 월의 몇 주 무슨 요일에 위치해 있는지 달력에서 확인하고 나서야, '오늘'과 '지금'을 인식할 수 있었다.
매일 걱정과 고민과 불안에서 살다 보니 하루의 시간은 순서대로 흘러가도 'day'라는 하루는 위치가 마구 뒤섞여 지나간 느낌이었다. 살짝 비현실적 느낌의 시간감각이 느껴졌다. 할머니들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모르겠다'하는 이야기들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정신병자가 될 거 같아 스터디플래너에 내가 살고 있는 날을 기록하기로 했다. 스터디플래너를 한 달 넘게 적고서야 '오늘'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플래너에 "2024년 5월 OO일, O요일- 오늘 OO이 영어학원 가는 날, △△이는 학교에서 3시에 오는 날, 내일은 O요일 △△이 독서록 챙겨가야 되는 날"이라고 하루 일과와 할 일을 적어놓으면서 시작해야 오늘을 정신 놓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 작업을 하지 않으면 시간의 방에 갇혀 어둠 속에 사는 히키코모리가 될 것 같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체험했다.
중력이 아니라 우울증이 나의 시공간을 뒤틀었다. 당황스러웠다.
4. 위생 관념 붕괴 : 씻어라, 좀!
욕실로 갈 힘이 없었다. 밖에 나갈 일도 없으니 씻을 일도 없었다. 머리를 감고 긴 머리를 말리려면 힘차게 수건으로 물기를 타타타탁 닦아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그래서 더러워졌다.
더러운 걸 알겠는데 씻을 힘이 없었다. 그래서 얼굴에는 뾰루지가 올라오고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거칠어졌으며 머리는 떡지게 되었다. 그래서 얼굴이 더 못생겨 보였다. 팔자주름도 더 도드라져 보였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보아도 웃는 모습은 어색할 뿐이었다. 그래서 거울이 또 보기가 싫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거울을 보다가 '아아악!' 하면서 거울에 뭘 집어던져서 깨는 장면이 있는데 왜 그런 연출이 나오는지 알게 되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이제까지의 내 모습이 아니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정신이 있어야 준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건강하지 않은 정신으로는 더러운 신체만 준비된다.
안 씻으면 찝찝함은 느껴졌었는데 움직이기 싫다는 생각이 찝찝함을 이겨내다니.
이것도 당황스러웠다.
5. 안 일어난 일 걱정하지 말라고? 걱정이 되는데 어떡해!
공포스러웠다. 길을 걷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안 좋은 상상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다니는 차가 지나가면 나에게로 돌진할 것 같았다. 횡단보도에 아기와 엄마가 함께 서 있으면 아기가 빨간불에 막 튀어 나갈 것 같았다. 상가 건물에 교복 입은 아이들이 3-4층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이야기하며 모여있는 것을 보면 그 학생들이 밑으로 투신할 것만 같았다. 걷기라도 해 보자 마음먹고 나가면 감당할 수 없는 시청각 자극이 입력되었다. 그것은 일어나지도 않는 사고와 상상으로 출력되어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때는 운전하기도 힘들었다. 운전해서 가고 있으면 인도에서 길 가던 사람들이 나에게 막 뛰어들 것 같았고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나에게로 돌진할 것 같았다. 그래서 되도록 또 집에 있게 되었다.
이런 부정적 생각들이 관찰되어 정상이 아닌 것을 계속 인지하게 되어 또 당황스러웠다.
여기까지가 깊은 우울감을 처음 맞이하게 되어 당황스러웠던 나의 기록이다.
감각이 무너졌다고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의 감정과 기분이 더 날카롭게 관찰되어 괴로웠다.
걱정과 불안에서 살고 있는 지금 이 상태도 걱정되었지만 앞으로 이런 정신상태가 끝나지 않을까 봐, 나아지지 않을까 봐, 말로만 듣던 공황증세가 나를 찾아올까 봐 그런 걱정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지만 나는 우울증에 정복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억울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 무기력을 조금이라도 떨칠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보겠다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