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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Jun 23. 2024

우울증인데 직장이 있어서 다행이면서도

직장인 우울증 환자의 고충에 대하여 (1)

 나는 직장인이며 공무원이며 교사이다. 

직장인 우울증 환자의 고충지에 대하여(1)직장인 우울증 환자의 고충에 대하여(1)

 

 나의 우울증은 학교에서의 업무로 인한 것이었으므로, 우울증과 불안증세를 치료하려면 그 원인이 되는 학교에서의 분리가 필요했다. 나는 교직에 있어 일반 사기업의 사정과는 다를 수 있지만 나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이들은 여러 고통과 고민사항들이 겹치리라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직장에서의 업무에서 기인한 우울증에 대처하는 곤란함과 어려움을 담으려고 한다. 




1. 진단서 때문에 미치겠다, 정말. 


 응급실, 정신건강의학과를 전전하며 겨우 받아낸 진단서로 병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의 병가 사용은 진단서 없는 병가는 최대 7일, 그 이후 질병에 대한 요양이나 치료기간을 명시한 진단서를 첨부하여 최대 60일까지 가능하다. 

 나의 경우는 병가를 들어가기 전에는 정신적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트라우마 등을 짧은 기간에 증명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것이 가장 힘들고 고달팠고 괴로웠다. 그전에 팁을 얻어 보겠다고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그런 것들은 소용이 없고, 병가나 병휴직을 승인하기 위한 서류는 "치료기간이 명시된 진단서"가 필요하다. 


 해리포터 선생님이 진단서를 쉽게 안 떼준다 했고, 다이아 선생님은 1달짜리만 끊어준다 하다가 6개월인가 안 나으면 대학병원으로 보내버린다고 했으니 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날로 커져갔다.


 한의원, 치과에서 발급한 진단서도 가능하다. 이빨은 멀쩡하니 정신적 문제를 진료하는 한의원을 찾아보았다. 정신건강을 주로 다루는 한의원 홈페이지에 가보니 아로마나 침, 한약 등으로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했다. 진단서를 잘 떼주나 검색해 보았다. 그런 후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리뷰 평가에 "진단서를 잘 떼줘요." 이런 게 나오겠는가? 만약 내가 그 병원을 가서 진단서를 길게 발급받았다 해도 그에 대한 후기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또 정말 싫은 건 거기 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오게 되었는지 다시 처음부터, 그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시 처음부터. 다른 걸 다 떠나서 새로운 병원에 가서 히스토리를 다시 쌓아야 한다는 점이 가기도 전에 너무 지쳤다. 가기 싫었다. 하루종일 진단서 잘 떼주는 병원만 검색하니 내가 아주 비양심적인 인간에다 범법자에다 사이비환자에 의료보험료 축내는 나이롱환자가 된 것 같아서 아주 기분이 나빴다. 


 아예 진짜 차 몰고 벽에 박아버려서 다리라도 부러트릴까, 골절로 한 3개월은 나올까 하는 생각도 했다. 친구 하나는 그냥 정형외과 가면 거북목이나 디스크 누구나 나온다면서 그걸로 한 3개월 끊으라고 했다. 쉬운 일 인가? 허리도 목도 멀쩡한데? 이건 안 될 것 같았다. 

 남편이 정신과 의사라면 이런 상황에서 부인한테는 해주지 않을까? 나의 아주 절친이 의사라면 진단서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이런 망상을 부려서 많은 양심 있는 의사 선생님께는 죄송합니다)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심에 어긋나는 짓까지 하면서 진단서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했고, 꾀병이 아니었고,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이것을 제대로 된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증명하여 합법적으로 병가와 병휴직을 승인받고 싶었다. 

 그 진단서는 나에게 티켓이었다. 병가나 휴직을 할 수 있는 티켓.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불허한다는 확인증. 절대 학교로는 다시 가지 말라는 경고장.  나는 정말 미치겠는데 내 우울이나 상태에 대한 걱정보다 진단서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있으니 이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 

 

 직장일로 정신적 고통에 빠져 계신 분들께는 꼭 이야기드리고 싶다. 상담은 더 나아지기 위해서, 행동이나 생각의 방향을 수정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런데 감당 못할 어려움이 나에게 몰려온다, 몰려오는 것 같다, 어쩌면 직장을 쉬어야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위기감이 든다면 즉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진료를 받길 바란다. 뉴스 기사에서 자주 보던 것처럼, '그 직원은 한 달째 병가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라는 문구의 주인공이 실제 내가 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과 진단서는 너무나 발급받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제정신인 의사라면) 일정 치료기간 관찰한 환자의 상태와 객관적인 진료 자료가 있어야 진단명을 확정하고 발급해 준다. 또, 그래야 하는 게 맞긴 맞는 것 같다. 




2. 직장에 버리고 온 일들에 대한 문제 

 

 학교는 꽉 차 있는 페레로로쉐 초콜릿 판 같아서, 내가 빠지면 누군가를 거기다 집어넣어야 한다. 

 내 자식의 학교 상담이나 공개수업에 참여하려고 반나절 휴가를 쓰더라도, 그 비는 시간에 수업이 두 시간이 있으면 두 시간 수업을 대신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하고, 담임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조종례를 매일 해야 되는데 담임이 아파서 며칠간 병가를 쓰게 되면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그 교사의 수업을 해야 하고, 죄 없는 부담임 선생님이나 학년부장은 그 반의 조종례부터 출결관리, 학부모와의 연락 등 잠시 미뤄둘 수 없는 일들을 계속해야 한다. 만약 진짜 아파서 한 3일간 쉬다가 학교에 다시 가면 교환처리 된 내 수업들을 하다가 더 아플 지경이다. 누가 돌아가시면 상을 치르고 오는데, '상 치르고 갔다 오면 본인 상 치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고등학교는 선택과목이 많아지면서 그룹으로 묶인 수업이 많아 교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같은 교과 선생님들이 보강을 들어가 주셔야 학교가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다시 갈지 말지 결정이 되지 않았던 병가 기간 동안 버리고 온 학급과 수업에 대한 일들이 또 나를 괴롭게 했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엄마는 어떤 사람 제일 싫어하는지 알아? 책임감 없는 사람이야."이다. 이제는 "엄마 어떤 사람 제일 싫어한다 했어?" 하면 아이들이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정도다. 일을 잘하는 걸 떠나서, 나는 책임감은 있다. 나를 생기부 형식으로 표현한다면,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며..'로 시작해도 될 것이다. 교직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병가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아파도 학교에 나갔고 병원도 웬만하면 퇴근 후에 갔다. 

 

 그런데 내가 맡은 책임들을 다 버려놓으려니 미칠 것 같았다. 담임 학급의 아이들도 내버려 두고, 중간고사 출제도, 편집도 다 했는데 그것도 수정해서 다시 내야 하고, 곧 시험인데 진도도 덜 나갔는데... 학교 일에 대해 걱정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심지어 같이 수업하는 선생님께 너무 죄송해서 아직 언제 칠지도 모를 수행평가 문제지를 혼자 만들고 앉아있었다. 진도도 몇 시간이면 다 나가는데.. 싶어 탭으로 강의를 찍어서 올려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저런 모든 생각이 다 정상이 아니었다. 그냥 학교 일은 다 접고, 전화도 안 받고 그냥 쉬기만 했어야 했는데 불안한 상태에서는 모든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도 남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내가 없는 동안 담임을 맡아주신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 

 내가 없는 동안 잠깐 와주셔서 수업을 맡아주신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 

 내가 없는 동안 내 수업에 보강을 들어가 주신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

 내가 없는 동안 일을 처리해 주신 학년부장, 상담선생님, 교감, 교장 선생님께도 인사를 해야 했다. 



 결론은, 그때는 아무에게도 그 어떤 인사도 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 우울증이라 출근도 못 하고 들어 누워 있는데 지금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커피쿠폰이라도 보내면, 그건 뭔가 우울증인 사람이 해야 하는 행동 양식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나 때문에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애쓰는 선생님들께 내가 먼저 감사하다고 하는 게 맞는 건데, 알지만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더 불편했다.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지' 하는 생각만 내도록 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파도 쉬기가 이렇게 힘든 직종에 있는 것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집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학교 일이 신경 쓰였다. 관계가 이렇게 많이 연결된 직장이 너무나 피곤했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 앞에 오는 뻥튀기 아저씨라면, 우울증이 와도 그냥 잠깐 뻥튀기 튀기는 거 쉬면 되는데 싶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학교는 아무리 진상인 학생과 학부모여도 1년이 지나가면 진급하고, 졸업한다. 선생님들도 관리자들도 얼마간에 한 번씩 이동을 하니, 어쨌든 사람은 계속 바뀐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어쩌면 쉬운 환경이다. 그런데 가족 중에 한 명, 평생 근무해야 할 직장의 같은 사무실의 한 명이 나의 우울증의 원인이라면 그 환경은 지옥일 것이다. 나는, 그것보다는 낫네.


 그래. 뭐 좋은 거 하나라도 찾아보자. 


 





다음 이야기 : 직장인 우울증 환자의 고충에 대하여 (2) 

+ 쓰다 보니 2편이 되었다

+ 나의 거취로, 이렇게 관리자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하다니

+ 내 작고 소중한 월급..........

+ 다시 거기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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