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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Nov 29. 2023

익명의 양극성 장애 환자

겪어본 적 없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

  차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알려져야 한다. 외모나 옷차림, 언행 등 때문에 겉으로 티가 나든, 본인이 커밍아웃을 하든. 나는 성별, 연령대, 직업 외에 나를 특정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주변에도 내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 알린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알릴 생각이 없다. 고로 나는 정신질환자로서 차별을 겪은 적이 없다.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학습의 결과이다. 나는 의사로서 정신질환자들이 어떤 차별을 겪는지 가까이서 보고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단지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그들은 '성격이 이상하다(혹은 이상할 것이다)', '학습이나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혹은 떨어질 것이다)',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다(혹은 그런 성향을 보일 것이다)'는 편견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 때문에 대인관계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이별을 겪고, 직장에서는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부당한 직무평가를 받거나, 심한 경우 해고되기도 한다. 지금은 쌍팔년도가 아니기에 정신질환자의 면전에 대놓고 혐오발언을 내뱉진 않지만, 그만큼 차별은 더 교묘하고 복잡하며 구조화되었다. 즉, 차별은 정신질환자가 맞서 싸우기 매우 어렵게 진화했다. 

  정신질환의 증상은 부침이 있다. 어떨 때는 잘 조절되다가도 어떨 때는 잘 안된다. 계절, 스트레스, 술, 불면 등 일상 속 다양한 요인이 악화인자로 작용한다. 질환 별로 다르지만 증상이 잘 조절되지 않을 때 정신질환자들은 불안하거나 우울해지고 가끔은 예민하게, 방어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교묘한 차별(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배려'를 겪는 등)을 당하면 불만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불만을 제기한 뒤에도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느냐' 혹은 '배려해 줬을 뿐이니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재반박하기가 몹시 어렵다. 스스로도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차별을 겪은 당사자가 오히려 자기 검열과 반성을 하고, 가뜩이나 우울한 정신질환자는 차별로 인해 더 우울해진다. 그리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그는 반격을 포기하고 몹시 무력해진다. 그렇게 정신질환자는 점점 음지로 숨어들고, 이 장면을 목격한 다른 정신질환자들은 '절대 주변에 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처럼. 그리고 소통의 부재는 당연히 더 큰 편견과 낙인으로 이어진다. 


  가끔 정신질환 투병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하는 사람들을 본다. 용기가 부럽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면, 마치 정신질환에도 '급'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단발성으로 앓고 지나가거나 이미 극복한 질환(우울증, 물질사용장애 등), 혹은 유명해진 질환(성인 ADHD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고, 문제행동이나 망상 등의 정신병적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는 질환(자폐 스펙트럼 장애, 경계성 지능장애, 조현병 등)에 대해서는 몹시 배타적이다. 과거 우울증 투병 사실을 공개한 연예인에게는 격려의 박수가 쏟아지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아이를 키우는 유명인의 뉴스에는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라는 둥, 외국으로 보내라는 둥,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댓글이 달린다. 이 장면을 바라보며 양극성 장애, 특히 '비교적 증상이 약한' 2형 양극성 장애 환자인 나는, 심지어 현재는 증상이 잘 조절되어 어떤 불편함도 겪고 있지 않는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저울질한다. 과연 나의 정신질환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가, 아닌가. 어떨 때는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조울증 남자 친구와 결혼해도 되나요?'라는 글에 달린 사람들의 날 선 반응에 안 되겠다고 마음먹기도 한다. 나는 아직은 이 사회가 양극성 장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상급이고 조현병이 하급이라면, 양극성 장애는 과연 어떤 급일까? 중? 중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익명으로 글을 쓰고 주변에도 알리지 않는다면, 심지어 직접 차별을 겪은 적도 없는데 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이 부당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투병 사실을 밝혀질까봐, 밝혀진 뒤에 차별을 겪을까봐 우려하는 것도 결국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피해의식인 것은 아닌가. 물론 답은 없고, 당장 투병 사실을 공개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 철폐를 외치는 사회운동가가 될 생각도 없다. 그냥 푸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았으나 괜히 느껴지는 죄책감, 학습된 무력감을 달래기 위한 넋두리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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