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수면제
최근에 일이 힘들다는 핑계로 다시 수면제를 먹었다. 수면제를 처방받는 건 쉽다. 나는 manipulation에 능숙한 인간이다. 원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는 오래 기다려야하고, 그들은 졸피뎀을 잘 처방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번에 말한 집 앞 가정의학과에 가서 해외학회를 가는데 잠자리가 바뀌면 잘 자지 못한다고 둘러대고 졸피뎀 1주일 치를 처방받았다. (귀찮은 질문을 묻지 않는 그의 매너리즘이 오히려 고마웠다.)
약을 먹고 일주일동안 그야말로 푹 잤다. 너무 좋았다. 진심으로 즐거웠다. 잠들지 못할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다는 게.
끊었던 술도 다시 마셨다. 겁날 게 없었다.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나도 수면제를 먹고 다시 잠들면 된다. (알코올은 원래 각성 효과가 있어서 숙면을 방해한다.) 스트레스를 받든 말든 언제나 별다른 노력없이 항상 잘 잘 수 있다는 게 지나치게 행복했다. 확신에서부터 오는 자신감은 예상보다 더 달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넌덜머리날 정도로. 또 중독이 될까봐 두려운 겁쟁이다. 자기 혐오에 빠지기 직전, 정확히 일주일 뒤 약이 떨어졌고, 다시 처방받으러 가진 않았다. 매너리즘에 빠진 가정의학과 의사도 너무 자주 오면 의심하기 마련이다.
덕분에 다시 잠들긴 힘들어졌고, 나는 괴롭다. 오늘 밤 잘 잘 수 있을까 고민없이 확신을 얻고 싶다. 수면제가 주는 안정감이 그립고, 동시에 나는 평생 정말 이걸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중독은 끝없는 싸움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이미 오래전 부터 말려들었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싸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