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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Dec 20. 2020

비자는 없지만 불법체류자는 아닙니다

돈 내는 사람만 호구되는 2020 네팔 관광비자

  네팔의 외화 벌이는 크게 3가지로 추려진다. '관광업'과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수입' 그리고 '원조'다. 이 중 가장 큰돈이 되는 건 원조다. 네팔 정부가 관광업을 포기하고도 천하태평할 수 있었던 건 원조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팔 대지진을 통해 큰돈을 맛본 정치인들은 '코로나로 인해 관광업이 중단되었'며 도움을 요청하면 온갖 구호단체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네팔만의 문제가 아 세계적인 재난이었고, 다들 자국 경제를 회복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보내준 730만 달러를 포함하여 곳곳에서 원조가 들어오긴 했지만, 이는 네팔 정치인들이 예상했던 돈보다 훨씬 적은 액수였다. 물론(?)지진 때와 마찬가지로 이 돈의 행방은 아무도 모르지만, 미국 원조를 계기로 락다운 이후 처음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무한정 길어진 락다운에 대한 스트레스와 경제난에 무관심한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올리 수상은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황이 코로나 예방에 좋다'는 말로만  20분간 연설했을 뿐, 미국에서 들어온 원조가 어디에 쓰였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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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정부는 생각했던 것만큼의 원조를 받지 못하자 네팔에 남아있던  8000 가량의 관광객들을 쥐어짜  계획을 냈다. 원조사태 전까지 네팔은 출국할 때까지 초과한 체류일수만큼의 비자비를 일절 요구하지 않았. 또한, 네팔이 정책적으로  영향을 받는 인도도 락다운으로 체류중인 관광객들에게 국제선이 열린   달까지는 비자를 무료로 자동 연장해주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네팔도 비자비를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6 14, 락다운으로 모든 비자업무가 중단된지 3달만에 관광비자에 대한 새로운 공문이 내려왔다.

6월 14일. 일주일 안에 오피스에 가서 비자비를 납부하라는 공문


 일주일간 관광비자 업무를 재개할테니  안에 비자비를 내러 투어리즘 오피스로 오라는 것이었는데,  짧은 공문은 많은 궁금증을 유발했다. 네팔 관광비자는  년에 5개월로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길어진 락다운으로 이미 5개월을 초과한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이에 대한 오버 차지 언급이 없었다. 또한 공항이 폐쇄되어버린 상황에서, 언제까지 네팔에 체류해야 할지도 예측할  없었다. 다만 6 1일부터 7 5일까지 특별기 운항마저 금지시켜놓고는, 6 29 전에 네팔을 벗어나는 관광객에게는 비자비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특별기를 포함한 모든 국제선 운항을 금지하겠다는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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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어리즘 오피스가 문을 연지 이틀 차, 오피스에 방문했다. 비자비를 납부할 수 있는 기간이 일주일밖에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한산 모습이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비자비를 내지 않는 중국인이나 인도인이었다. 팔은 티벳처럼 중국에 완전히 흡수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만연할 정도로 친중 정책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우정원조를 이유대며 중국인들에게 비자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인도는 원래도 여권 없이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국경이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당연히(?) 비자비가 요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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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물지만 이외 국적의 관광객들도 간혹 보였다. 하지만 오버스테이  일수만큼 패널티까지 붙여서 하루당 8불씩 납부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컷 욕만 하고는 되돌아갔다. 관광은 커녕 도시이동마저 규제된 상황에서 락다운 이전과 같은 규정으로 페널티까지 붙여서 비자비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했다. 대부분 비자비를 내지 않는 분위기에서 우리도 일단은 비자비를 납부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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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6월 21일 이전까지 출국하면 비자비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변경된 공문.

그날 밤, 투어리즘 오피스에는 새로운 공문이 내려왔다. 2주 안에(6월 29일까지) 나가면 비자비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문구 4일 안(6월 21일까지)으로 변경되었다. 더 나쁜 조건으로 변경되었지만, 어차피 당시 네팔에서는 특별기 운항마저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 나갈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불합리한 비자조건에도 포카라는 평화롭기만 했다. 포카라에서 관광비자로 체류하는 자들 대부분이 히피들이였기 때문이다. 무릇 히피들 시스템을, 특히 국가시스템을 강하게 거부한다. 모국의 시스템에도 순응하기 싫어서 뛰쳐나온 히피들이 외국 국가의 시스템에 쉽게 응할리 없었다. 게다가 그들에겐 비자비를 낼 돈도 없었다. 이처럼 불합리한 비자비 규정에도 무신경할 수 있었던 사람은 어차피 그 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히피거나, 반대로 몇백 불쯤은 아무렇지 않게 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포카라에 남아있던 관광객들은 주로 전자이거나 후자였다. 하지만 전자도 후자도 아니였던 우리에게 비자비 골아픈 문제였다. 반면 카트만두에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카트만두 투어리즘 오피스에서는 출국도 못하게 막아놓고는 페널티까지 붙여 비자비를 요구하는 불합리한 조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로 인해, 바로 몇 시간 후 내일 하루는 관광비자 업무를 중단하겠다는 새로운 공문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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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친구는 더 이상 비자비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으니 다시 정상적으로 업무를 하면 바로 비자비를 납부하자고 했다. 정부에서 이렇게 나오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어차피 내야할 돈 미루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러시아 대사관에서는 ‘비자비를 내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공지했다. 미국대사관에서는 비자비를 내라고 했지만, 러시아 대사관에서는 비자비를 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대사관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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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저녁. 국제선 공항이 열리고 15일 안에 나가면 비자비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변경된 공문.

 그 다음 날, 결국 네팔은 비자비 받기를 포기했다. 러시아를 포함한 많은 대사관에서 이에 대해 반발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는 비자비를 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에 절망했다. 정부가 이렇게나 쉽게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네팔이다. 간보는게 특징인 네팔에서는 아무리 국가 공문이라도 간 보려고 던져보는 말일 뿐이다. 그들은 한 번 던져 말에 별말 없으면 그냥 넘어가고, 강하게 반발하면 쉽게 포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평화주의자라도 네팔에서는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바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건 분명 싸울 가치가 있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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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적으로 비자 업무를 한 이틀 동안 네팔에 남아있었던 관광객 8000명 중 고분히 비자비를 낸 사람은 300명뿐이었다. 히말라야 신문에는 300명에게 비자비를 환불을 해준다고 기사가 났지만, 환불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어디에도 없었다. 비자비 받기 포기한 이상 당연히 그 돈을 돌려주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이미 내버린 그 돈은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네팔에 머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다. 그건 비자비를 낸 300명조차도 아는 사실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미 낸 비자비를 돌려받은 사람도, 이에 대한 언급도 없다.) 투어리즘 오피스에 방문했던 날 비자비를 내고 왔으면 그대로 잃어버렸을 돈을 생각하니 아찔해졌고, 그 후로 더이상 비자비는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는 사람은 호구고, 안내면 그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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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이 비자비로 재미볼 생각을 한 건 올 초에도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그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네팔은 2020년을 네팔 방문의 해로 내세워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힘썼다. 매년 네팔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났고, 특히 2018년에 비해 2019년에는 관광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3배 가까이 크게 증가하면서, 관광업으로 제대로 외화를 벌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네팔이 2020년을 네팔 방문의 해로 지정하고 가장 먼저 한일은 하루에 2불이었던 비자비를 3불로 올린 것이었다. 히말라야라는 위대한 관광자원을 가진 네팔은 아쉽게도 관광객에게 호의적인 나라는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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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8월 15일부터 최대 12월 15일까지 패널티 없이 비자비를 납부하면 비자를 연장해주겠다는 공문

 욕심 부리다 제 꾀에 넘어간 네팔 정부 덕분에 4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무려 4개월간 거저 체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선은 안열리고 관광객들이 무료로 체류하는 일수도 무한정 길어지자, 8월 중순, 8월 15일부터 최대 12월 15일까지 패널티 없이 하루에 3불씩 비자비를 요구하겠다고 다시 발표했다. 제법 합리적인 공문에 이번에는 아무리 히피라도 고분히 납부해야 했지만, 한달에 90불이나 되는 비자비는 결코 가벼운 금액은 아니었다. 결국 몇 안남은 히피들마저도 한둘씩 네팔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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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이 되도록 네팔에 남아있던 소수의 관광객들은 대부분이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호전될 때까지 계속 네팔에 체류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네팔은 15일 이전에는 무조건 나가야만 한다고 강경히 대응했다. 네팔에 남아있는 관광객들이 (비자비를 포함하여) 쓰는 돈을 고려하면 굳이 내쫓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부입장에서 관광객은 골치덩이일 뿐이었다. 히피들에게 비자비를 받아내는 것도 문제였고, 그들이 비자비를 낸다 하더라도 고분히 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큰 돈도 아닌 돈을 받겠다고 욕까지 먹는게 억울했을 것이다. 몇 안 남은 관광객들에게 비자비를 받겠다고 투어리즘 오피스를 열어놓는 것도,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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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결국 비자를 연말까지 연장해주겠다는 공문

 10월 17일부터 관광객들에게 국경을 열겠다고 발표한 네팔 정부는 이를 12월 15일로 미뤘다. 새로운 관광객(돈 많이 쓰는 관광객)이 들어오면 그나마 남아있던 관광객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경을 연다면 미련 없이 쫓아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백신이 보급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국경을 열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결국 12월 10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나가야 한다던 네팔 정부는 (12월 15일 이전에 비자연장을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5만 원가량에 페널티를 부과하고 올해가 끝날 때까지 연장해주기로 결정했다. (15일 후에 연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패날티가 부과되었다.) 이로써 해가 바뀌면 다시 최대 5개월까지 관광비자를 갱신할 수 있기 때문에, 네팔에 남은 관광객들은 내년 5월까지 관광비자로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12월 13일. 한산한 네팔 카트만두 공항

 하지만 이는 반드시 나가야 한다고 고지한 15일까지 고작 5일 남겨놓은 너무 늦은 발표였다. 결국 우리는 12월 13일, 네팔에서 출국하는 티켓을 구매했다. 그렇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네팔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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