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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Nov 19. 2020

한국인이지만 한국어 울렁증이 있어서

Ep4. 포카라 윈드폴 입성

 홀리가 끝나고, 더 이상 카트만두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지자 네팔 최대 관광도시 포카라로 넘어왔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직선거리로는 180km도 채 되지 않지만 무려 7시간이나 걸렸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서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라 불려지는 것은 꼬불꼬불한 산길의 비포장 도로다. 게다가 무슨 휴게소를 그렇게 자주 가는지, 20분마다 정차해서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를 이렇게나 자주 릴 줄 모르고 장거리 버스에 대비해 주전부리들을 미리 사 둔 바람에, 휴게소에서 다른 승객들이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는 동안 우리는 지루하게 버스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3시가 되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간판도 없는 허허벌판에 버스가 정차했고, 승객들은 화물칸에 실어 둔 짐을 찾아 뿔뿔 흩어졌다. 어김없이 택시기사들이 달라붙었지만, 포카라에 예약해둔 숙소까지 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걸어서 이동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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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러웠던 카트만두와 달리, 포카라는 네팔에서 2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조용한 시골마을을 연상케 했다. 골목길에선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아이들이 해맑게 뛰놀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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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예약해둔 숙소가 맵스미에 표시된 위치와 달라 한참을 헤맨 후에야 체크인을 했고, 체크인을 하자마자 배낭을 내려놓고 가벼워진 몸으로 폐와 호수로 향했다. 파란 하늘이 비치는 파란 폐와 호수 주변으로 바와 식당들이 줄이어 늘어서 있었다. 시끄러운 일렉 음악이 나오는 클럽도 있고, 아기자기하게 귀여운 카페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에베레스트보다도  유명한 만큼 한국어 간판도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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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호수가를 천천히 거닐다가 발견한 디즈니랜드에서 시끄럽고 불안정하게 덜컹거리는 관람차와, 우리 말고는 아무도 타지 않았던 범퍼카를 탔고, 저녁 식사로 호수에서 잡은 민물생선 구이를 먹었다. 바다가 없는 내륙도시 네팔에서 바다 생선은 비쌀뿐더러 찾는 것조차 힘들어서 카트만두에 머문 2주 동안 생선은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생선이 반가웠던 우리는 3일 내내 저녁으로 생선구이를 먹었다. 와이파이도 없는 로컬 식당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크기에 비해 먹을 게 없었지만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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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 도착해서 처음 며칠은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며 카두만두에서와 별 다를 것 없이 하루 종일 카페를 전전하는 생활을 했다. 트레킹 장비는커녕 방한용품조차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장비를 대여해야 했는데, 렌트샵에서는 하루당 대여비를 받았기 때문에 하루당 대여비를 트레킹 일수만큼 곱하면 결국엔 빌리는 거나 사는 거나 가격차이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당시엔 인도가 국경을 열 때까지 랑탕과 에베레스트까지 모두 트레킹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고려한다면 사는 게 훨씬 더 저렴했다. 하지만 트레킹화부터 방한용품까지, 사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엔 굳이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큰돈을 들여서까지 트레킹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던 중에 레이크 사이드를 걷다가 우연히 한인 게스트 하우스를 발견했다. 간판도 없는(작은 입간판이 있었지만 당시엔 보지 못했다) 하얀 건물에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아시아인들이 모여 있길래, 중국인들이 사는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그곳에서 한국어를 들은 오구즈는 그들이 한국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멀리서 멀뚱히 쳐다만 보다가 그들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안녕하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인 감별 능력은 오구즈가 나보다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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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로 돌아와 네이버에 '포카라 한인 숙소'를 검색했다. 그곳은 포카라에서 유명한 한인 게스트 하우스여서 검색 상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게하 이름이 '윈드풀'이라는 것과, 조식이 뷔페식으로 한식으로 나온다는 것, 사장님 부부가 두 딸과 함께 살면서 운영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모든 트레킹 용품을 공짜로 빌려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렇게 우리는 생애 첫 한인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외국인 남자 친구와 여행을 하다 보니 한인 게에서 머물 일은 없었다. 혼자 여행을 했을 때도 한인 숙소에서 머물렀던 적은 딱 두 번뿐이다. 한 번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였는데,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상대로 운영하는 호스텔이라 사장님이 한국인인 줄 모르고 우연히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순례길을 걷기 전 프랑스 바욘에서 밤 11시에 체크인하고 아침 6시에 체크아웃한 경우였다. 그러니 한인 숙소에 머문 적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의 여행 목적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이였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사람은 나와 다른 문화권 속 외국인만을 뜻했다.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여행중 밤잠을 줄여가면서 까지 열심히 여행했을 만큼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소중했고, 그 소중한 시간을 굳이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 한국사람과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집 때문에 억지로 한국인을 피해 가며 여행을 했는데, 초기엔 이 과정에서 외국인들 사이에서 혼자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스스로 오픈마인드라고 자부하며 그들과 융화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강하게 부정했지만,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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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운 시간들이 빛을 발했다. 외국인들과도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게 되고, 한국인 친구들보다도 더 강한 친밀감을 느끼는 외국인 친구들도 몇몇 두게 되었다. 새로운 언어배웠고, 그 언어로 소통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감각이 전혀 없는 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이유는 외로움이었다. 나는 사회적 동물로서 소통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유학을 다녀와서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오죽 외로웠으면 그 어려운 외국어를 배웠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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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경험과 외국어 능력으로 대학생 때부터 국외 여행 인솔자로 일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처음엔  여행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외여행 인솔자라는 절대 만만한 직업이 아니었다. 육체노동 강도뿐 아니라 정신노동 강도도 상당히 높은 직업이다. 내 한 몸 끌고 다니기도 벅찬 여행을 손님들 줄줄이 모시고 여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을(길게는 몇 달을) 외국에서 손님들에게 실컷 시달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폭발적으로 쌓였다. 그러면 나는  스트레스를 또다시 여행으로 풀었다. 일종의 직업병으로 나는 외국에서 한국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업무'처럼 느꼈다. 그래서 혼자 여행할 때만은 한국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오구즈가 나보다 한국인을 더 잘 찾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예전에야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드물다 보니, 한국인끼리 만나면 서로 반가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어딜 가든 한국인으로 넘쳐난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나처럼 한국인을 피해 다니는 한국인 여행자가 많아졌다. 길거리에서 굳이 한국사람을 마주쳤다고 해서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는 일도 없다. 인사를 건네더라도 굳이 긴말하지 않고 용건만 간단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용건이랄 것도 없겠지만) 하고 끝난다.  5년 전, 내가 처음 남미 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카카오톡 남미 여행 단톡방이란 게 있을 만큼 (지금도 있겠지만) 한국인 여행자 커뮤니티가 돈독했지만, 지금은 여행정보도 워낙 많다 보니 그런 것도 필요 없어졌다. 반면 터키는 아직 해외여행기회가 드물다 보니 오구즈는 외국에서 터키인들을 만나면 매우 반가워했다. 이런 오구즈는 한국인을 반가워하지 않는 나를, 그리고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다른 한국인들을 신기하게 여겼다.




 

 윈드풀에 입성한지 무려 10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어 울렁증으로 열심히 한국인을 피해다녔던 내가 트레킹 장비 때문에 들린 한인 숙소에서 매일 한식을 먹고 한국어로 떠들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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