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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Nov 17. 2020

여행자의 언어

Ep2. 카트만두에서 생긴 일

-Onegether 800루피, T(w) ogether 1000루피


 카트만두 공항은 네팔에서 유일한 국제공항이지만, 공항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공항은 시골 시외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델리 공항에서도 없었던 유심 없이도 쓸 수 있는 무료 와이파이가 있었다. 덕분에 다카에서 날아오는 오구즈를 기다리는 동안 미리 숙소도 예약하고, 공항에서 타멜거리고 가는 버스 정보도 미리 찾아두었다.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택시기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많은 나라에서 택시를 경험했지만, 택시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요즘은 워낙 어플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이 줄었지만, 택시기사의 끈질긴 호객행위와 돈을 더 받아내려는 상술은 언제나 비행의 피로함을 가증시켰다. 택시기사의 흔한 상술 중 하나는, 택시 가격을 버스처럼 승객 수만큼 곱절해 받는 것이다. 분명 카트만두의 택시기사들도 같은 상술을 쓸 것이다. 택시를 탈 생각은 없었지만, 네팔에서는 바가지를 어느 정도 씌우는지 파악하기 위해 가격을 물었다. 그 흔한 상술을 방지하기 위해 800루피를 부르는 택시기사에게 승객 2명의 요금인지 확인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onegether 800루피, t(w)ogether 1000루피"라고 대답했다. 돈을 벌기 위해 길에서 배운 생존 영어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엘리트로 바라보는 인식은 세계 어디든 깔려있지만, 여행을 하면서 체감적으로 느꼈던 영어 사용률은 오히려 이와 반대였다. 물론 명문대를 나오고 선진국이라 불리는 물가 비싼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을 다녀온 'well-educated'된 사람들이야 국적을 막론하고 다들 영어를 잘하겠지만, 이들은 여행자가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여행자가 접하는 현지 사람들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퍼마켓 직원, 식당 직원, 버스운전기사와 같은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영어 사용률을 비교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GDP가 낮은 국가일수록 영어를 잘했다. 동남아시아가 동북아시아보다 영어를 잘했고, 남미에서도 안데스 산맥을 끼고 있는 국가들이 칠레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상대적 강대국들보다 영어를 잘했다. 같은 맥락에서 최빈국으로 분류되는 네팔도 영어 사용률이 높다.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하는 도시에 사는 네팔리들에게 영어는 경제활동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어설프지만 돈 버는 영어를 구사하는 택시기사와 달리 영어 교육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함에도 돈 버는 영어는커녕 돈 쓰는 영어조차 어려운 한국의 비효적인 영어 교육은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그럼에도 국민 대다수가 영어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국가라는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참 다행인 일이다.


 택시기사의 창의적인 영어로 비행의 피로함은 즐거움이 되었지만, 미리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택시비는 ONEGETHER요금보다도 저렴한 500루피다. 우리는 택시 기사를 뒤로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로써 네팔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인도와 네팔에서 쓰이는 산크리스트어 인사말이다. 나마스떼는 인도와 네팔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인사말이지만 너무 복합적인 뜻을 담고 있어서 번역조차 잘 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나는 온 우주가 거하는 당신 내면의 장소에 절합니다. 빛과 사랑, 진리와 평화, 지혜가 깃든 내면의 장소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해석해놓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내 안에 깃든 신이 당신에게 깃든 신에게 인사합니다'라고 해석해놓기도 했다. 이토록 장황하고 근사한 뜻을 함축해놓은 '나마스떼'라는 짧은 인사말은 네팔에서는 그 누구도 상관없이 모두가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네팔리들은 외국인들에게도 '나마스떼'하고 인사하고, 외국인도 외국인에게' 나마스떼'하고 인사한다. 지나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마스떼'할 수 있다. 영어로 인사하는 사람은 주로 구걸하는 사람뿐이다. 구걸하지 않는 사람은 미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터키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두 '나마스떼'하고 인사한다. 네팔에서는 감사할 때도 '나마스떼'하고 헤어질 때도 '나마스떼 한다.


-

그 나라의 언어를 아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언어는 표현 수단과 동시에 표현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언어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 자체다. 때문에 간단한 인사말에도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한국어로 인사말은 '안녕하세요'다. 글자 그대로 안녕하냐고 묻는 말이다. 이 말을 그대로 영어로 직역하면 how are you?가 된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똑같이 안녕하냐는 말로 되받아친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이 질문에 대답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 "i'm fine. thank you. and you?'라는 대답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심지어 머리통에 겨우 붙어있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마저 하얗던 늙은 변태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날에도 그랬다. 그 늙은 변태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빠서 누구라도 붙잡고 실컷 욕하고 싶은 날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고질적인 습관성 대답 때문에 그 변태 놈 욕도 제대로 못했다. i'm fine 뒤에 성추행당한 이야기를 했다가는 오히려 내가 더 변태로 보일 것이었다.

 영어가 익숙한 다른 여행자들에게 안녕하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하루 종일 겪은 일들을 늘어놓았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감정의 원인이 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영어로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지금은 영어와 스페인어는 회화까지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그 외에도 간단한 말은 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통해 문화의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1년째 듣고 있는 '나마스떼'는 여전히 '나마스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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