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 너의 것 그리고 우리의 첫번째

by 박환희

정민은 창밖에서 떨어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눈이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 지면의 숨구멍을 다 막을 정도로 억수로 내렸다. 정민은 센티한 기분을 느끼며 줄곧 그랬듯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에 왔다.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회장님이시라 다른 직원들 눈치도 보지 않고 집으로 곧장 튀어왔다. 회사라는 우리 안에서 회장이라는 자리는 제왕을 뜻했고 감히 그의 아들이 조퇴를 하는데 사원들이 대놓고 불평을 표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정민의 엄마는 늘 있었던 일이라는 듯이 조퇴하는 아들을 맞아줬다. 정민은 엄마를 보고 살짝 미소를 보이고는 방에 들어가 창가에 앉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바라봤다. 그때 밖에서 정민의 엄마는 혹여나 아들이 제때 밥을 먹지 않아서 굶고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정민은 순간 불쾌감과 짜증이 솟구쳤지만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애써 괜찮다고 대답했다. 정민은 자연스레 아버지가 운영하는 타일공장에 들어갔다. 부모님의 강요가 있었기에 거절하기 힘들었다.공장이라고 하면 작은 규모의 공장이 라고 생각하겠지만 관공서뿐 아니라 기업 그리고 청와대에서도 품질과 실력이 좋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그렇게 그는 어떠한 삶의 역동성과 도전과 설렘과는 동떨어진 채 지겹기만 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그에게 크리스마스란 연인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풍족한 소속감을 느끼는 날이 아니라 그저 눈이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뉠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민은 혼자가 편했다. 그래서 남들은 함께 하기 위한 크리스마스를 그는 혼자가 되기 위해 집에서 살던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원룸이로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짐은 다 옮겨놓았고 오늘까지만 집에서 자고 가라는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하루만 더 부모님의 집에서 더 머물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싶다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말에 부모님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처음에는 만류했지만 정민의 주장이 워낙 완고한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들의 직원들을 시켜 정민의 이삿집을 옮기게 했다. 직원들은 대놓고 불만 어린 소리는 하지는 않았지만 뾰로통한 표정에서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었다. 정민의 아버지는 직원들에게 군말 없이하라고 못을 박았다. 사원들은 회장의 말에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어찌 먹이사슬 최정상에 선 사람의 말에 불만을 표출할 수 있으랴


정민은 묵묵히 그 장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옮길 짐이 별로 없었고 부모님이 적어도 투룸 이상의 집을 직접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정민은 부모님의 호의를 극구 반대하며 많지는 않지만 여태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돈으로 원룸 1년 치를 계약했다. 이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짐을 옮기고 난 후 정민은 사원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한 뒤에 근처 은행에서 돈을 뽑아 직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전달했다.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미안함에 말끝을 흐리는 정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들은 돈봉투로 고양된 기분이 목소리에 묻어나며 다들 하모니를 부르듯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 이사하는동앗 느꼈던 분함을 싹 씻겨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정민은 남은 짐을 정리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웠다. 운이 좋게도 창문을 열면 진홍색의 별돌로 가려진 건물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과 저먼발치의 산까지 보이는 나름 자연과 문명이 하나 된 경치를 볼 수 있는 원룸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여러 가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하나씩 부검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단한 계획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부모에게 빚을 지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한 트럭은 더 되기에 더욱더 그래야 된다고 정민은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곤 했다. 정민은 우선 요 며칠 전부터 온라인 구직사이트를 통해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붙어서 일을 하지 않는 곳을 알아보던 중에 편의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군데를 찾아보던 중에 집이랑 가까우면서도 인적이 드문 곳을 발견했다. 근무시간은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주 3일 근무였다.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일 년 치 월세를 이미 낸 상태라 월세 걱정은 크게 없었고 돈이 나갈일도 드물어 큰 걱정은 없었다.정민은 원대한 포부를 가진 독립은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숨 막히는 죄책감을 주는 부모의 존재와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건 정민에게 성공이었고 크나큰 도약이었다. 이윽고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주말이었다. 정민은 근무가 끝나고 곧바로 피곤한 몸과 정신을 챙겨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강원도에 있는 납골당에 갔다. 터미널은 주말이라 사람들이 붐볐다. 정민에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풋풋한 커플들과, 자녀와 손을 잡고 걷고있지만 거리를 두며 걷는 부부, 사람들 앞에서 할머니에게 소리 지르는 흰머리의 할아버지, 물건을 팔기 위해 부스 안에서 돈벌이를 하는 아르바이트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정민은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속으로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들은 지독한 짐을 지고 살고 있을까? 나처럼 무겁고, 지독한 짐...' 혼자 고뇌에 빠지다 버스출발시간이 다 되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요깃거리를 조금 사고 나서 버스에 올랐다. 짐을 버스 짐칸에 둘 수 있었지만 정민은 굳이 짐을 지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은 후에 무릎 위에 올렸다. 그는 그게 편했다. 짐을 지고 있는 게 그에게는 더 마음이 편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자신에게 해를 사소하지만 해를 가했다. 정민은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했다.

그는 은 터미널에서 내려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갔다. 짐을 풀고 허기진 배를 채울겸 정민의 큰 이모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가다 보니 다른 친척들과는 대면대면한 사이지만 큰 이모와와 이모부와는 상대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항상 밥값을 내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서로 미소를 지으면서 하는 다툼 아닌 다툼은 정민의 마음에 작은 위로를 선물해 줬다. 정민의 이모는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정민의 앞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리고 정민을 빤히 쳐다봤다. 정민은 그런 이모의 행동의 적잖이 당황했지만 종종 그래 왔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했다. 정민의 이모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이모는 조심스레 말했다.

"누나 보러 왔니" 정민은 어떠 대답도 하지 않고 뚝배기에 펄펄 끓고 있는 순부부 찌개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들지? 누가 널 이해하겠니. 어떤 누가 널 이해하겠어? 감히 누가 잊혀진다는 말로 위로할 수 있겠어. 이모는 그런 거 안 할래. 그냥 네가 힘들겠다는 거. 그래서 이모로써 마음이 안타깝다는 거 그것밖에 못하겠다.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내 옆에 있을 때 아니 그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큰 위로를 받지." 정민은 이모의 말에 눈물을 훔치며 그 뜨거운 국을 허겁지겁 먹었다. 국에 간이 잘 배어있었지만 정민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국의 맛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허기진 배와 약간의 위로를 채우고 가게 밖을 나왔다. 숙소에 도착한 그는 으레 그렇듯 샤워를 하고 창문으로 향했다. 강원도 산지의 경치는 서울과 광주시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하얀 눈이 쌓이고 쌓여 나뭇잎이 자신의 한계밖이라는 듯이 눈을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숙소에서 하루를 묶고 오후가 돼서야 일어나 납골당으로 향했다. 정민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시선은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초점을 잃고 싶었다는 말이 정확한 말이었다. 정민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으면 하는 강한 바람이 생겼고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밀쳐 계단에서 떨어져 죽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별안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뒤틀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새하얗고, 어여쁜 소녀의 사진과 백사장의 모래처럼 곱게 빻아진 뼛가루가 든 납골당 항아리가 정민을 기다렸다. 정민은 어린 소녀의 사진이 들어있는 유리로 된 칸막이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너무 미안해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해"

정민은 그렇게 그 자리에 삼십 분을 넘게 서있다가 납골당을 나와 택시를 잡아 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 광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창박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눈을 내리는게 지쳤는지 장대비가 내렸다. 정민은 창가를 바라보며 저 밖에 내리는 비처럼 자신이 쓸려내려가고 싶은 욕구와 함께 저 비가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 내렸으면 하는 일말의 소망을 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정민의 엄마였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애써 훌쩍거림을 참으며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숨을 가다듬은 다음 말했다.

"네 엄마"

" 아들 잘 지내지. 밥은 잘 먹고 다니고?"

"네 그럼요. 잘 먹고 다니죠"

옆에서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정민의 아버지였다.

"아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하기로 했잖아. 집 나가서 혼자 독립한다고 할 때 약속했잖아. 그렇지? 아빠가 많이 걱정하셔. 엄마도 그렇고, 아빠 바꿔줄까?" 그러자 옆에서 큰소리로 "됐어"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건강챙기라는 세란에 말에 정민은 형식적인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민은 고된 주말을 보내고 집에 도착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찬장을 뒤졌지만 텅 비어있었다. 원래는 주말에 장을 보지만 시간이 없어 장을 보지 못해 남은 음식이라곤 김가루가 전부였다. 다행히 집 앞에 나름 큰 24시간 식료품점이 있어서 장을 보러 나갔다. 장을 다 보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벤치와 쓰리기통 옆에 어떤 여자가 앉아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는 얼마나 안 감았는지 떡이져 있었다. 정민은 대놓고 쳐다보지 않으려고 지나가면서 슬쩍 봤는데 젊은 여자처럼 보였다. 불현듯 궁금증이 폭발해서 다시 뒤를 돌아 여자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기에 원룸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갔다. 죄진 것도 아닌데 조급한 마음에 비밀번호를 한두 번 틀리고 서둘러 들어갔다. 그런 다음 현관문 앞에서 길가에 있는 사연 있는 여자를 계속해서 바라봤다. 누가 보면 길가의 행식이 초라한 여자와 인연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지긋한 바라봄이었다. 길가에 여자는 마치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듯이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였다. 날이 많이 풀렸다지만 겨울이었고 일교차가 심해 정민은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정민의 마음속에는 자기 자신도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누구에게 간섭이냐는 생각이 별안간 그의 뇌간을 쳐댔고 마트에서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터벅터벅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와 진눈깨비가 석여 있었다. 정민은 밖에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는 모종의 설렘을 가지고 급히 우산을 챙겨 어떤 고민도 없이 길가에 이름조차 알지 못한는 여자에게 그의 인생에서 찾아보기 힘든 선행 또는 오리잪을 부리러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비와 눈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겼나 보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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