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 너의 것 그리고 우리의 다섯번째

by 박환희

효리는 지저분한 옷과 분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동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기업 회장이라는 사람이 욕정을 풀기 위해 연락이 왔다고 했다. 효리는 사무실에서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결혼했어요? 자녀들은요"

효리의 물음에 전화 너머로 동민은 잠깐 말이 없다 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우린 우리 일만 하면 돼. 그것까지 생각하면 이일을 와하겠냐. 지금이라도 말해. 하기 싫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돈을 워낙 많이 주니까 해줬으면 하지만 그래도 싫으면 말해. 딴 애들 시키거나 아니면 못하겠다고 말할 테니까."

동민은 말에 효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그 자녀들이 알면 힘들고 충격을 받을 텐데 하고. 그리고 고마워. 저 끊는다 원룸 앞 벤치 맞죠? 거기서 기다릴게요. 그럼 끊을게요"

하늘은 이 쓰라리고 비참한 서사가 무르익기를 바라는 듯이 칙칙하게 하늘을 덮었다. 효리는

거지꼴에 생쥐꼴까지 정확히 그 변태 회장이 요구하는 모습으로 분장을 했다. 벤치옆에 앉아 모텔로 이동할 차량을 기다리며 그녀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효리를 보고 혀를 차는 소리, 비웃는 소리, 몇몇 남성들의 성적이 농담들도 효리에겐 백색소음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 말해 자신의 이모와 숙부가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의 성을 팔아 돈을 벌고,

결국 그 둘을 죽인순간부터 효리는 타인의 말과 생각에 관심이 끊겨버렸다. 신기할 정도로 무감

각함이 그녀의 마음과 영혼을 안갯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때 승합차 한대가 효리 앞에 섰다. 차 안에 좌석에는 비닐이 깔려있었다. 효리는 문들 닫고 의자에 앉으며 똥차가 유난 떤다고 생각했다. 차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역시나 허름한 모텔이었다. 미리 알려준 506호의 문 앞에

벨을 눌렀다. 웬 신사가 문을 열며 젠틀한 미소를 보이며 효리를 맞이했다.

그녀는 거사를 치른 후 몸이 빨래처럼 늘어진 상태로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모텔을 나왔다. 동민이 모텔 앞까지 나와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지만 효리는 걱정 어린 표정을 한 동민에게 왠지 모르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동민의 손을 뿌리치고 알아서 가겠다며 길을 걸었다. 하염없이 걸었다. 그녀는 동민에게 딱히 앙갚음의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그를 보면서 참 좋은 사람이 왜 이일에 뛰어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가 가게를 운영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가게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한 여성들의 빚을 갚아주는 일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효리는 동민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힘쓸 수 없는 그런 일이 있겠지 하며 그러기에 이런 비린내 나는 일을 하고 있겠거니 하며 생각했다. 여러 생각들을 교차하며 초점 없이 앞만을 걷고 있는데 앞에서 어떤 형체의 미세한 움직임이 보였다. 효리는 그 형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살짝 앞으로 보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누군가 미친 듯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효리는 본능적으로 자동차 뒤로 젭 싸게 몸을 숨겼다. 불현듯 왜 자신이 이렇게 숨고 있는지 하는 두려움이 올라왔고 혹시 집마당에 있는 시체를 발견한 건 아닐까? 시체 썩은 내가 진동해서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자신을 잡으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별안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효리에 기억으로 분명 확실히 땅 깊숙이 묻어놨는데 하는 생각과 걱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와 머리가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차량뒤에 숨어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달려오는 존재를 가늠해 봤다. 하지만 형사라고는 볼 수 없었다. 먼가에 분명 뒤쫓기는 모양새였다. 얼굴은 새하야함을 넘어 파리해 보였고 머리는 가르마를 탔지만 달린 탓인지 여기저기 헝클어져 보였다. 갑자기 효리는 자신도 모르게 차량뒤에서 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앞으로 갔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휩싸여 숨을 헐떡이는 남자를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남자에게 어떠한 말도, 자신의 이름도, 구해주는 이유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타인이란 고통이고, 혼란이고, 두려움이고, 적이었다. 하지만 그를 도와줘야만 한다는 영움심이 그녀를 이름도 알 수 없는 남자를 효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이 남자가 혹여나 누군가를 헤쳐서 경찰에 쫓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효리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효리는 자신의 죄책감을 가리고 싶거나 아니면 자신은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은 사람이며 그저 환경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은 건지로 모를 일이다. 좌우지간 효리는 그 남자를 데리고 자신의 문 앞으로 들였고 문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했고 숨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사시나무 떨듯 떨며 겁에 질려있는 남자 또한 자 신의 이름을 말했다. 자신의 이름은 정민이라고 했다. 그때 동민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변태중년 아저씨가 다시 한번 효리를 원한다고 했다. 기존보다 두 배를 준다고 했다. 효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세상짐을 혼자 질 거 같은 표정을 한 남자에게 말했다.

"저는 밖에 일을 봐야 해서요. 집안에 숨어있으세요 그리고 안전해진다 싶으면 언제든지 나가시면 돼요. 다만 대문은 꼭 닫아주시고요." 효리는 마당에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말하려다가 혹여 의심을 살 수 있어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어색한 인사를 한 후에 집 밖을 나섰다. 효리는 지옥 속으로 출근하는 와중에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기묘한 안정감과 뿌듯함이 지금 가고 있는 오물과 악취를 여과시켜 주는 듯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전 04화나의 것, 너의 것 그리고 우리의 네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