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냐고. 야 얼마냐고"
술에 떡이 된 중년 남성이 정신이 딴 데가 있는 정민에게 소리쳤다. 정민은 효리에 대한 생각 때문에 정신이 팔려 요 며칠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처럼 계산대에서 초점 없이 앞만 보고 있었다. 앞에 손님이 화가 났는지는 정민에게는 상관할바가 아니었다
"4,500원이요"
"야 너 뭐야 똑바로 장사해 알았어?"
"죄송합니다"
정민은 자신에게 담배 둘러싸고 있는 비닐을 벗겨 얼굴에 던지는 손님에게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무표정한 효리의 표정과 간헐적으로 대화 중에 나오는 미소, 그리고 남루한 의상과 어울릴 듯하면서도 어울리지 청순한 미모가 정민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하지만 만난 지 일주일이 된 둘이지만 정민도, 효리도 둘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찾지 않았다. 서로의 상처가 너무 커서 이성을 만난다는 건 그들의 일생동안 애당초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감히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로를 갈망하기엔 둘다 자신들이 너무 초라하고, 열등하다는 생각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족쇠를 채웠다. 정민은 그래도 자신은 남자라는 생각에 자고로 남자라면 강단이 있어야 한다는 평소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아가야겠다고 결정했다.
근무가 끝났다.정민은 원룸으로 가서 샤워를 한 후 말끔히 차려입고 그녀를 찾아갈 계획이었다. 그때 가게 앞에 효리가 서 있었다. 옷은 갈아입었는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녀를 봤을 때마다 이상한 패티쉬를 가진 변태들이 좋아하는 남루한 생쥐꼴을 했었지만 지금처럼 코트에 롱부츠를 신고 머리는 고데기를 했는지 생머리에 얼굴은 화장은 한 듯 안 한듯한 수수한 얼굴이라 미모가 한껏 더 부각되었다. 효리는 정민을 보더니 고개를 들어 활짝 웃어 보였지만 스스로 그 미소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미소를 감췄다. 그리고 둘은 어색함과 설렘을 왼발, 오른발처럼 한발 한발 내딛으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정민이 먼저 말을 걸었다
"밥 먹었어요?"
"아니요 아직이요"
"여기 죽이 진짜 맛있거든요. 아파서 먹는 게 아니라 맛 때문에 단골도 많고요. 그리고 24시간 운영하더라고요. 24시간 운영한다고 품질이 나쁜 것도 아니고, 위생도 나쁘지도 않고요"
정민은 묻지도 않았는데 효리 앞에서 뛰는 심장을 잠재우려 자기도 모르게 주절댔다. 그런 정민이 귀여운지 효리는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음식을 사서 가게를 나온 둘은 인근 공원에 큼지막한 상록수가 있는 근처 벤치에 앉아 식사를 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개봉하며 둘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둘 다 대화에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민은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말했다.
"오늘은 거지 꼴이 아니네요" 정민은 말을
뱉고는 자신을 쳐다보는 효리의 눈을 피하고 방금 내뱉은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네 그놈이 오늘은 제가 필요 없나 봐요"효리는 기분이 살짝 상했지만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놈이요?"
"아니에요"정민은 순간 표정이 굳은 효리를 보고는 더 이상 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놈이라는 존재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스스로 차단했다.
"이뻐요"
정민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봤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 내린 자신만의 정체성을 감안했을 때 이성에게 이쁘다는 말을 한날이 올리 만무할 것이며 그런 단어를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자신이 내뱉은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효리는 정민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다 옆에 있던 음료수를 들어 벌컥벌컥 마시며 애써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했다.
둘은 또 말이 없이 죽을 먹었다. 순식간에 죽을 다 먹고 음식을 치유며 정민은 쏟아지는 졸음을 물리치며 남들이 다하는 데이트 코스인 영화시청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효리는 이만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정민은 다른 말없이 누가 봐도 서운함이 사방에 묻어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효리는 말없이 뒤돌아 집으로 향했다. 인사도 없이......
정민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건 아닌지 복기하기 시작했다. 거지꼴이라는 말이 돌부리에 걸리듯 정민의 생각을 스쳤다. 옆에 있던 죄 없는 나무에 주먹질을 하고 머리를 박으며 자신이 뱉었던 말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정민은 집으로 가는길에도 들어가서도 씻으면서도 침대에 누우면서도 그 말이 지독하게 후회스러웠고 이제 다 끝난다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다. 번호는 고사하고 다음에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잘 시간이 되어 침대에 누웠다. 그때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정민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터폰으로 얼굴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효리의 모습은 아니었다. 준식과 세란이 온 것이다. 갑자기 효리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입으로 나온 실수 어린 말은 말끔히 사라진체 마음이 무거워지고 숨이 갑갑하게 막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쩐 일이세요" 문을열고 정민이 말했다
"먼저 인사부터 해야지 인마" 준식이 장난 섞인 말투로 정민을 나무랐다.
"그냥 잘살고 있나 해서 와봤다. 여기 음식 가져왔으니까 내장고에 넣어라"그렇게 말하고는 음식을 받으려는데 세란은 정민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매정하게 음식 보따리를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정민은 표정이 순식간에 멋쩍어하며 자신에게 의무적 관심을 보이는 세란을 바라보았다. 세란은 그런 정민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집안을 살펴보며 자신은 엄마고 모든 것을 관찰하고 간섭할 권리를 마치 동물들이
영역표시하는것 같다고 정민은 느꼈다. 뚱해 있는 표정이 거슬렸던지 준식은 정민에게 말했다
"넌 부모가 와도 반갑지도 않냐"
"우리가 무슨 생이별했어요. 언제든지 볼 수 있는데"정민은 준식의 눈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